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를 중동에서 아시아로 옮기려는 의지를 행동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지난 11일부터 시작된 아흐레 일정의 아시아.태평양 순방에서 `미국은 태평양 국가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동시다발적으로 뿜어내고 있다.

    이 같은 아시아 중시 외교전략은 중국의 지역 패권 강화 경향과 충돌하며 미ㆍ중간 갈등 요소를 축적시킨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경제ㆍ안보 역학에 심상치 않은 변수로 부상할 조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순방길에서 드러낸 아시아 중시 외교전략은 경제, 안보, 북핵, 남중국해 등 역내 이슈 등 여러 전선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우선 일본을 포함, 아시아 8개국을 끌어들인 환태평양경제동반협정(TPP)을 본격적으로 추진키로 한 점은 미국의 `경제영토' 확대라는 점에서 주목을 모은다.

    지난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 의회 비준에 이어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FTA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되는 TPP까지 가세시킴으로써 아시아 시장에 미국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TPP 협상은 중국을 초청하지 않음으로써 경제적 측면에서의 중국 고립 전략이라는 우려가 중국에서 나오고 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호주를 방문해 미군의 호주 주둔 합의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미군이 태평양 지역에 병력을 추가로 장기 배치키로 한 것은 베트남전 이후 처음이다.

    특히 미국 내부적으로 예산삭감이 초미의 현안으로 부상해 국방 예산도 감소하는 시점에 호주에 추가 미군을 배치키로 한 것은 아시아 지역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무게중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호주의 미군 주둔은 당장 남중국해 영유권 논란을 대응하며 중국의 역내 군사적 영향력 확산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호주 의회 연설에서 `호주와의 남중국해 협력'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호주 미군 배치는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필리핀, 베트남에 대한 안보 우산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담겨 있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어 18∼19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정상회의(EAS)에 참석한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첫 참석이다.

    이 같은 다이내믹한 오바마 대통령의 움직임은 외교.안보를 총괄하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리언 파네타 파네타 국방장관의 최근 언행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클린턴 장관도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행에 때를 같이 해 필리핀, 태국을 방문하고 있고, 패네타 장관은 지난달 이 지역을 훑었다.

    클린턴 장관은 미국 최고위 당국자들의 잇따른 아시아 방문을 일컬어 "아시아 관여(engagement)를 위한 의미 있는 시기"라고 불렀고, "미국에게 21세기는 태평양시대가 될 것"이라고 미국의 눈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분명히 천명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외교에 힘을 싣기 시작한 것은 국제 정세와 미국내 경제사정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해석이다.

    이라크 전쟁 종전선언과 아프가니스탄 미군의 철군은 유럽 중동 외교에서 아시아 외교로 무게를 옮길 수 있는 숨통을 열었다. 게다가 미국의 경제적 어려움 속에 세계경제의 성장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는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손을 뻗쳐야 하는 명분과 이해는 미국 내에 확산되고 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거주하고 있고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는 미래의 광대한 시장으로서의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의 군사력 증강, 북한의 핵무기 확산 우려 등 역내 안보 불안 요소도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아시아를 향한 미국의 발길을 바쁘게 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행보는 중국과의 마찰을 수반할 수 있지만, 당분간은 미국이 이 같은 움직임의 고삐를 늦출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내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재선 캠페인도 고려해야 하는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중국에 너무 미온적이다"라는 공화당 후보들의 비판에 노출되기를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국내 일자리 창출에 가시적 성과가 없는 상황에서 아시아 시장 확보를 미국의 경제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약속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도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호주 의회 연설에서 "미국은 중국과 보다 많은 협력의 기회를 추구한다"고 강조하면서도 "국제적 규범을 준수하고 중국 인민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중국과 지속적으로 솔직하게 얘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충돌'로까지는 이르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면서도,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