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후보로는 대선 승리 불가능하다는 점 시사
  • 한미 FTA로 여야 간 대치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11월 2일 오전 최대 뉴스는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조건부 대선 불출마 선언이었다.  이날 조선일보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야권 통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조건부 대선 불출마 선언’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손 대표가 이르면 오는 4일 민주당 전당대회 일정과 야권 통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며 이 때 이 같은 내용을 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 이러한 조선일보의 보도로 야권 내부에서부터 논란이 일었다. 손학규 대표가 조건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 당 대표직을 사퇴할 필요없이, 내년 총선 이후까지 임기를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이에 손학규 대표와 민주당 측은 조선일보의 보도에 대해 즉각 해명했다. 손학규 대표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침에 바빠서 기사를 못봤다.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며 이를 부인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 역시  오후 국회 브리핑을 통해 “손학규 대표는 야권통합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서도 “손학규 대표의 조건부 대선불출마 관련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대선 1년 전 당직 사퇴는 민주당 규정, 야권신당 뜨면 무효

    이러한 손대표 측의 입장과 관계없이 과연 손대표가 조건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 민주당 당 대표직을 사임하지 않아도 되느냐의 진위 논란도 이어졌다. 이미 민주당은 12월 11일 전당대회를 예상하고 장소까지 예약해놓았고, 박지원, 김부겸 등 차기 당권 주자들은 사실 상의 선거운동에 돌입한 상황이다. 손대표가 대선 전면 불출마도 아니고 조건부 불출마 선언만으로 당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가 무산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형식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가능한 일이다. 손대표는 2010년 10월 3일 인천 전당대회에서 2년 임기의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2012년 10월 3일까지 당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은  당헌ㆍ당규에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선거 1년 전(오는 12월19일)에 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조항도 추가하였다. 이 때문에 이미 차기 대선주자로 활동해온 손대표가 오는 12월 19일 이전에 당 대표직에서 사퇴한다는 것은 기정사실화되었던 것이다. 물론 다른 차기 대선 주자인 정동영, 정세균 의원 등도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그러나 손대표가 야권통합을 대선 출마의 전제로 내세운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일단 야권통합 정당이 창당될 때까지 손대표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 않은 것으로 인정된다. 대선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으므로 당대표직을 사임해야할 이유가 없다.

    그 이후 총선 전후로 야권통합정당이 신설된다면, 손대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선거 1년 전에 당직을 사퇴해야한다는 규정은 이미 사라지고 없을 민주당의 것이기 때문이다. 신설 야권통합 정당에서는 이런 규정이 존재할 수가 없다. 12월 19일 이전에 창당하지 않은 이상 당의 역사가 대선 때까지 1년이 채 안 된다. 즉 손대표는 야권통합 정당의 소속으로서 새로운 당헌당규에 따라 아무런 제약없이 대선 출마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종걸, "손학규의 뜻은 대권도 당권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

    이 때문에 손대표 측의 발상이 언론에 공개되었을 때, 당 안팎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권주자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는 이종걸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손 대표의 뜻은 야권통합이 불발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대표직을 유지하며, 야권통합이 성사되면 대권경쟁에 나서겠다는 뜻"이라며 "이것은 통합을 위한 자기희생도 아니며, 당을 위한 살신의 결단도 아니다. 오직 12월 18일 임시 전대 시점에 임박해서 대권도 당권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에서 "손학규 대표의 당 장악 가능성은 커지고, 지분 확보 여지 또한 커지니까 손해 보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민주당이 뭇매 맞는 정당이라고 해도 총선에서는 다른 야당에 비해 우월한 위치를 점할 테니까 실리를 듬뿍 챙길 수 있다"고 손대표 측의 정략을 지적했다.

    이러한 정략적 이해관계 때문에 손대표와 민주당의 해명 그대로 조선일보의 보도가 100% 오보일 수만은 없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당의 한 유력 당권주자의 측근은 "손대표로서는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사안이고, 어찌보면 최상의 카드"라면서도 "문제는 일찌감치 당권을 준비해온 당내 인사들과 정동영, 정세균 등 당내 대선주자들이 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즉 손대표로서는 추진하고 싶은 안이긴 하나, 당내외의 여론 때문에 고민하던 상황에서 조선일보의 보도가 먼저 나왔다는 것이다.

    손대표가 만약 이런 수를 쓰게 된다면, 정동영, 정세균 최고위원도 똑같은 방식을 택할 수도 있다. 야권통합을 조건부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손대표처럼 당 최고위원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민주당은 야권통합을 추진하기는커녕 당 내부서부터 대선 주자 간의 극심한 내분으로 붕괴될 위기에 처한다.

     민주당 대표직 사임하고 박원순 캠프에 합류하겠다던 손학규

    손대표는 이미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 승부에서 박원순 후보에 패한 후 사퇴 소동을 벌인 바 있다. 이 당시 민주당 당원들이 충격을 받은 것은 손대표가 박원순 캠프에 합류하여 선거운동을 돕겠다는 선언 때문이었다. 민주당의 당 대표직이 한갖 무소속 후보의 선거운동원만도 못하느냐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뒤 손대표는 다시 사퇴를 번복한 뒤, 당대표직을 유지한 채 박원순 선거운동에 매진했다. 손대표는 "박원순의 승리는 민주당의 승리"라 역설했지만, 그 누구도 이를 민주당의 승리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선거 막판에 편지 한장 들고 나타난 안철수의 승리로 해석되고 있다.

    10월 31일자 한겨레신문 정치세력 선호도 조사에서 한나라당은 40%, 안철수와 박원순 등 제3세력이 39%의지를 받은 반면 민주당은 11%로 추락했다.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참혹한 패배라는 단적인 증거이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드러났듯이 민주당을 배경으로 둔 후보는 야권단일후보의 경쟁에서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형편이다.

    야권단일정당이 아니면 대선 출마를 접겠다는 현역 민주당 대표의 조건부 불출마설은, 그 어떤 경우에도 민주당 독자 후보가 야권단일후보가 되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현실을 민주당 스스로 자인해버린 셈이다. 반면에 그나마 민주당 대표직마저 상실하면, 안철수, 문재인 등 당밖의 주자와는 경쟁조차 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당 대표직을 유지하기 위한 편법적 발상까지 난무하고 있는 게 민주당의 현 주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