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0~40대를 위한 逆說

      정치인과 언론은 20~30~40대의 반란을 두려워한다. 그들이 고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을 고객으로서 필요로 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그들에 영합할 이유가 없다. 이런 입장에서는 그들과 사이버 커뮤니케이션과 대중연예적 정치문화와 좌파운동의 연결망(nexus)이 일으키는 작금의 ‘조반유리(造反有理, 대드는 것은 옳다)’ 풍조를 냉정하게, 비판적으로 투시해야 한다.

      그들 세대가 겪는 경제적 곤경은 그리스에서 보듯,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라 지구 보편의 현상임을 우선 알아야 한다. 한국의 젊은이들만이 겪는 일이 아닌 것이다. 가까운 필리핀에 가 보면 그래도 한국은 썩 잘나가는 나라라는 것을 대번에 알게 될 것이다.

      그 한국도 그러나 처음부터 그렇게 잘 나간 게 아니다. 그 전에는 필리핀보다 저만큼 뒤떨어진 지구 최하의 빈국(貧國)이었다. 수많은 그들의 앞 세대가 백마고지에서 죽고 산업화 과정에서 비지땀을 흘린 덕택에 그들의 청소년기가 부모덕을 볼 수 있었다.

      가난과 고생은 그래서 언제든지, 누구한테든지 사람 일생에 흔히 닥치는 것이다. 때로는 국정 책임자들 탓도 있을 것이지만, 그 탓이 없을 경우라도 세계 경제 전체가 잘못 돌아간 탓이다. 이렇듯, 인생은 고생이고 고생이 인생이다. “왜 우리 세대만 이렇게 어려우냐?”고 항의하지만, 그 앞 세대야말로 이 세상에 나와 40이 다 되도록 엄청난 역경 속에서 죽을 둥 살 둥, 정신없이 살았다. 40대 중반 이후에나 살림이 좀 나아졌나? 고생이 정상이고 ‘빤짝’이 예외였다.

      그래도 앞 세대는 기회가 많았다고? 많았더라도 그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앞 세대가 고심참담하게 쟁취한 것이다. 그 쟁취 방식을 두고서 오늘의 세대 다수는 오히려 “대외개방은 경제 식민지화”라고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한미 FTA도 그토록 반대하는 게 아닌지?

      그들은 또 자기들은 항상 당해 왔다는 식으로, ‘99% 대 1%’ 운운 한다는데, 그렇게 남의 탓만 하고 있었다면 지난 반세기의 ‘한강의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매사 남의 탓 100%”라고 씌우는 김정일 왕국의 참상이 그 점을 여실히 반증한다.

      이 세상에 남의 탓 하는 것처럼 재미있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SNS 가지고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인간광우병 걸린다”는 허무맹랑한 ‘남의 탓’을 퍼뜨리고, 그것에 휩쓸려 대중연예를 곁들인 군중동원으로 “확 엎어버려!” 하는 사방통문이나 돌리곤 한다면, 그 결과는 남 아닌 그들 자신이 살 세상임을 알아야 한다. 잘되면 몰라도 잘못 되면 아르헨티나와 그리스가 따로 없을 것이다. 두고 볼일이다.

      이제부터는 그들 자신이 책임지는 자리에 서야 한다. 그들이 조반유리로 세상의 결정권자가 돼가고 있으니까. 이왕 그렇게 된다면 어차피 잘된(?) 일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잘못 될 경우라도 그들이 남 탓하진 못할 것 아닌가? 이건 물론 역설적인 화법(話法)이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 20~30~40대 최대의 문제점은 그러나, 그들이 ‘고독한 지성’보다는 휩쓸림, 진실/사실보다는 선동에 약하다는 점이다. 트위터와 문자 메시지와 대중연예를 빌어 선동만 해대면 쉽게 ‘혁명군’이 되곤 한다. 이게 지금은 그들에겐 힘이요, 축복인 것처럼 돼 있다. 그러나 음모가와 군중의 결합은 그 시대인들에게나 문명 일반에 대해서나 언제나 재앙이었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