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웬 대통령 下野 씩이나?

     종교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이것이  근대사의 시작이었다. 예수님 부처님 마호메트님 자체가 아닌, 종교권력화 된 조직의 횡포로부터 벗어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해방’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등 세속주의의 타락으로 먹칠을 했다. 종교로부터 벗어난 세속주의가 할 말을 잃게끔 된 것. 사람들은 다시 종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잃어버렸던 영성(靈性)의 회복에 목말랐기 때문이다.

      인간은 매사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왔다 갔다 스윙하는 존재인지, 요즘엔 또 종교권력이 엄청 세지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대통령 하야, 이명박 아웃, 4대강 반대, 낙선(落選) 운동, 천성산 터널 반대, 새만금 반대, 사찰 경내(境內) 농성....정치인과 청와대가 그럴 때마다 꼼짝 못하고 짤짤 맨다. 종교 세력들 사이의 극렬한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배타적인 종교적 근본주의의 권력화를 두려워하는 견해도 있다.

      제정일치(祭政一致)로부터 성속분리(聖俗分離)로 나가자는 것이 종교와 세속주의가 이룩해 낸 슬기로운 타협점이었다. 그러나 특정한 공공 사안(事案)을 놓고 종교계가 “우리도 할 말 있다”면서 헌법상 보장된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고 나설 때 세속권력이 이를 못하게 할 방도는 없다. 권위주의 정권이 간혹 그걸 못하게 했다가 오히려 혼 줄이 난 적이 많다. 민주정권들도 종교편향이나 인권침해의 혐의를 받았다가는 괜히 가만히 있던 종교계의 성난 개입을 자초하는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종교편향’의 의도가 있었건 없었건 그런 혐의를 받을 만한 징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신도들이 신성시 하는 종교계를 정권들이 깜빡 실수로라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그쪽의 격렬한 반발을 산다는 것을 당국자들일 수록 명심해야 한다.

      반면에 공공정책에 대한 찬-반을 신자(信者) 개개인의 선호(選好)와 양심에 맞기지 않고 종교 당국이 “이건 하느님의 말씀이니라” 하는 식의 집단적 찬-반 행동으로 밀고 나가는 방식은 과연 바람직할까?. 4대 강에 찬성하는 정당과 후보들은 낙선시키자며 종교계가 선거 때 세(勢)를 과시하는 방식, 여차 하면 대통령 하야 투쟁 할 터...라고 으름장을 놓는 방식도 과연 적절한가? 정책 논쟁은 얼마든지 좋다. 그러나 찬-반을 거대한 집단의 위력으로 밀어붙이거나 ‘신불(神佛)의 이름으로’ 요구 또는 단죄(斷罪)하는 방식은 어째 썩 흔쾌하지가 않다.

      요는 절제(節制)의 문제로 귀일한다. 이건 비단 세속권력과 종교권력만의 사항이 아니라 인간만사에 해당하는 덕목이리라. 과유불급(過猶不及)-고대의 제정일치, 중세의 종교독재, 근현대의 세속적 무신론적 광신주의, 오늘의 일부 지역의 근본주의 종파(宗派)를 각각 돌아보면서 거기서 모든 당사자들이 절제를 터득했으면 좋으련만.

     류근일 /본사고문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