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은 영화가 아니다

      오슬로 테러범은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서 스스로 괴물임을 자처했다. 메갈로매니악(megalomaniac, 과대망상)의 전형이다. 어떤 과대망상 괴물은 자신을 괴물 아닌 수호천사, 메시아, 어버이 수령, 퓨러(Fuhrer, 지도자)로 자처한다. 아름다운 영혼의 정반대쪽에 있는 게 바로 이런 괴물, 사이비 메시아들이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유슈비츠 학살현장에서 근무한 나치스 친위대 장교들의 사진첩이 최근 내셔널 지오그라픽 채널에서 방영된 바 있다. 거기 나타난 학살 집행자들은 하나같이 다 “우리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 모습 아닌가?” 하며 출연자들은 기가 막혀 했다. 퇴근 후에는 아내, 자녀와 함께 단란하게 애정표현을 하고, 동료들끼리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포즈를 취하고, 야유회를 즐기고, 고전음악을 듣고...

      끔찍한 범행이 있을 때마다 “전혀 그럴 사람 같지 않았다. 성실하고 겸손한 청년이었다”는 투의 이웃들의 코멘트가 방영되곤 한다. 결국 인간들 마음 한 구석엔 악마성이 잠복하고 있다는 이야기일까? 인간은 경우에 따라선 악마도 될 수 있고 천사도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을 악마로 만드는 것일까? 질병, 오도된 집념, 어리석음, 빙의(憑依), 자폐증, 현시욕(顯示慾), 증오심...원인은 많을 것이다.

      오슬로 테러범은 ‘국수주의자이면서 기독교 근본주의자, 반(反)이슬람 주의자’라 했다. 그러나 그런 거창한 명분은 다 병적인 환각작용일 뿐, 그는 그저 시시한 3류 ‘홀로 원숭이(무리를 떠나 혼자 돌아다니는 원숭이)에 불과하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고 평범한데 전혀 예기치 못한 ’엉뚱 증후군‘을 보이는 궤도(軌道) 밖 독불장군 3류들이 꽤 있다. 사통팔달(四通八達) 훤히 뚫린 대명천지임에도 어쩌자고 ‘어버이 수령’한테 충성을 다하겠다고 설치는 부류가 그 한 사례다.

      폭탄을 껴안고 지뢰밭에서 사는 느낌이다. 언제 어디서 ‘3류 독불’들이 무슨 어이없는 짓거리를 할지 모르는 채...민주주의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된다는 게 이런 현상의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역시 지적(知的) 세련, 마음의 건강, 교양, 예의염치(禮義廉恥)가 갖춰져야 할 모양이다. 그걸 갖추지 않았기에 부산저축은행 비리 같은 괴물도 생기는 것이리라.

    류근일 /본사 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