護憲 세력의 승리로 끝났다美상원 "정부지원 받는 연구자들, 자유와 번영 증진시킨 美國史 존중해야"
  •   “조지 워싱턴은 지나가는 인물로 묘사될 뿐이다. 미국 헌법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대신 대(大)불황은 세 차례나 언급된다. 학생들이 토머스 애디슨, 알버트 아인슈타인에 대해 배우지 않게 된다. 전 세계를 보다 낫게 만든 미국인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중략) ‘매카시즘’은 19차례나 언급하면서 미국이 자유국가의 방패가 되고자 했던 ‘냉전의 본질’은 언급하지 않았다” (美상원 역사표준서 논쟁, 1995년 1월18일 슬레이드 고튼 美상원의원)
     
     조지 부시(George Bush) 美대통령은 1989년 미국을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국가로 만든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역사학을 포함한 5개 교과의 표준서 개발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1991년 ‘전국 역사표준서 프로젝트’(National History Standards Project)가 수립되어 초등 및 중등학교에서의 ‘역사교육을 위한 표준서’(이하 ‘역사표준서’, National History Standard) 개발 작업이 추진됐다.
     
     1992년 봄부터 시작된 역사표준서 개발 작업은 당면한 역사교육의 현안에 대한 광범위한 토론 및 논의과정을 거친 뒤 1994년 완성됐다. 역사표준서는 그러나 출간-공표되기도 전에 미국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애국적 인물들을 누락시키고, 소수의 관점을 지나치게 대변하고 있다면서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역사표준서 출간을 위해 거액을 지원했던 린 체니(Lynne Cheney) ‘전국인문학기금’(NEH) 前의장은 “역사표준서가 정치화된 역사를 통해 반란을 꾀하는 기성학자(좌파)들의 작품”이라고 비판했다. 린 체니의 뒤를 이어 미국의 보수 진영은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언론매체를 통해 역사표준서를 비판하고, 표준서를 작성한 학자들의 정치적 의도를 문제 삼는 등 표준서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역사표준서를 비판한 미국 내 보수인사들의 입장을 요약하면 표준서를 통해 좌파세력이 미국의 역사를 정치화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특히 역사표준서에서 서양문화의 위상과 관련된 문제를 제기했다. ‘인문주의우파’(The Humanist Right)로 알려진 교육비평가 집단의 윌리엄 베넷, 앨런 블룸, 린 체니, 저투르드 힘멜파브 등의 인물들이 “인문학 교육은 서양문화에 뿌리를 둔 이상과 지식을 전수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유럽의 정치적, 철학적 문학적 유산이 미국의 다원(多元)적인 국민을 결속 시킨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러한 문화적 통일성이 1960년대 이후 대학을 장악하고, 서양 대신 인종, 계급, 성(性)에 관한 교과목을 가르치는 ‘막시즘’(Marxism)과 ‘페미니즘’(Feminism) 성향의 좌파들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고 ‘인문주의우파’ 인사들은 경고했다.
     
     서양에 관한 교육을 강조하는 두 번째 집단은 앨버트 섄커가 의장으로 있는 ‘미국교사연합’(American Federation of Teachers)의 전국본부가 그 중심이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냉전(冷戰)을 거치면서 민주주의가 살아남은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되며, 민주주의의 지속여부는 미국인을 결속시키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정치적 비전(vision)을 새로운 세대에게 전해주는데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서양 민주주의의 역사가 교과과정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인문주의우파’와 ‘미국교사연합’은 모두 학생들이 고대 아테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17세기 영국 등지의 고전 문헌에서 언급한 정치-철학-미적 진리를 탐구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들은 세계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커다란 사건이나 변화도 그 중요성이 고전(古典)의 진리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들의 역사표준서 문제 제기와 더불어 1994년 11월14일 미국의 저명한 보수논객인 존 레오(John Leo)는 ‘미국 역사의 납치’라는 제목의 논설을 통해 “미국의 표준서가 1960년대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에 의해 반(反)문화적 관점에서 쓰였다”고 비판했다.
     
     존 레오는 당시 “역사표준서가 크든 작든 모든 봉기와 반란을 언급했는데, 이는 그들이 미국을 억압적인 국가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백인에 대항해 점점 더 많은 반란이 일어난다는 식으로 밖에 이야기를 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역사표준서는 다문화주의가 과도해서 백인이나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온데간데없고, 인디언, 흑인, 여성(페미니즘)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미국이 이제껏 자유와 평등을 강조해 온 것은 엘리트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면서 인디언 학살과 흑인의 노예화만을 강조했다”고 존 레오는 비판했다. 이 같은 이유로 존 레오는 역사표준서를 공식표준서로 채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내 보수진영의 적극적 대응은 결국 의회 논쟁까지 이어졌다. 공화당의 슬레이드 고튼(Slade Gorton) 상원의원은 1995년 1월18일 상원 연설을 통해 “표준서가 반(反)서양적이고 미국 역사교육에 위협적인 것”이라고 규정했다. 고튼 의원의 문제 제기로 이날 상원은 99대 1로 역사표준서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사실상 여야 ‘만장일치’(滿場一致)였다.
     
     당시 역사표준서는 상원으로부터 비(非)미국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정부 지원을 받는 연구자들은 세계 자유와 번영을 증진 시킨 미국 역사에 대해 존중해야 한다”는 권고까지 받았다. 미국에서 공교육이 시작된 이래 줄곧 주(州)정부의 소관이던 교육문제에 상원이 관여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매우 큰 것이었다. 1994년 가을부터 시작된 역사표준서에 대한 보수진영의 문제 제기는 1996년 봄까지 무려 18개월이나 지속됐다.
     
     이로 인해 좌파 성향의 표준서 개발자들은 어쩔 수 없이 수정(修正)주의 사관(史觀)에 입각해 작성된 역사표준서를 개정, 1996년 4월 새로운 표준서를 출간해 역사교과서 논쟁은 막을 내렸다. 당시 역사표준서 개정작업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초교육회의(Council for Basic Education)를 비롯한 몇몇 재단이 구성한 패널의 권고에 따라 문제가 됐던 ‘학습예제’를 삭제했다.
     
     둘째, 과학, 기술, 경제사, 지성사를 강화했다. 논란이 됐던 ‘헌법’이라는 단어가 포함됐고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제임스 메디슨 등의 이름이 삽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