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엔 “서울을 점거하라”?

  •   2000년대의 저항운동이란 무엇일까? 20세기적인 사회주의와 식민지 해방론이 주제가 될 수 없는 2000년대다. 이런 시대에 저항하는 쪽은 무엇을 내걸고 기성사회에 맞서려 할까? 최근 서구에서는 ‘월가를 점거하라’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탐욕스러운 금융업자들에 대한 저항이다. 그러나 억만장자들은 세금을 더 내라, 정부는 양극화를 해소하라는 정도이지 사회체제를 전 같은 사회주의로 바꾸자는 식의 구호는 등장하지 않는다.

      전처럼 공산당이나 유사 혁명단체들이 시위를 조종하거나 선동하는 것도 아니다. 자연발생적이고 비조직적이다. 마치 60년대 베트남 전쟁 반대운동 양상하고도 비슷하고, 프랑스 대학생들의 6.8 도시 점거투쟁 모습을 닮은 구석도 있다. “못 살겠다”는 함성은 있지만, 거대담론에 기초한 대안사회의 요구는 없다.

      서울에서도 ‘점거’ 시위가 있을 모양이다. 그러나 자연발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기획’에 따른 조직적 움직임일 것 같다. 서울시장 선거로 시작해서 내년 총선, 대선으로 끝나는 2011~2012 탈권(奪權) 투쟁 시리즈의 한 레퍼터리인가? 아니면, 4대강 반대~한진중공업~제주 해군기지 반대~한미 FTA 비준반대~그리고 또. 또, 또...로 이어지는 끝없는 반체제 집념의 한 대목인가?

      “못 살겠다”로 표현되는 삶의 어려움 자체는 물론 진지하게 대처돼야 할 문제다. 청년실업, 전, 월세난, 물가고, 개인파산, 가계부채, 교육의 고통도 심각하게 논의돼야 할 문제다. 이런 판에 대통령의 퇴임후 사저를 그렇게 요란하게 준비한다든지, 측근비리가 계속 불거진다든지 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불난 집에 기름 들어붓나?

      하지만 법질서는 유지돼야 한다. ‘촛불’ 때처럼 도심의 ‘무법 해방구’가 방임돼선 안 된다. 그렇다고 섣부른 대처로 빌미를 주어서도 안 된다. 공권력의 단호함과 지혜로움이 양립돼야 한다. 법의 분계선을 분명하게 그어 불법은 단불용(斷不容)의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 공권력과 정권이 ‘촛불’ 때처럼 속수무책으로 북악산 기슭에 올라 ‘아침 이슬’이나 부르는 초라한 신세로 전락해선 안 된다.

      그러면서 전세계적인 불황에서 젊은이들에게 어떤 처방이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은 것인지를 설득해야 한다. 정권과 한나라당이 그 설득에 앞장 서야 하고 민주당은 길거리에 나 앉아 정치적인 이문만 취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