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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反美그림이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입력 2011-03-31 21:10 수정 2011-03-31 21:17

공산당원 피카소의 反美선전그림 '한국에서의 학살'이 교과서에 실리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분석-(주)미래엔 컬처그룹 ③ / 국내에 전시도 못하였던 그림을 교과서에 실어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의도가 궁금하다.
趙成豪(조갑제닷컴)   
 
 
그림의 모티브가 된 ‘신천 양민학살’도 美軍이 주도했단 증거 없어…南韓이 양민학살을 더 많이 자행한 것처럼 서술해.

미래엔 컬처 그룹(舊 대한교과서)의 고등학교 韓國史(한국사) 교과서 8단원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제 정세의 변화> 344페이지, ‘그 때 그 사건,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에스파냐의 화가 피카소는 6·25전쟁 중 양민들이 학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그림을 그렸다. 갑옷을 입은 군인들이 맨몸의 여성과 어린아이를 총과 칼로 공격하는 모습은 전쟁의 참상과 공포, 인간성 파괴 등을 표현하고 있다. 6·25전쟁 중 북한 측은 점령한 남한 지역에서 인민재판을 행했고. 남한 측은 수복한 지역에서 북한군에 협조한 부역자를 처벌하였다. 점령과 수복의 과정에서 처벌과 보복이 자행되어 수많은 양민들이 희생되었다. 특히, 경남 거창, 충북 영동의 노근리, 황해도 신천 등지에서 많은 양민들이 학살되었다.>

舊대한교과서는 위의 설명과 함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1951년 作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 그림도 같이 실었다. 이 그림은 그가 공산당원으로 활동할 때 反美 선전용으로 그린 그림이다.

피카소와 공산당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피카소는 1944년 10월,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 공산당에 入黨(입당)한다. 그는 공산당 기관지《New masses》와의 인터뷰에서 “공산당 입당은 나의 논리적 귀결이다. 나는 진정한 혁명가로서 그림을 위해 항상 투쟁해 왔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공산당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물리학자 폴 랑주뱅, 시인 폴 엘뤼아르, 루이 아라공 등과 함께 공산당에 입당해 활동했다. 이후 노동절에는 노동조합원들과 街頭(가두)행진을 벌이기도 했으며, 공산당 창당 3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비둘기를 안고 있는 사람을 그려주기도 했었다.

휴전때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조지 클라크 장군의 회고록 《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FROM THE DANUBE TO THE YALU)》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정각 美 윌리엄 해리슨 중장과 北의 남일 중장이 커다란 나무 건물 안(판문점 안에 있던 휴전협정 조인식이 이뤄진 건물을 뜻함)에 앉았다. 북한 공산군은 평화의 상징임을 선전하고자 피카소의 ‘비둘기’ 그림으로 내부 전체를 꾸미려 했다. 나는 도쿄에서 이 얘기를 전해 듣고 해리슨 장군에게 전화해 “만약 공산당의 속임수를 상징하는 그림을 없애지 않는다면 저들과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에게 말했다. (P.294)>

교과서에 실린 <한국에서의 학살(Massacre in Korea)>은 피카소가 황해도 신천에서 벌어진 양민학살 소식을 듣고 그렸다고 전한다. 1999년 10월28일字 《한겨레21》은 이 그림이 “美軍이 저지른 신천리 학살을 소재로 그린 것”이라고 단정했다. 2004년 4월18일~19일 일부 언론은 “2004년 6월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을 비롯해 反戰·平和를 주제로 ‘평화국제예술전’을 개회할 것”이라고 앞 다투어 보도했다. (이 전시는 결국 열리지 않았으며, 피카소의 그림도 반입되지 못했다)

“그림의 소재는 미군에 의해 자행된 '신천리 학살'로 알려져 있는데 피카소의 反美 성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 (2004년 4월18일, 연합뉴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개입한 황해도 신천 양민학살이 창작배경이란 설 때문에 반미 작품으로 찍혀 80년대까지 반입금지 예술품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2004년 4월19일, 중앙일보)

“미군에 의한 신천리 양민학살 사건을 묘사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그동안 국내전시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2004년 4월19일, 국민일보)

“'한국에서의 학살'은 한국전 당시 미국의 황해도 신천리 양민학살 사건을 다룬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2004년 4월19일, 문화일보)

“이 그림은 피카소가 한국전쟁 중 양민학살 소식을 접하고 그린 그림이다.”(2004년 4월19일, 조선일보)

“미군이 개입한 황해도 신천 양민학살이 창작 배경이 됐다는 설 때문에…” (2004년 4월19일, 한겨레신문)

“그림의 소재는 미군에 의해 자행된 '신천리 학살'로 알려져 있다.” (2004년 4월19일, 세계일보)

당시 언론은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이 ‘신천리 학살’을 모티브로 그렸다고 했다. 그러나 김원방(53) 홍익대 미대 교수는 “이 그림에 나온 군인이 美軍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림에 단서가 없을 뿐더러 ‘신천 학살’을 모티브로 그렸다고 피카소가 생전에 직접 말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의 경우 그의 모국인 스페인 내전을 다룬 것이라 정치색이 강했을지 몰라도 <한국에서의 학살>은 전쟁의 보편적 아픔을 담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학살>은 정치적 프로파간다(선동)라기 보다는 피카소의 反戰성향을 드러낸 그림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라고도 주장했다.

 프랑스 공산당원의 열성당원이던 피카소가 미군의 한국전 개입을 반대하던 프랑스 공산당의 주문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는 게 서양에선 定說이다. 세계의 좌익들이 反美 선동에 이 그림을 악용하였다.  이런 연유로 국내전시조차 하지 못하였던 그림을 교과서에 넣고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李明博 정부의 의도가 궁금하다.

 이 교과서는 북한군이 점령지에서 행한 학살을 '인민재판'이라고만 표현, 마치 적법한 재판을 거친 것처럼 誤導하였다. 양민 학살이 이뤄졌다는 地名에서도 북한군과 좌익들에 의한 학살지(서울대 병원, 대전형무소, 전라남도 등)는 제외하였다. 신천 대학살이란 미군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북한정권이 창작한 거짓말이다. 교과서의 이런 악질적인 서술에 등장한 피카소 그림을 전교조 교사들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이 정부가 좌익정권이 아니라면 이 그림이 실린 과정을 조사하여 시정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反국가적 교과서를 채택, 학생들이 조국에 원한을 갖도록 만드는 亡國的 교육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自救的 차원에서 李明博-한나라당 정권을 응징해야 할 것이다.

 신천 학살에 대해 북한의 《조선전사 26권》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신천에서의 대중적 학살 만행은 신천 땅을 강점한 美帝침략군의 우두머리인 해리슨 놈의 직접적인 지휘 팀에 계획적으로 감행되었다. 이 살인마는 1950년 10월17일 미제침략군이 신천을 강점한 첫 날 ‘나의 명령은 곧 법이다. 이를 위반하는 자는 무조건 총살한다’고 떠벌리며 전복된 지주, 악질종교인, 고리대금업자, 건달군 등 인간쓰레기들을 제 놈의 졸개로 긁어모아 인민학살에 내몰았다. 이리하여 신천 땅에서는 일찍이 역사가 알지 못하는 야수적인 대중적 학살만행이 감행되었다.>

 6·25 戰史에는 1950년 10월18일 美 육군 보병 24사단 19연대 3대대가 신천에 진입하고 이틀 후인 20일, 진남포로 진격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다시 北進(북진)했다. 美軍 1개 대대가 신천 지역에 머문 기간은 이틀에 불과하며 이 기간 동안 미군이 양민 3만5,383명을 학살했다고 북한은 주장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2003년 8월6일字는 2002년 4월 방영된 MBC-TV <이제는 말할 수 있다-망각의 전쟁篇>에서 다룬 신천 대학살에 대해 보도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좌편향 된 주제를 많이 다뤄 비판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이 기사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조준묵 피디도 “당시 美軍은 평양을 선점하려는 경쟁이 붙어 신천에 오랫동안 머물지 않았다. ‘美軍 주도 주장’을 확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MBC 취재팀은 신천에 진주한 美 24사단 장교명부에서 ‘해리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중위를 찾지 못했다. 신천에서의 학살이 美軍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할 증거가 없는 셈이다. 대한교과서는 이런 사실관계는 배제한 채 ‘경남 거창, 충북 영동의 노근리, 황해도 신천 등지에서 많은 양민이 학살되었다’고 부정확하게 기술했다.

또한 대한교과서는 “6·25전쟁 중 북한 측은 점령한 남한 지역에서 인민재판을 행했고. 남한 측은 수복한 지역에서 북한군에 협조한 부역자를 처벌하였다. 점령과 수복의 과정에서 처벌과 보복이 자행되어 수많은 양민들이 희생되었다”고 기술했다. 북한은 ‘인민재판을 행했고’라고 짧게 쓴 반면, 남한은 ‘북한군에 협조한 부역자를 처벌하였다’고 써 남한에서만 양민학살이 일어난 것처럼 서술했다.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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