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무기보다 국가와 국민간 신뢰가 강하게 한다"

  • “국가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다른 누구의 말이 아니다. 과거 만났던 주한 미군 병사의 말이다.

    그의 말은 살아 있는 자신을 국가가 버리지 않을 것임을 안다는 게 아니다. 죽어 이름 모를 전장에 묻혀 있다 하더라도 국가가 나를 버리지 않고 찾아낼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는 말이다.

    더불어 국가가 자신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해주리라는 점도 안다. 가족에게 예우를 갖춰 인도될 줄도 안다.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확신하고 있다. 뼈 속 깊이 새겨 넣은 것처럼 그런 사실에 의심할 줄을 모른다.

    한 병사가 달리 그처럼 믿는 게 아니다. 미국 정부가 그렇게 믿게 만들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치른, 이제껏 숱하게 치른 전쟁 뒤의 결과가 그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미군 유해발굴단이 벌이는 일이 바로 그 일이다.

    왜 미군 병사가 국가에 대해 맹목적일 정도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새삼 떠올리게 하는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

    지난 17일 대한민국 청와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날 이명박 대통령을 예방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영부인으로서 2번, 국무장관으로서는 4번째에 해당한다.

    이날 이 대통령과 클린턴장관과의 환담에서는 클린턴 장관의 말 한마디가 특히 주목을 끌었다.

  • ▲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클린턴 미 국무장관.ⓒ청와대
    ▲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클린턴 미 국무장관.ⓒ청와대

    이명박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던 클린턴 장관이 갑자기 "한국 정부가 리비아에서 미국 국민의 철수를 도와주신 데 감사 드린다"는 인사를 건넸다.

    이게 무슨 말일까. 여기에는 리비아 사태와 관련해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연이 있었다. 리비아 사태가 날로 험악해지던 지난달 초. 당시 리비아에는 미국인 수 명이 남아 있었지만 미국 정부로서는 이들을 철수시킬 방법이 없었다. 이미 대사관을 폐쇄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우리 정부가 그리스 선박을 동원해 우리 근로자들을 철수시킨다는 계획을 듣고 승선 가능성을 우리 정부에 타진해왔다. 결국 벵가지에 머물던 미국인 남성 1명은 해당 선박에 몸을 싣고 그리스로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다.

    그 직후 미 정부는 우리 외교부와 주미 한국대사관에 사의를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장관까지 직접 나서 다시금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것이다.

    우리가 구해준 미 국민 숫자가 많았는가. 그렇지 않았다. 수명에 불과했다. 그전에 감사를 표한 적이 없었던가. 아니다. 이미 두어 차례 우리 정부에 사의를 표명했다.

    이 대통령과의 환담자리에서 우리 정부의 누군가가 먼저 말을 꺼내 생색을 냈던가. 그것도 아니다. 클린턴 장관이 먼저 말을 꺼냈다.

    클린턴 장관은 이 대통령과 대화 중에 불현듯 생각난 듯이 그 얘기를 꺼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 국무장관이 타국 대통령을 만나 나눌 대화를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았을 리 없다.

    바로 이것이다. 명령 한마디에, 들어가면 죽을 줄 알면서도 병사가 사지(死地)로 뛰어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말단 병사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최고위직인 장관은 국민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드러낸다. 어떤 형태로든 ‘조국은 국민들을 잊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체면을 따지는 일도 없다. 국가가 해야 할 도리라고 생각하면 그걸 다할 뿐이다.

    말단 병사와 장관, 그리고 이름 모를 미국민. 그들이 국가라는 이름 아래 끈끈하게 맺고 있는 믿음이 미국을 강하게 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순항 미사일 ‘토마호크’로 대변되는 미군의 최첨단 무기보다 더 미국을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