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는 왜 김영삼類를 경멸하였는가? 
      
     박정희는, 김영삼 등을 舊정치인이라고 규정, "덮어놓고 흉내낸 식의 절름발이 직수입 민주주의"를 맹신하는 사대주의자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趙甲濟   
     
     金泳三 전 대통령이 13일 또 다시 朴正熙 전 대통령을 향하여 “군사쿠데타의 원흉”이라고 원색적으로 비판했다고 조선닷컴이 보도하였다.
     
     金 전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과 관련, “이집트 시민혁명의 승리를 민주주의와 자유를 사랑하는 세계인들과 함께 환영한다”며 “독재정권은 반드시 붕괴되고야 만다는 역사의 진리를 거듭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金씨는 이어 “우리나라는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킨 4·19 민주혁명,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을 붕괴시킨 부마민주항쟁, 전두환 독재에 저항한 5·18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등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투쟁사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랑하는 조국에 군사쿠데타라는 죄악의 씨를 뿌린 원흉이 바로 박정희 육군 소장”이라며 “이후 일제 치하 36년에 버금갈 만한 32년 동안 군사정권이 이 나라를 지배했고, 독재자 박정희는 18년간 장기 집권하며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고 공격했다. 이 조선닷컴 기사엔 470개가 넘는 댓글이 붙어 있는데, 압도적으로 김영삼씨를 비판하고 박정희를 옹호하는 내용이다. 적어도 네티즌 세계에선 김씨가 참패하였다.
     
     朴正熙는 생전에 김영삼類의 정치인들을 '사대주의자'라고 경멸하였다. 그의 이런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은 1963년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라는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한민당에 뿌리를 둔 해방 후의 정치세력을 '민주주의의 탈을 쓴 봉건적 守舊세력'으로 규정했다. "그들 구정치인(舊政治人)이야말로 '덮어놓고 흉내낸 식의 절름발이 직수입 민주주의'를 맹신하는 사대주의자'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그의 혁명적 역사관은 서구식 민주주의 맹신자들이야말로 조선시대의 당파싸움 전문가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위선적 명분론자라고 규정했다.
     
      그는 4.19와 5.16혁명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4.19혁명은 "피곤한 5천년의 역사, 절름발이의 왜곡된 민주주의, 텅 빈 폐허의 바탕 위에 서서 이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라는 명제를 던졌고 이 명제에 해답하기 위한 '역사에의 민족적 총궐기'가 5.16 군사혁명이란 것이다. 4.19와 5.16을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것은 자유당과 민주당을 똑같은 봉건적, 守舊的 세력, 즉 근대화 혁명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뜻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4.19 학생혁명은 표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타도하였지만 5.16 혁명은 민주당 정권이란 가면을 쓰고 망동하려는 내면상의 자유당 정권을 뒤엎은 것이다."
     
      다수의 국민들과 지식인들이 자유당을 독재, 민주당을 민주세력으로 보고 있었던 데 대하여 박정희는 그런 형식논리를 거부하고 그들의 본질인 봉건성을 잡아채어 둘 다 역사 발전의 反動세력이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어디에도 합헌(合憲)정권을 무너뜨린 데 대한 죄의식과 변명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당시에 박정희가 이런 혁명적 시각을 자신의 신념으로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원(不遠)한 장래에 亡國의 비운을 맛보아야 할 긴박한 사태를 보고도 인내와 방관을 美德으로 허울 좋은 국토방위란 임무만을 고수하여야 한단 말인가. 정의로운 애국군대는 인내나 방관이란 허명(虛名)을 내세워 부패한 정권과 공모하고 있을 수는 도저히 없었다. 말하자면 5.16 혁명은 이 공모를 거부하고, 박차고 나와 내적(內敵)의 소탕을 위하여 출동한 작전상 이동에 불과하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朴正熙는 특히 부자집 아들로 태어나서 6.25 전쟁 때 군대에 갈 나이에, 張澤相 의원 비서를 하면서 戰線을 피한 金泳三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