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경제적 이유로 귀국 ‘포기’…“여행금지라면 모를까”
  • 지난 11일 일본 동북부에 몰아친 대지진 및 쓰나미로 인한 전시상태가 일본 전역을 강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후쿠시마의 원전이 방사능이 일부 유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국인 유학생, 주재원 등이 대거 한국행을 택했으나 이들의 고민은 ‘현재 진행형’이다.

    개강 앞둔 유학생들 “일본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일본 게이오대에 재학중인 김명훈(가명‧24)씨는 지난 13일 한국으로 급거 귀국했다. 겨울방학 동안 일본에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여행을 계획했으나 참담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전면취소, 한국행을 택했다.

    김씨는 “9.0의 지진이 일었다지만 일본 사람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지진이 발생한 이튿날에도 우동집 아르바이트에 전원 출근했다”고 설명했다. 김씨의 갑작스런 귀국은 본인의 안전에 대한 우려보다는 가족들의 성화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그는 “부모님이 크게 걱정하시는 것 같아 일단 귀국했다. 귀국하자마자 원전 상황이 악화되니 사실 귀국하기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밝혔다.

    일본 메이지대 3학년인 이영미(가명‧25)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는 “부모님 성화에 못이겨 일시 귀국하기는 했지만 일본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면서 “5년 넘게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절반은 일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렇게 도망오고 말았다. 외국인으로는 계속된 여진 공포와 물자비상 등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 ▲ 이영미씨 비상용 가방에는 물, 라디오, 손전등, 마스크, 쿠키 등과 같은 식량이 들어 있다. ⓒ 뉴데일리
    ▲ 이영미씨 비상용 가방에는 물, 라디오, 손전등, 마스크, 쿠키 등과 같은 식량이 들어 있다. ⓒ 뉴데일리

    귀국편을 구하기 위해 이씨는 하네다 공항에서 무려 14시간동안이나 대기하며 누군가의 취소된 항공권을 기다렸다. 한국으로 돌아온 날 그는 지진 발생 이후 처음으로 긴 잠을 잤다. 밤에도 계속된 여진과 핸드폰 지진경보 알람에 잠을 제대로 이룬 날이 없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현관문 앞에는 피난용 가방이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3일은 거뜬히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식량과 손전등 등 비상물품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한국으로 일시귀국한 이씨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는 “이제 4월이면 학기가 시작되는데 이 상황에서 일본을 가도 되는지 걱정”이라며 “원전공포가 아직도 도사리고 있으나 일본 대학은 큰 무리없이 학기를 시작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어 “원전사태가 종결되기 전에 일본으로 돌아가는게 두렵다”면서도 “방사능공포, 지진에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론 지금까지 공부한 게 수포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사실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이제 겨우 자리 잡았는데…한국行, 사장에게 말 못해”

    그래도 학생들의 사정은 좀 나은편이다. 일본에 생활 터전을 잡고 직장생활을 하는 한국인들은 귀국행은 꿈도 못 꾸고 있다. 일본의 의류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김연희(가명‧29)씨는 지진이 났을 때부터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김씨는 “다음달 회사가 인수합병을 앞두고 있어 눈코뜰새 없이 바쁘다”면서 “다들 자정을 넘도록 일하고 있는데 휴가차 잠시 한국을 다녀오겠다는 말이 도저히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미혼인 그는 “집으로 홀로 들어서는 일이 두렵다”면서 “집에 혼자 있을 때 여진으로 천장이 흔들릴 때마다 무서워 미쳐버릴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한국행을 택하는 일은 쉽지 않다. 김씨는 “어렵게 자리 잡았는데 지금 한국을 가는 건 여기 생활을 포기하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버틸 때까지 버텨보겠다는 심산이다.

    도쿄에 거주하고 있는 정희정(가명‧33)씨는 “지난 2~3일 사이 주변에 한국사람 절반 이상이 한국으로 돌아갔다”면서 “한국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인 걸로 안다. 일본회사에 다니는 경우, 한국 정부의 결단(여행금지국)이 없는 한 생업을 포기하고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