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다피의 최후, 김정일 떨고 있니?

      카다피 독재의 수도 트리폴리가 시민군에 함락되던 날 밤, EBS는 이란의 인권유린을 고발하는 외국 다큐영화를 방영했다. 실제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일부 장면은 그림으로 처리한 독특한 기법을 쓰고 있었다. 사살된 어린 아들의 주검을 놓고 통곡하는 어머니의 비탄, 시답지 않은 일로 기관에 끌려가 고통당했던 여기자의 증언 등, 오늘의 이란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인권상황이 가슴을 눌러왔다.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염원했다. “우리는 언제나 자유와 민주주의(freedom and democracy)를 누릴 수 있을까?“

      중동각국 시민들은 지금 유럽 시민들이 200년 전에 폭발시킨 자유와 민주주의 변혁을 지향하고 있다. 한반도에선 그것이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헌법으로 최초로 도입됐다. 이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는 인류 보편의 염원이자 세계 보편의 지향이라는 것이 1789년 7월 14일의 프랑스 혁명 이래 1990년대의 공산권 붕괴, 2000년대의 중동 재스민 혁명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입증되고 있다.

      이런 세계사적인 추세에 대해 한국의 일부는 엉뚱한 시비를 걸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라 하지 말고 그냥 민주주의라고만 말해야 한다”고. 민주주의를 자유로부터 단절시키려는 수작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프랑스 혁명 때 3색기(자유 평등 박애의 깃발)를 들고 압제(壓制)와 싸웠던 파리 시민들이 무어라고 반응 했을까? 이란의 비밀경찰에 끌려갔던 젊은 여기자는 뭐라고 반응했을까? 이집트, 시리아, 예멘 튜니지아 재스민 혁명광장의 시민들은 또 뭐라고 반응했을까?

      무바라크, 카다피, 살레, 아사드의 시대는 갔다. 중동 시민들은 군사독재, 1당 독재, 1인 독재, 장기집권, 세습권력, 철(鐵)의 장막, 죽(竹)의 장막, 비밀경찰, 폭정, 고문, 전체주의를 타도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제도화 하는 날까지 계속 피 흘리며 나 죽여라 하고 나아갈 것이다. 맨 몸으로, 맨 가슴으로, 맨 주먹으로라도.

      이 추세는 장차 어디까지 갈 것인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지구화를 향해 땅 끝까지 갈 것이다. 김정일 수용소 체제는 땅 끝 안쪽에 있는가 바깥 쪽에 있는가? 안쪽에 있다. 자유의 쓰나미에 저항하려고 김정일은 핵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핵을 가진 소련도 붕괴했다. 한국의 종북(從北) 집단은 그런 추세가 북한에 미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가진 꼼수들을 다 부리고 있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주의 정신은 불사조다. ‘민주’ ‘민족’ ‘민중’ ‘평등’의 허울을 쓰고서 ‘자유와 결합한 민주’ 즉 자유민주주의를 그들이 아무리 죽이려 한다 해도, 중동에서 번쩍한 그 불사(不死)의 섬광(閃光)은 언젠가는 마침내 요덕수용소의 하늘도 밝힐 것이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