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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域’ 쓰나미-신공항
신공항이냐 백지화냐는 끝없는 주장과 반박과 재반박을 유발하는 사안이다. 돼야 할 이유와 안 돼야 할 이유는 입이 부족해서 없을 까닭이 없다. 모든 이유들은 갖다 붙이면 되는 것이니까. 그 만큼 이론이나 논리라는 것은 실체하고는 또 다른 것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정치’와 연관 될 때는 더욱 더 그렇다. 특히 “해야 한다”는 정치인들의 논리일수록 ‘정치적 고려’와 톱니처럼 맞물린다.
필자는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논란 자체에 깊이 들어가지는 않겠다. 다만 생각하고 싶은 것은 ‘지역 정치’ ‘지역 이익 정치’라는 것이 우리 정치에서 점하는 비중, 그리고 그 순기능과 역기능이 이제는 중앙의 ‘고도의 통치행위’를 압도하려는 정도에까지 이른 것 아니냐는 ‘충격’을 표하고 싶다.
지역 이익을 위한 정치는 한 편으로는 국가의 균형발전과 지역민들의 복리를 증대시키는 데 분명히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반면에 그것이 지역 이익을 넘어 ‘지역 막무가내’로 돌진할 경우엔 그 국가적인 낭비 또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신공항 적지(適地)로 A지역이냐 B지역이냐에 관해서는 양쪽 다 “거기는 안 되고 우리는 된다”의 논거를 제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둘 중 하나가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둘 중 하나는 덜 맞을 것이다. 아니면 둘 다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끝없이 “우리가 꼭 맞는다” “그래서 중앙의 결정은 틀렸다”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누구 말 맞다나 “대통령 노릇 못 해먹을” 일이다.
백지화 결정보다 기술적으로 더 나은 대안이 나올 수 있다 해도,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이 “나는 지역 포퓰리즘 정치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린 것 자체만은 그 나름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고 싶다.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상위(上位)의 제어장치로 하위(下位) 단위들의 호전적인 ‘욕구의 정치’를 눌렀다는 것은, 권위주의 시대 아닌 포퓰리즘 시대에선 흔치 않은 희소가치를 갖는 것이기에.
세종시 문제에 이어 신공항 문제는 우리 당대(當代) 정치의 한 중요한 주제를 던져주었다. 세종시 문제는 포퓰리즘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신공항 문제는 앞으로 어떤 후속편을 보여 줄 것인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 정치에는 가면 갈수록 포퓰리즘의 쓰나미가 험악하게 밀어닥칠 것이다.
이에 대해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도 반대는커녕 제대로 된 분석기사 하나 변변히 쓰지 못 할 것이다. 그랬다가는 당장 불매운동의 철판이 벼락처럼 떨어질 터라. 복지나 지역개발과 관련해서 특히 더 그럴 것이다.
신공항이라는 건조물 자체만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그것을 둘러싼 국가적 요청과 지역적 이해의 충돌이라는 이슈 또한 엄청난 지뢰로 잠복해 있다는 것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