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적으로 흔들어대는 ‘복지 깃발’복지 광풍에 희생되는 것은 국민뿐정치인이기를 포기한 염치 없는 정치인들
  • <방민준칼럼> 엄동설한에 복지 열풍(福祉 熱風)

     

    ◇ 경쟁적으로 흔들어대는 ‘복지 깃발’

    엄동설한에 때 아닌 복지 열풍(福祉 熱風)이 몰아치고 있다.

    지난해 6월 지자체 선거 이후 이슈로 부상한 무상급식 문제가 복지 열풍의 좋은 불쏘시개가 되었다.

    ‘부자급식’이란 비아냥까지 듣는 무상급식이 지자체와 의회, 교육청의 팽팽한 대립으로 합일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의 한 사람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 12월20일 ‘한국형 복지국가’의 기치를 내걸면서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복지 열풍이 들불처럼 번지는 형국이다.

    박 전 대표는 한국형 복지국가는 ‘사후적 복지에서 선제적·예방적 복지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교육투자와 직업훈련을 강화해 노동자들이 급변하는 노동시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생애주기별 맞춤 복지’도 언급했고 노령층에 몰린 복지를 전 시민이 고르게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보편화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박희태 국회의장은 박 전 대표를 ‘미래의 유력한 권력’으로 치켜세우며 “사회서비스로 복지의 절반을 채워 복지가 돈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고 칭송하기까지 했다.

    해를 넘기자 이번엔 손학규 민주당대표가 ‘사람 중심의 함께 가는 복지국가’를 들고 나왔다.

    지난 10일 취임 100일을 맞아 가진 신년기자회견에서 손 대표는 “민주당이 추구하는 보편적 복지는 없는 삶을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인격적으로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정신에 입각해 있다”면서 ‘무상의료’라는 비장의 카드를 흔들었다.

    박 전 대표나 손 대표가 약간의 시차를 두었지만 비슷한 성격의 ‘복지 카드’를 들고 나온 깊은 내막은 알 길이 없다. 이들이 복지에 대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여론 수렴은 어느 정도 했는지, 선진국의 사례를 얼마나 연구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 복지 광풍에 희생되는 것은 국민뿐

    그러나 국민들은 알고 있다. 이들이 내건 복지는 겉만 번지르르 한 정치구호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미사여구로 포장된 복지는 표를 얻기 위한, 그리고 궁극적으로 권력을 잡기 위한 정치 전략으로 내건 깃발일 뿐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어떻게 국민의 여론을 수렴해, 무슨 돈으로, 어떤 방법으로 복지정책을 실현할 것인지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들이 치켜든 깃발은 찬바람에 허허하게 펄럭이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복지 열풍’이 이제 겨우 불기 시작했는데도 그 열기가 이렇게 뜨거운데 총선,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물속의 잠룡(潛龍)들이 고개를 쳐들고 다투기 시작하면 얼마나 많은 복지의 깃발들이 춤출 것인가.

    그동안 빚어진 무상급식 논란으로 포퓰리즘의 추한 모습을 역겹도록 목도해왔는데 그보다 더한 백가쟁명 (百家爭鳴)식의 복지 깃발에 휘둘릴 일을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다.

    복지가 좋다는 걸 누군들 모르겠는가.

    그러나 복지는 돈을 먹고 자란다. 복지의 질이 높아지고 폭이 넓어질수록 그만큼 많은 돈이 필요하다.

    ◇ 정치인이기를 포기한 염치 없는 정치인들

    재정 뒷받침이 없는 과도한 복지정책이 국가를 파탄시키고 국민을 도덕적 해이에 빠뜨린다는 것은 1970년대의 ‘영국병’이 좋은 사례다.

    국민건강보험이란 좋은 제도를 두고 왜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하지 않는 무상의료를 들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선량한 국민들의 복지 개념을 마비시켜 원하는 표를 얻겠다는 심사인가. 아니면 복지를 선거의 만병통치약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인가.

    얼마나 많은 국민이 정치인들이 뱉어내는 복지 광풍(狂風)에 희생될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정말 염치없는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본사부사장/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