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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에 애들 선생님께 뭐 해드려요?”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오는데 아이 친구 엄마가 물어온다. “네~에?” 내 말꼬리가 먼저 올라간다. 아직은 아기라고 생각했는데 스승의 날? 거기다 선생님 선물? 생각지도 않던 스승의 날 이야기를 들으니 적잖이 당황스럽다.
어버이날도 아침식사 차려드리고 얼마 안되는 용돈으로 끝냈는데, 스승의 날은 어떻게 챙기나? 남편은 무슨 애기한테 스승의 날이냐고 혹시라도 그런 거 챙길 생각일랑 일절 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치고 나간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의 낮 시간 거의 대부분을 한 두명의 선생님이 봐주시는데 아빠와 보내는 시간보다 길다. 그러니 아이에게 끼치는 그 분의 영향력은 정말 지대하다. 그런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좀 더 잘 돌봐주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만 특별히 더 신경써달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밥을 잘 안먹거나 우유를 잘 안먹으려 하더라도 신경써서 먹여주고, 덥거나 추우면 온도에 맞게 옷을 잘 챙겨주길, 감기라도 걸려있으면 약을 잘 먹여주고 컨디션도 신경써주길 바란다. 여기에 더 바란다면 우리아이 이름 한번 더 다정하게 불러주는 정도겠다.
아직 학부모도 아닌데 벌써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지다가 그래도 내 아이 일인데 나만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하는 생각이 치고 들어온다. 그럼 어떤 선물이 좋을까? 큰돈 들이지 않으면서 싸 보이지 않고, 흔하지 않으면서도 필요하고, 부담은 주지 않으면서 기억에는 남을 만한 선물이면 좋겠는데….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상품권? 바디세트? 건강음료? 화장품? 스카프? 홈메이드 쿠키나 비누? 정말 어렵다.
담임만 챙겨야할까? 원장선생님도 챙겨야하나? 학원선생님은 어쩌고? 우리 아이들이야 어린이집만 챙기면 되지만 조금만 더 큰아이들은 학원 한 두 군데 안다니는 애들이 없을 정도인데 그 사람들은 다 어떻게 할까? 그냥 올해는 눈치봐가며 넘어가고 내년부터 챙길까? 다행히 스승의 날이 일요일이니까… 속으로 조금 안심이 된다.
스승의 날 즈음이 되니 선생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요즘은 스승의 날에 아예 자체 휴교를 하거나 선물이나 꽃 등을 절대 받지 않는다는 안내장을 미리 보낸다. 필자가 학교에 다닐 때는 워낙 시골이라 그랬는지 다들 먹고살기가 어려워서 그랬는지 부모님이 학교에 오는 일도 별로 없었고 스승의 날이라고 부모님이 신경써주셨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당시 있던 ‘초등학교 육성회’에서 선생님들께 식사대접 정도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촌지며 치맛바람이 사회문제까지 되어 학교에서 ‘선물사절 안내장’까지 보내는 시절이라니 참 많이도 변했다.
필자의 선생님과 부모님의 관계는 거의 사제 관계와 비슷할 정도로 항상 존경과 신의가 있었다. 선생님께서 필자의 진로와 학습, 가정생활까지 살펴봐주셨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필자가 국민학교 2학년 때는 농사일 때문에 일일이 과제나 준비물을 챙겨주지 못하셨던 부모님을 대신해 같은 학교에 다니던 언니에게 이야기도 해주고, 과제검사도 엄하게 하셨던 담임선생님이 기억에 남는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12년 동안 많은 선생님을 거쳐 왔지만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대체로 존경할만한 분들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부모님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다. 그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는 생활교본이다. 항상 모범이 되어야하고 아이들을 올바른 길로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선생님의 사상은 자유가 있지만 아이들에게 그 사상을 가르쳐서는 안된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알려줄 수는 있지만 한쪽으로 가도록 강요해서도 안된다. 학부모의 재력으로 학생을 차별하는 선생님은 선생님 될 자격이 없다.
90년대에 필자를 포함해 어린이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TV외화시리즈 ‘천사들의 합창’에 나오는 히메나 선생님이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선생님상 정도 될까? 항상 웃는 모습으로 부잣집 아이나 가난한 집 아이, 흑인이나 백인을 차별 없이 대했던 히메나 선생님.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사정을 잘 살피고 눈높이에 맞춰줬던 선생님으로 기억된다.
지금도 그런 선생님은 많다. 얼마 전 아는 선배님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그 선배의 아들이 담임선생님께 받아왔다는 약봉지 이야기를 봤다. 하나하나 정성스레 포장된 약봉지에는 어린이 비타민이 들어 있었고 각각 ‘떼 안 쓰는 약’, ‘엄마아빠 말씀 잘 듣는 약’, ‘동생 잘 돌봐주는 약’ 등이 써 있더란다. 선배는 그 선생님이 주신 약이 한동안 큰 효과를 발휘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어린이날은 아이들이 즐겁고, 어버이날은 부모님이 즐겁고, 스승의 날은 선생님들이 즐거워야할 날이다. 최소한 그 날 하루만이라도. 스승의 날 선물이 내 아이 좀 잘 봐주십사하는 선물이 아닌 ‘내 아이를 잘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아이가 선생님을 만나서 이렇게 많이 컸습니다’고 하는 감사의 말 한마디가 더 선생님을 즐겁게 하지 않을까? 바르고 예쁘게 잘 커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선생님에게 가장 큰 보람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런 말 한 마디를 더 즐겁게 생각하는 선생님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기대도 가져본다.
오늘 아이를 데리러 갈 때 ‘그동안 잘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는 말을 크게 해드려야겠다.
이 글은 청년지식인포럼 story K(http://cafe.naver.com/storyk21)의 양해 하에 게재합니다.<편집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