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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전격 처리된 22일 민주당은 자정을 넘기는 장장 5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를 벌였지만, 뚜렷한 향후 방향을 잡지 못했다.
당내 비주류 의원들은 당 지도부의 ‘책임론’을 성토했고 손학규 대표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민주당은 향후 모든 국회 일정을 중단하고 박희태 국회의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새해예산안 처리 D-Day(12월2일)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무작정 보이콧을 주장하는 것은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번지고 있다. 당론이 분열되면서 다음달 17일로 예정된 야권 통합에도 상당한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커지면서 당내 자성의 목소리만 커지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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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도부 책임론 부각
22일 오후 8시반에 시작된 의원총회는 23일 오전 1시를 넘어서까지 진행됐고, 30여 명의 의원이 발언대에 섰다. 의원들은 한 목소리로 지도부 책임론을 쏟아냈다.
최인기 의원은 "지도부가 무능했다. 강행 처리를 예측하지 못한 것도 아닌데 아무런 대책이 없었고 협상과정에서 얻어낸 것도 없었다"며 전략 부재를 꼬집었다.
전임 원내대표인 박지원 의원은 의총에 앞서 "이렇게 무기력한 지도부가 어디 있느냐"고 성토했다.
손학규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달라. (비준안 강행 처리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낙연 장세환 김진애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지도부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대다수 의원들이 내년 총선과 대선 승리를 위한 필요조건인 야권 통합의 차질 없는 추진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어 사퇴론이 증폭되는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의석수 부족에 따른 비준안 저지 실패가 오히려 통합을 향한 결속력을 강화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 의원도 "통합을 마무리해야 하는 지금은 지도부가 사퇴할 시기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23일 예정된 중앙위원회는 하루 이틀 가량 연기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당분간 ‘한미 FTA 비준 처리 무효’ 및 ‘날치기’ 규탄 투쟁에 집중하자는 차원에서다.
그러나 향후 투쟁 방안을 놓고서는 새해 예산안 심의 `보이콧', 장외 투쟁, 의원직 사퇴 등 다양한 주장이 쏟아졌으나 결론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무기력한 패배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떠안기 위해서는 의원직 총사퇴라는 무게 있는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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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모든 일정 취소
민주당은 향후 모든 국회 일정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박희태 국회의장과 비준안 처리 당시 국회 본회의 사회를 본 정의화 국회부의장,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와 황우여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를 촉구하고, 본회의장에서 항의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23일 아침까지 이불을 깔고 점거를 계속했다.
또한 비준안의 내용과 처리 절차에 대한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 소원을 제기하고, 장외 투쟁도 병행키로 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비준안 강행 처리 저지에 실패한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으나 효율적인 투쟁 차원에서 반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섭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오늘 한나라당의 의회 폭거는 유례없을 정도로 무자비했다"며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극진한 환대를 받고 국내에 가면 비준받아 진행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 폐기를 위한 재협상을 촉구하며 총선에서 우리가 다수당이 되면 폐기를 위한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코앞으로 다가온 새해 예산안 처리가 불투명해졌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예산결산위원회 회의가 언제 열릴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예결위는 별도로 진행하자”고 제안했지만, 민주당 간사 강기정 의원은 “당론에 따라 당분간 모든 일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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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통합 영향은?
대외적으로는 야권 통합과 연대의 필요성은 더욱 공고해졌다.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을 점하고 있어 강행처리가 가능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내년 총선에서 야권의 의석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점을 실감한 까닭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22일 "한미FTA는 야권이 힘을 똘똘 뭉쳐 싸웠는데도 결국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를 막을 수 없었다"며 "한나라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 야권이 힘을 합치고 단결할 필요성을 보여준 계기"라고 말했다.
친노(親盧)와 시민사회 인사로 구성된 야권통합추진모임인 `혁신과통합' 관계자도 "국회에서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복원하려면 여야 간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야권 통합을 통해 힘의 균형이 무너진 의회권력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 지도부 책임론이 부각되면서 ‘원샷 전대’를 밀어붙이는 손 대표의 입장도 난처하게 됐다. 23일 예정된 중앙위원회를 연기하라는 주문이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준안 저지에 실패한 지도부가 하루만에 ‘원샷 전당대회’를 추진한다면 야권 통합 전대 개최에 반대하는 ‘독자 전대파’가 득세할 가능성도 크다.
‘원샷 통합파’인 손학규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사퇴할 경우 당장 ‘디데이(D-day)’로 잡은 내달 17일 야권 통합정당 창당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따라서 중앙위 회의 때 지도부가 통합 전당대회 추진에 대한 당내의 확고한 지지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비준안 강행처리 여파는 통합 작업의 원심력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비준안 강행처리가 민노당, 참여당 등 진보정당과 결속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통합을 진전시키는 수준까지 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진보정당들은 여전히 통합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후보단일화라는 연대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