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의회 소식지 <더 힐>에 반대 기고 파문“한국인, FTA 환영 안한다…재협상은 남북 군사관계 이용”
  •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의 이율배반성은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 

    천 최고위원은 노무현정부 때 법무장관으로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위한 합동담화문에 서명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한-미 FTA 비준을 반대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그것도 국내 언론도 아니고 미국 의회 매체에 게재했다.

    그가 생각하는 국익은 무엇인지 절로 묻게 하는 대목으로 읽힌다.

    천 최고위원이 지난 3일 한-미 FTA 비준을 강력 반대하는 기고문을 실은 매체는 미 의회 소식지 <더 힐>이다.

    <더 힐>은 미 연방의회 의원과 보좌관 및 관련 인사가 주요 독자다. 이들에게는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매체로 평가 받는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이런 문제는 국내에서 얘기하는 것이 옳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황 원내대표는 5일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런 기고는 양국의 외교와 무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니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미국 전문지에 기고를 통해
    ▲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미국 전문지에 기고를 통해 "한미 FTA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확대,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말해 파장이 일고 있다. ⓒ 연합뉴스

    천 위원의 기고문 제목은 ‘미국과 한국의 무역거래는 양국 모두에 나쁘다’는 것이다.

    그는 이 글에서 “한-미 FTA가 일자리 창출과 양국 관계 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이 있으나 사실은 모두가 지는 루스-루스(lose-lose)”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환상은 양국에 충성도가 없는 다국적 기업들의 조작(fabrication)”이라고 한 발 더 나아갔다.

    특히 “한-미 FTA는 미국의 무역 적자를 확대함으로써 일자리를 줄일 것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미 제조업 분야에서 엄청난 일자리 손실을 가져 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희한한 주장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미 FTA를 통한 미국의 무역적자 확대는 한국의 흑자를 뜻한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미국의 무역적자가 늘어날 것이기에 한-미 FTA를 하지 말자”는 주장으로 미국을 설득한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한국대사관의 홍보캠페인과는 달리 대부분의 한국인이 한-미 FTA를 진심으로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민 대부분이 아주 걱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인이 한-미 FTA를 환영하지 않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 신문을 읽으면 많은 한국인은 한-미 FTA가 굴욕적이고 불공정하다고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지난해 말에 이 나쁜 거래를 타결하면서 한-미 협상당국자들은 6·25전쟁 이후 최고조에 오른 남북한 군사관계를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을 겪은 뒤 한-미 FTA 재협상이 타결된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간 재협상 타결을 위해 양국이 다양하게 노력해온 사실을 간과했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주장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대목이다.

    천 의원은 “앞으로는 양국이 공정무역협정에 대해 협상을 벌여 양국 경제와 동맹 강화에 기여하길 바란다. 다만 미 의회가 조만간 심의하게 될 협정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장는 기자간담회에서 천 의원의 기고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고 꼬집었다.

    남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하신 분이니 당시 한-미 FTA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 또 이렇게 입장이 바뀐 이유가 뭔지 설명해야 한다”고 비난했다.

    김기현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천 최고위원이 언제부터 미국의 이익을 걱정하는 친미주의가 됐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당리당략을 위해 국익마저도 서슴없이 내팽개치는 정당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