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한-미 FTA가 '소신'이라더니...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가
  • ▲ 국회 외통위 회의장을 점거한 야당 의원들의 모습 ⓒ연합뉴스
    ▲ 국회 외통위 회의장을 점거한 야당 의원들의 모습 ⓒ연합뉴스

    “한나라당 당적을 버렸지만 한-미 FTA에 대한 찬성 입장은 변화 없을 것이다.” (손학규, 2007년 3월26일 MBC 인터뷰)

    “참여정부에서 체결한 한-미 FTA 협상을 우리가 비준하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떤 책임있는 자세를 취했는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손학규, 2008년 5월26일 국회의원 워크숍)

    “한-미 FTA에서 무엇보다 주력 수출품목인 3,000cc 이하 승용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한 즉각적인 관세철폐를 얻어낸 것은 훌륭한 성과이나 교육-의료 서비스 분야의 개방이 미진한 것이 아쉽다.” (김진표, 2007년 4월9일 서울경제 인터뷰)

    “개방 파고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국면에 왔고 머리띠 두르고 반대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면 수세적으로 임할 게 아니라 공격적으로 개방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정동영, 2007년 10월30일 대선후보 농업대책 토론회)

    ■ 野 고질병 ‘안되면 물리력’

    이것이 바로 점거정치(?).

    지난 18일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는 결국 ‘파행’으로 끝났다.

    애꿎은 위원장석만 고생이다. 이날 회의에선 남경필 위원장이 앉아야 할 위원장석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정희 대표는 운영위 소속으로 외통위원도 아닌 의원이 남의 상임위에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는 셈이다. 국토해양위 소속의 강기갑 의원과 외통위 소속 김선동 의원까지 해서 단 3명의 민노당 의원에 의해 헌법기관인 국회 외통위의 합헌적 의사진행절차가 정치된 것이다. 

    요지부동이다. 당시 남 위원장이 거듭 자리를 내달라고 요구를 하는데도 이정희 대표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결국 남 위원장은 위원장석을 포기한 채 그대로 서서 회의를 진행했다. 

    당장 폭력이라도 휘두를 기세다.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를 막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게 민노당의 주장이다. 이젠 물리력 행사는 기본이 된 것일까.

    남 위원장이 “그래서 논의를 하기 위해 모인 것 아닌가”, “물리적 충돌은 발생해선 안된다”, “여야가 합의점을 찾자”고 말하는데도 민노당 이정희 대표는 꿈쩍도 않는다. 마이동풍(馬耳東風).

    이에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위원장이 자리에서 쫓겨나 회의를 진행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런 점거 행동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느냐. 오늘 불법 사태에 대해 반드시 의법처리 하기 바란다”고 목청을 높혔다.

    그런데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나. 가만히 있을 민주당이 아니었다. ‘점거의 제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민주당 의원들은 민노당의 외통위 점거 소식을 전해듣고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마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모양새였다.

    의석수 단 3명의 민노당이 하는대로 끌려가는 정통 야당 민주당의 이런 모습은 고질병으로 굳어진지 오래다. 민노당이 리드하는 의정 추세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동조하는 민주당 의원은 정동영 최고위원이 대표적이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정희 대표의 오른편에 자리 잡고 회의를 진행하는 남경필 위원장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정 의원의 모습에서 민노당의 하부세력으로 전락되어 가는 민주당의 초라한 모습을 읽을 수 있다고 하면 과장일까?

    ■ ‘정략적 반대’ vs ‘망가진 협상’

    다음날인 19일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신경전은 이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민주당이 노무현 정부 때는 한-미 FTA에 찬성하다가 이제 와서 반대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정략적인 것이라고 비판했고, 야당 의원들은 이번 정부의 추가 협상으로 이익 균형이 무너졌다며 맞섰다.

    특히 외통위 한나라당 간사인 유기준 의원은 민주당의 재재협상 요구에 대해 “시점상으로나 내용상으로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정부에서 한-미 FTA에 찬성했다가 반대로 입장을 변경한 민주당 소속 의원들을 거론했다.

    같은 당 김정훈 의원도 “민주당이 요구하는 재재협상안 10개 중 9개는 노무현 정부 당시 이미 합의해 놓은 내용인데 민주당이 이제 와서 재재협상을 하라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정옥임 한나라당 의원이 발끈했다. ‘우리나라에선 한-미 FTA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지만 미국에선 국내법이 한-미 FTA에 우선해 불평등하다’는 야당의 지적에 대해 정 의원은 “이는 미국의 법률체계 특성에 따른 것으로 미국이 맺은 모든 FTA에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반박했다. 미국 측의 한-미 FTA 이행법은 FTA 협정문을 승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의원들은 농업 등 FTA 피해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구제대책과 양국 간 이익불균형의 해소를 주장했다.

    박상천 의원은 “FTA로 피해 보는 기업과 해직 노동자를 지원하는 ‘무역조정지원법’, 농어민-축산인을 대상으로 피해보전 직불제를 도입한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지원법’ 모두 피해 구제가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했다.

    노무현정권에서 외무장관을 역임한 송민순 의원은 “이번 정부 들어 협상 자체가 망가진 것은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부인할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은 야당이 제기하는 내용 중 합리적인 부분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좌측부터 민주당 손학규 대표, 김진표 원내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연합뉴스
    ▲ 좌측부터 민주당 손학규 대표, 김진표 원내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연합뉴스

    ■ 한-미 FTA 말바꾸기 野 5인방 등장

    한나라당 박재우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한-미 FTA로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일부 야권 인사들의 행태가 볼썽사납다”고 꼬집었다.

    박 부대변인은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천정배 최고위원, 김진표 원내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를 ‘한-미 FTA 말바꾸기 5인방’으로 규정했다.

    손 대표의 경우 민주당 내 세력기반을 확고히 하고자 ‘한-미 FTA 반대’를 정치선동 구호마냥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에 대해선 “2006년 열린우리당 의장 당시 한-미 FTA로 미국시장을 넓혀가는 것이 국익이라 말했으나, 지금은 ‘신(新) 을사늑약’이라는 자극적인 어휘를 써가며 정반대의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합리적 이유조차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부대변인은 “천정배 최고위원 역시 세계 최대시장이자 기술력-자본력을 가진 미국과 통 크게 협력해야 한다고 한-미 FTA를 적극 홍보하더니, 지금은 180도 전환해 반대에 앞장서고 있다”고 했다.

    이어 김진표 원내대표에게는 지난 날 자신의 업적마저 부정하며 한-미 FTA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고, 참여정부 시절 자신의 소신이라면서 “한-미 FTA를 체결했으면 한다”고 하던 참여당 유시민 대표도 어느 날 갑자기 소신을 바꿨다고 쓴소리를 던졌다.

    박 부대변인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비판이며 누구를 위한 반대인가. 말바꾸기 5인방은 지난날 한-미 FTA를 찬성하며 국민 설득에 앞장섰던 초심으로 돌아가 국익과 미래를 위한 정도를 걸어주기를 거듭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 한-미 FTA 처리가 ‘소신’이라던 그들이···

    야(野) 5인방의 발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봤다.

    손학규 대표는 한나라당 출신인 만큼 한-미 FTA 체결에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손 대표는 2006년 12월27일 대학생 아카데미 특강에서 “한-미 FTA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크다. 내년 3월말까지 반드시 체결해야 한다. 한-미 FTA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국가 생존전략”이라고 말했다.

    2007년 4월2일 한-미 FTA 협상 타결 후에는 “한-미 FTA 협상 타결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한-미 FTA를 통해 남북경협 활성화의 물꼬를 틀수만 있다면 한반도 평화 경영의 새 장이 열릴 것이다. 국회에서의 원만한 토론과 합의를 거쳐 조속한 시일내에 비준절차를 마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손 대표는 “손해 볼 수 있는 FTA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입장을 180도 선회했다.

  • ▲ 좌측부터 민주당 손학규 대표, 김진표 원내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연합뉴스

    김진표 원내대표도 다르지 않다. FTA 찬성론자 중 대표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지난 2007년 3월13일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직책으로 참여한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김 원내대표는 “쌀에 대한 예외 조치와 개성공단 제품 한국산 인정은 당연한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 미 정부가 큰 결단을 내려 한-미 FTA가 당초 일정대로 추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이후 7월29일 김 원내대표는 “당내 한-미 FTA 평가위원회 활동을 종료하고 정부가 당초 목표로 삼았던 ‘높은 수준의 포괄적 FTA 타결’이라는 체결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는 요지의 평가보고서를 채택했다”고 밝혔다.

    18대 국회 들어서는 2008년 5월13일 한-미 FTA 청문회에서 “정부가 쇠고기 협상을 너무 일찍하는 바람에 미국 의회의 한-미 FTA 승인을 압박할 수 있는 좋은 카드를 미리 써버리고 아무것도 얻은 게 없다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2010년 들어 “양국의 이익균형이 무너졌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 ▲ 좌측부터 민주당 손학규 대표, 김진표 원내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연합뉴스

    정동영 최고위원도 노무현 정부시절에는 적극적인 찬성파였다.

    2007년 3월14일 정 최고위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참여정부 임기 내에 한-미 FTA 협상을 끝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한다. 현재까지 협상내용을 중간 계산하면 마이너스 FTA였고 플러스 FTA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이 고려하고 판단하고 토론하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같은해 10월30일 대선후보 농업정책 토론회에서는 “머리띠 두르고 (FTA를) 반대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면 공격적으로 개방의 파고를 넘어야 한다. 비준 동의에 앞서 피해 보전 대책과 농촌 부채 감소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한 김종훈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을 향해 “경제주권 넘겨주는 외교부 관리들은 옷만 입은 이완용”이라며 맹비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독설의 대가’ 천정배 최고위원은 섬뜩할 만큼이나 찬성론자였다.

    천 최고위원은 2006년 7월7일 법무부 장관 당시 대국민담화를 통해 “FTA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시험대이다. 반대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같은해 12월2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선 “근본적으로 (한-미 FTA를) 해볼 수는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국익과 민생을 지킬 수 있는 구체적 조건이 뭔지 분명히 결정하고 관철하려는 의지와 자세이다. 그게 불가능하면 더 많은 시간을 두고 가야 한다고 본다”면서 조금 입장을 바꿨다.

    4.27 재보선 패배 이후 정치 활동이 조금 뜸한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한-미 FTA 체결이 자신의 소신이라고 강조했었다.

    유 대표는 2007년 3월26일 보건복지부 장관 당시 강연회에서 “한-미 FTA는 체결했으면 한다. 정부 각료로서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경제학자로서 내 소신이다”라고 말했다.

    같은해 9월3일 기자간담회에선 “참여정부 국무위원이었고 협상 당시 보건분야 협상을 지휘했던 입장에서 한-미 FTA에 반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정부는 하루빨리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는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는 게 맞다”고 했다.

    2008년 1월16일 대통합 민주신당 탈당 기자회견에선 “한-미 FTA와 사회투자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정책노선이 21세기형 유연한 진보노선”이라고 밝혔다.

    ■ 박원순 “난 원래 반대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야권 박원순 후보는 애당초 한-미 FTA 반대론자였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이는 그다.

    2006년 5월15일 <한겨레신문> 보도에 따르면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충분한 조사가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예측불가능한 상황에 끌려가고 있다. 국민적 신뢰가 없는데도 밀어붙이기로 가는 것은 민주주의 행정의 기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참여정부의 한-미 FTA 추진 방식을 비판한 것이다.

    같은달 29일 박원순 후보는 서울대 관악캠퍼스 기숙사에서 학생 100여명을 대상으로 ‘21세기의 리더십’이란 주제의 공개강연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 후보는 농민단체들의 한-미 FTA 반대투쟁에 대해 “여의도 와서 ‘뗑깡’을 부리기도 하는데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그런 투쟁방식은 농민들의 삶과 크게 유리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후보는 이후 “‘뗑깡’이라는 표현은 약간 지나쳤다. 나도 기본적으로 한-미 FTA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농민들과 뜻을 같이하지만 FTA 반대가 농민운동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농민단체도 FTA를 넘어 삶 속에서 포괄적이고 다양한 아젠더를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미국과 한국엔 더없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북한엔 누구보다 너그러운 박후보이기에 만일 그가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면 반(反) 한-미 FTA 운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할 것임은 불문가지다.

    민노당에 휘둘리는 민주당은 이제 반미-친북 성향의 박원순 후보 눈치까지 보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