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과 기계의 연구개발을 강조하던 기술·기계 중심 시대였다.

    좀 더 빨리 가기 위해 자동차와 비행기가 발명됐다. 멀리 있는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전화기와 휴대전화까지 개발됐다.

    그러나 세상과 함께 이 과학기술 발전 모습도 변하고 있다. 더 빨리 달리는 자동차가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감성을 휘어잡는 디자인, 편의시설 등이 강조되는 시대다.

    쉽게 말하면 정보와 생명의 부가가치가 강조되는 기술+정보+생명 중심 과학기술 단계에서 기술+생명+정보+감성의 인간중심의 융합기술 체제로 변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감성을 터치하기 시작한 셈이다. 복잡한 OS를 벗어나 직관적이고 감성을 자극하는 인터페이스를 적용한 아이폰이 성공을 거둔 것이 좋은 사례다.

    기업들도 앞다투어 제품개발 기술에 ‘융합’이라는 단어를 맨 앞에 두기 시작한 가운데 최근 ‘융합’이라는 단어를 새로운 시각에서 논한  흥미로운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 ‘스마트 융합과 통섭 3.0(저자 신동희 성균관대 교수)’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적 상황에서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의적 인재가 탄생할 수 있을까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한국의 현재 융합담론에 대한 문제점과 상황을 분석하고, 그를 통해 한국적 상황에 맞는 미래의 융합모델을 제시하며,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재가 나오기 위한 창의적 통섭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사적으로 보면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인간에게 유용한 물질과 기계의 연구개발을 강조하던 기술·기계 중심 시대. 그리고 20세기 중반 이후에 시작된 제2단계는 이에 더하여 정보와 생명의 부가가치가 강조되는 기술+정보+생명 중심 과학기술 단계였다.

    그런데 지금 21세기에 이르러 과학기술은 기술+생명+정보+감성의 인간중심의 융합기술 체제로 변하고 있다. 기술발전사에 비추어, 융합과정도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기술융합을 융합 1.0으로, 기술과 문화 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융합되는 방향을 융합 2.0라고 볼 수 있다. 첨단기술을 적용한 HDTV나 작은 휴대폰은 융합 1.0의 산물일 것이다. 그런 HDTV에 더 나아가 아날로그적 인터페이스 설계를 가미한 애플의 제품들이나, 인간의 실제 동작을 가미한 닌텐도의 WII, 혹은 인간의 외로움을 사이버 공간에서 해소하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는 융합 2.0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융합 3.0이라는 것은, 어떤 궁극적 의미의 융합으로서 인간과 기술의 경계가 완전히 없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 융합 3.0을 통해 인간과 기술이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며 새로운 휴먼 가치를 제안할 수 있다.

    융합현상의 근원적 발판이 되는, 통섭과정도 몇단계로 나눌 수 있다. 기존의 학문들을 조합하고 기존에 속해있는 학과의 교수들을 차출해 새로운 학과 단위를 만드는 물리적 결합이 통섭 1.0이라면, 그 결합위에 의미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여 새로운 학문을 창출하는 화학적 통섭이 통섭 2.0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통섭 3.0이란 통섭을 통해 어떻게 인간을 둘러싼 다변화된 현실을 이해하게 해주는지, 기술환경에서 인간의 가치를 영속화하고,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메타 (meta) 통섭이고 이것이 통섭 3.0이라 할 수 있다.

    향후 통섭은 단순히 다양한 지식의 통합만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 (emotion)과 인간적임 (humanity)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간의 융합과 통섭 담론이 다분히 기술결정론적 시각에서 이루어졌는데, 미래의 통섭은 인간이 중심이 된 논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여러 지식과 다양한 학문을 결합하는 허브와 그 끌어들이는 흡입력의 원천이 인간의 감성이 되어야 한다. 최근에 인기를 끈 융합제품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의 감성을 터치한 것이 성공을 거두어 이른바 ‘킬러 어플리케이션 (killer application)’ 이 됐다.

    과거의 IT는 효용이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이 중요하다.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은 지식만으로 나오지 않고 감성의 융합으로 가능하며 이러한 감성에 바탕을 둔 디자인은 쉽게 수용이 된다.

    2010년 한국을 방문한 애플의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 (Steve Wozniak)은 한국의 IT가 고객감성에 더 접근해야 한다고 충고한바 있다. 삼성과 LG가 우수한 하드웨어적 제품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적 우수성보다는 한 차원 높은 무언가를 통해 소비자들의 감성을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 무언가가 바로 인간중심의 기술을 의미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통섭은 인간이 중심이 된, 인간성에 소구한, 인간의 감정에 바탕을 둔 통섭이 지배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새로운 통섭의 패러다임전환의 시대가 올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까지의 한국에서의 융합논의는 주로 기술적 차원 즉 하드기기의 생산이나 기술의 성능향상이나 기술혁신에 목표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폰과 아바타는 기술 혁명이 아니라 콘텐츠 혁명일 수 있고, 우리는 융합논의에 있어 좀 더 기술이외의 기술을 둘러싼 관련 이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그 융합전략수립에 있어 미국과 유럽연합의 융합틀을 벤치마킹 했는데, 새로운 기술의 발견이라는 기술적 측면만 강조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핵심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했다.

    저자는 책을 통해 미국과 유럽연합의 융합틀이 NT/BT/IT를 통한 인간의 퍼포먼스 (performance)향상이라는 인간 소프트적 목표를 궁극적으로 추구하는데, 한국의 융합틀을 궁극적 목적을 간과한 채 그 과정상의 기술발견을 최종적 목적으로 수립하여 전반적 사회에 혼란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앞으로 한국의 융합과 통섭논의가 인간과 기술의 큰 그림인 전체적 생태적 (ecosystem) 환경 개선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추기를 기대한다.

    <저자 소개>

  • 신동희 교수는 미국의 학계에서 10년넘게 인간과 기술의 상호작용에 관한 융합적 연구를 수행하다 교과부의 World Class University의 해외학자초빙 프로그램으로 귀국해 모교인 성균관대에 교수로 부임했다. 인터랙션 학과 (WCU 융·복합 학과)

    오랫동안 외국에서 학자로서 있었던 저자의 통찰적 시각으로 한국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융합과 통섭에 대한 한국적 모델을 비교적 신선하게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융합논의에 있어 좀 더 기술이외의 기술을 둘러싼 좀 더 본질적 이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문과와 이과라는 인위적 구분이 고등학교때부터 형성되어 창의적 교육을 저해하고 다른 전공을 연구하는 것을 이단이나 학문적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비난을 받는 교육적 환경에서 자유로운 창의적 융합적 사고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