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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의 최대 결함
양 동 안(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우리나라의 현행 헌법에는 좋은 점들도 있고 결함들도 있다. 좋은 점들 가운데 가장 좋은 점은 자유민주주의를 헌법의 기본 이념으로 명확하게 천명한 것이고, 결함들 가운데 최대의 결함은 자유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효율적인 보장 조항들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본권을 보장해주고 창의적 자아실현과 경제적 풍요를 지원해주는 좋은 체제이지만, 체제의 적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역량이 매우 열등한 체제이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헌법, 특히 적대적 분단국가와 같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헌법은 체제의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들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체제의 적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들을 잘 구비하고 있는 모범적인 사례로는 서독-독일의 헌법(기본법)을 들 수 있다. 서독 헌법은 자유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내용의 조항을 무려 8개나 구비하고 있다.
서독 헌법은
△헌법에 대한 충성의무를 지키지 않는 예술·학문·연구·교수 등의 자유는 보장하지 않으며(5조 3항), △형사법에 위반되거나 헌법질서 및 국제협조의 이념에 반하는 단체의 결성을 금지하며(9조2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보호나 국가의 안전을 위해서 필요할 경우 개인의 통신비밀을 제한하며(10조2항),
△국가안전 및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위험 방지를 위해 필요할 경우 개인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한다(11조2항)고 규정하고 있다.서독 헌법은 또 △의견발표의 자유, 출판의 자유, 교수의 자유,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통신비밀, 재산권, 망명자 비호권 등과 같은 기본권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공격하기 위해 사용할 경우 그 기본권을 인정하지 않으며(18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폐기하려는 자들에 대항하는 국민의 초법적 저항권을 보장하며(20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거나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하려는 정당은 강제 해산하며(21조2항),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지키는데 핵심적인 조항은 영원히 개정하지 못한다(79조3항)고 규정하고 있다.서독에서는 이러한 헌법 조항들로 인해 공산주의세력이나 극우세력은 설사 선거에서 절대 다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획득한다 하더라도 정권을 합법적으로 장악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서독은 이러한 헌법 조항들에 힘입어 장기간 안정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했다. 정치적 안정은 경제번영과 국가안보를 동반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토대로 해서,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체제가 흔들릴 때 돈으로 소련 정권을 달래고 동독 주민들의 환심을 사서 동독을 흡수통일하게 되었다. 통일이 이루어진 후의 통일 독일의 헌법은 서독 시절의 헌법 속에 들어 있던 자유민주주의 보호 조항들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우리나라의 현행 헌법은 이상과 같은 서독-독일 헌법의 조항들과 비교할 때 빈약하기 짝이 없는 자유민주주의 보호 조항을 갖추고 있다. 현행 헌법 속에 내포된 자유민주주의 보호 조항은 단 2개에 불과하며, 그 내용 또한 매우 빈약하다. 현행 헌법 속에 들어 있는 자유민주주의 보호 조항들은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정당을 강제 해산한다는 조항(8조4항)과 △국가안보·질서유지·공공복리를 위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37조2항)뿐이다.
우리나라는 서독보다 체제존속 및 국가안보 환경이 매우 열악하므로 우리나라의 헌법은 서독의 헌법 속에 들어 있는 자유민주주의 보호 조항들보다 내용이 더욱 강력한 조항들을 더욱 많이 갖추어야 한다.
실제는 그와 정반대이다.
환경이 더 나쁜 데, 그 환경에 대응하는 자유민주주의 보호 장치들조차 빈약하다. 이러한 헌법상의 차이가 서독은 정치안정과 경제번영을 통해 동독을 흡수통일한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장기간 반체제세력이 확대되고 심지어는 시대착오적 북한정권을 추종하는 세력까지 날 뛰며 경제도 롤러코스트를 타게 되는 원인의 하나라 할 수 있다.우리나라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은 간혹 개헌을 거론하면서도 우리나라 헌법의 이러한 문제점은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 무슨 귀신이 그들의 눈을 가려서 그런지 알 수 없다. 개헌을 하려면 이러한 최대의 결함부터 보완·수정해야 할 텐데 말이다. 제헌절을 맞이하니 우리나라 헌법의 최대결함과 그러한 결함에 대한 이 나라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무관심이 새삼 안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