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랑자 ⑫  

     「너 몇 살이냐?」
    서북쪽 카우아이(Kauai) 섬의 교회에서 강연을 마친 내가 정원 나무 밑에 서 있던 소녀에게 물었다.

    「열살입니다.」
    제법 또렷하게 대답한 소녀가 부끄러운지 옆쪽으로 발을 떼었으므로 내가 손짓으로 불렀다.
    「이리 오너라.」
    교회 안에서 내 강연을 들었기 때문인지 소녀는 주저하면서도 서너 걸음을 걸어 내 앞에 섰다.
    이쁘장한 얼굴, 저고리와 치마는 낡았지만 깨끗했다. 교회에 나온다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을 것이다.

    그때 내 옆으로 국민회 총무 안현경(安玄卿)이 다가와 섰다. 안현경이 이번 각 교회 순방길에 동행한 것이다.

    그때 내가 다시 소녀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어냐?」
    「김미옥입니다.」
    「이름도 예쁘구나. 네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
    「농장일 때문에 교회에 못오셨어요.」
    「저런, 그럼 넌 학교에 다니느냐?」
    그 순간 소녀가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더니 나와 안현경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자 옆에 서있던 안현경이 말했다.
    「여자애들은 학교 다닐 데가 없습니다.」
    「그럼 집에서 일만 합니까?」
    내가 물었더니 안현경이 쓴웃음을 짓는다.
    「일찍 결혼을 시키지요. 돈이 없는 집안에서는.」
    내 옆으로 바짝 다가선 안현경이 입을 내 귀에 붙였다.
    「여자 아이를 돈을 받고 팝니다. 여긴 여자가 귀하거든요.」

    길게 숨을 뱉은 내가 소녀에게 물었다.
    「네 집이 어디에 있지?」
    「여기서 십리쯤 됩니다.」
    이제는 두려움이 가셨는지 소녀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옆쪽을 보고 주춤거렸다. 교회 벽쪽에 또래의 소녀들이 서너명이나 모여 있는 것이다.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서 놀거라.」
    기다렸다는 듯이 소녀가 그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지금 열흘 째 하와이의 각 섬을 돌아보고 있다. 3개 유인도에 교민들이 없는 곳이 없다. 교회 앞마당에는 모처럼 모인 교민들이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나와 시선이 마주치면 모두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답례를 하면서도 내 가슴이 무거워졌다.

    순방을 마친 나는 호놀루루로 돌아온 다음날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총회장 박상하(朴相夏)를 방문했다.

    「아직 여독이 풀리지 않으셨을 텐데요.」
    나에게 자리를 권하면서 박상하가 말했다.
    「박사님, 건강을 챙기셔야 됩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마친 내가 정색하고 물었다.
    「교민 여학생을 위한 교육이 시급한데요. 국민회에서는 계획이 있습니까?」

    「그것은.」
    쓴웃음을 지은 박상하가 말을 잇는다.
    「그것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했습니다. 하와이 섬에서는 부모가 무리를 하면 여학생 교육을 시킬 수 있지만 학비가 부담이 되는데다 멀리 떨어진 섬에서는 그것도 힘든 상황이지요.」
    그러더니 덧붙였다.
    「박사님께서는 벌써부터 하실 일을 찾아내고 계시군요. 저희들이 적극 후원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한성감옥서 안에서도 학당을 열어 갇힌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부모 대신 갇힌 아이들이었는데 지금은 모두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개명한 나라. 미국에까지 와서도 자식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팔려가다니, 말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