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앞에 이어]
     
     남한과 북한, 대한민국과 이른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正統性(정통성) 문제는 이승만과 김일성에 대한 평가로 요약된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저주하며 침 뱉는 이들은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나라라고 욕하면서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神話化(신화화)한다.
     
     
  • 1945년 독립 당시 이승만과 김일성은 각각 70세와 34세. 일생을 민족의 독립에 헌신한 이승만의 투쟁을 부정하고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을 비상식적으로 과장한 이 같은 시각은 북한은 물론 남한 내 친북세력의 사상적 기초를 이룬다. 이러한 왜곡은 ‘김정일 코드(브루스 커밍스 著. 남성욱 譯)’에도 정교하게 삽입돼있다.
     
     ‘김정일 코드’에 나오는 김일성에 대한 묘사는 낯 뜨거운 수준이다. 김일성과 관련, “고전적 로빈 후드”, “가장 유명한 지도자”, “위대하고 유능한 지도자”, “조선의 영웅으로 찬양”, “그의 부대원들은 정말 용감하다”, “엄청나게 강한 매력”, “우리의 총사령관·위대한 지도자·현명한 교사·다정한 친구는 다름 아닌 김일성 장군이다”는 등의 표현이 반복된다. 또 “김일성이 러시아의 꼭두각시인 것처럼 비춰진 것”에 대해 “오해”라고 강조한다. 일부를 인용해보자.
     
     “김일성은 고전적 로빈 후드와 같은 인물이 되어 이러한 억센 자들 사이에 둥지를 틀었다.(36p)”
     
     “김일성의 명성은 일본인들에 의해 높아진 측면도 있다. 그들은 신문을 통해 김일성을 추격해 살해하기 위해 일본이 고용한 한국인 배반자들과 김일성 사이의 갈등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38p)”
     
     “당시 국무부 일본과에 근무하던 매큔은 1937년 소련 저널에 실린 다음과 같은 글을 번역시켜 놓았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위대하고 유능한 지도자는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그들 가운데 김-니-첸(김일성)부대가 특히 두드러졌다. 그의 부대원들은 정말 용감하다. 가장 위험한 작전은 모두 그 부대가 도맡아 처리한다.(39p)”
     
     “그들은(일본군) 김일성을 1930년대 후반 한국 게릴라 두목 중 ‘가장 유명한’ 지도자로 묘사했다. ‘김일성은 만주에서 조선인들 사이에 인기가 매우 높았다. 그를 조선의 영웅으로 찬양하고 비밀리에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조선인들이 매우 많았다고 한다.(40p)”
     
     “소련은 동북항일연합군 소속 생존자들을 재조직하여 붉은 군대 산하 제88독립여단을 창군했다. 일본 제국주의와 대결한 용감하고 격렬한 전투의 막바지에 이런 일 때문에 여러 가지로 오해가 발생한다. 김일성이 러시아의 꼭두각시인 것처럼 비춰진 것도 이 일에서 기인한다.(47p)”
     
     “인런 부류의 인간은 선천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엄청나게 강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게릴라 부대가 가진 가장 큰 행운은 부대의 중앙에 위대한 태양을 모시고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총사령관·위대한 지도자·현명한 교사·다정한 친구는 다름 아닌 김일성 장군이다.(김일성 부대에서 활동한 한 무명의 대원. 50p)”
     
     “무엇보다도 우리 규율의 정신적인 근간은 존경심이다. 그리고 가장 큰 존경심은 김일성 장군을 위한 것이다. 우리의 철칙은 김일성 장군을 존경하고 그에게 복종하는 가운데 점점 강력해진다.(51p)”
     
     “전체적으로 볼 때 만주에서 경험한 영욕과 신산의 세월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북한의 진실·이야기·드라마·신화·영웅전의 산실이다. 그것은 ‘국권의 상실과 투쟁 그리고 궁극적인 보상을 읊은 서사시이자 한국의 식민지화 그로부터의 재건을 시사하는 은유’다(55p)”
     
     브루스 커밍스는 책 각주에서 “한홍구의 역사적 해석은 한국, 중국 및 일본의 희귀한 자료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북한 지도력의 원천들을 연구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영어 서적이다(307p)”라 하여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의 영어판 서적을 가장 많이 참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한홍구 교수 역시 김일성에 대한 편향된 美化(미화)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수많은 抗日(항일) 영웅·투사들을 덮어둔 채 소규모 빨치산 투쟁을 벌였던 청년 김일성만 추켜세우는 시각은 조선로동당을 정당화하는 북한식 史觀(사관)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브루스커밍스 역시 “강력한 반제국주의와 주체사상에 매력을 느끼는 다수의 남한 청년들(···) 그러한 청년들의 숫자는 늘어나는 추세”, “북한에는 부인할 수 없는 자유가 존재하며 그것은 한국적인 한국인이 되는 자유” 운운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북한주장이 존중할 만하다 믿는 것은 얼간이와 바보들밖에 없다는 미국인들의 가정이 틀렸다는 것은, 강력한 반제국주의와 주체사상에 매력을 느끼는 다수의 남한 청년들이 실증하고 있다. 그러한 청년들의 숫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10여 년간 학생시위를 주도해 온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은 북한 이념의 핵심을 수용하고 있다.(···)황석영과 같은 저명한 소설가들은 북한이 오염되지 않은 소박하고 목가적인 곳이며 잃어버린 한국의 과거를 되찾을 수 있는 순수한 곳으로 묘사한다. 그는 북한방문을 통해 본질적인 한국의 근원을 목격했다고 여기고 있다. 결국 북한에는 부인할 수 없는 자유가 존재하며 그것은 한국적인 한국인이 되는 자유다.(255p)”
     
     브루스커밍스의 결론은 詩的(시적)이다. “그들은(편집자 주: 북한정권) 눈보라치는 허허벌판에서 도조(편집자 주 : 도조히데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의 총칼에 맞서서도 격렬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무슨 짓이라도 하려고 덤빈 그리하여 악마의 얼굴을 그대로 닮은 도조와 동일한 파시스트들 앞에서도 무릎을 굻지 않았던 사람들이다”(297p)
     
     <1931년 10월에 중국 안도에서 中國共産黨 가입>
     
     브루스커밍스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찬양에 가깝게 감싸고 있지만 이는 비상식적으로 과장된 것이다. 김일성의 항일투쟁은 19세이던 1931년 10월에 중국 안도에서 中國共産黨(중국공산당)에 가입한 것으로 시작됐다. 김일성은 그 후 만주 안도의 소사하라는 곳에서 순시원으로 일했고 이곳에서 중국 공산당의 지령에 따라 別動隊(별동대)를 조직했다. 15~16명 정도의 소규모 부대였는데 전투부대는 아니고 빨치산도 아닌 길 안내 등을 맡는 지원부대였다.
     
     북한은 김일성에 대한 역사를 날조하면서 이 별동대를 김일성이 단독으로 만든 朝鮮人民革命軍(조선인민혁명군) 산하의 항일유격대라고 선전하고 있다. 1930년 7월6일 김일성이 조선혁명군을 창설하고 4년 뒤엔 다른 항일부대들을 통합, 조선인민혁명군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조선혁명군이란 명칭의 독립군이 당시 남만주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 군대는 민족주의 계열, 즉 反共(반공)독립운동세력인 국민부에서 창설하여 운영하던 부대였고 양세봉이 총사령관이었다. 양세봉은 김일성이 협력을 요청해올 때 “민족주의자들은 당파는 만들지만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며 문전박대했다. 공산주의자들이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을 죽인 일을 이른 것이다.
     
     북한의 史書(사서)는 김일성이 中國共産黨(중국공산당)에 가입한 사실을 숨기고 그냥 共産黨(공산당)에 가입했다고 기술한다. 누가 봐도 조선공산당에 가입한 것처럼 오해하도록 조작한 것이다.
     
     김일성이 소규모 부대를 이끌고 벌인 1930년대 만주에서의 항일투쟁은 전적으로 그가 소속된 중국공산당 산하의 동북항일연군 지휘 하에 이뤄졌다. 김일성이 抗日(항일)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조선독립운동을 한 것은 아니다. 중국이 일본군의 침략을 당하고 있는 판인데 중국이 자신의 영토에서 조선인으로 하여금 항일운동을 지휘하도록 내버려 뒀을 리도 없다.
     
     김일성의 대표적인 조선독립운동으로 선전되는 1937년 보천보전투와 1939년 무산전투 역시 과장된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 30여 권의 저서를 집필한 근현대사 연구의 대가 故 李炫熙(이현희)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보천보전투와 무산전투에 대해 각각 “보천보라는 里(리)단위 마을을 야습해 하루 동안 분탕질한 것”, “무산의 일본 주재소를 습격했던 유사한 사건”으로 평가한다. 일종의 보급투쟁 정도였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의 제2軍(군) 6師(사) 師長(사장)의 지위에 있다가 소련으로 피신했다. 그의 상관은 중국인 주보중, 양정우 등이었다. 북한정권은 김일성이 소련으로 달아난 사실을 숨긴 채 조선인민혁명군을 지휘해 일제와 끝까지 싸웠고 북한을 해방했다고 주장한다. 실재하지도 않은 조선인민혁명군이 민족의 독립을 가져왔다는 어처구니없는 날조 위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북한이다.
     
     김일성의 항일투쟁은 북한의 역사학계에 의해 사실상 창작됐고 이러한 평가는 남한의 소위 민중사관론자들에게 무비판적으로 수용됐다. 민중사관론자들은 보수세력에 대한 반발로 사료에 대한 취사선택이나 비판 없이 북한식 평가를 받아들인 것이다. 브루스커밍스의 ‘김정일코드’에 나오는 김일성에 대한 시각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의 憲法과 國號 역시 스탈린이 지어준 것>
     
     김일성은 소련의 꼭두각시로서 북한의 지배자가 된 자이다. 북한의 憲法(헌법)과 國號(국호) 역시 스탈린이 지어준 것이고 6·25 남침 작전계획도 소련 군대가 작성해줬다. 스탈린의 힘을 빌려 동족을 치는 전쟁을 벌이고 한반도를 국제전쟁터로 만든 것이 바로 김일성이다. 철수했던 미군을 다시 불러들인 자도 김일성이다.
     
     중공군도 김일성이 불러들였다. 중국 만주 쪽인 단동에 ‘抗美援朝(항미원조) 전쟁기념관’이라는 곳이 있다. 거기는 1950년에 김일성과 박헌영이 모택동에게 보낸 자필 편지가 전시돼 있다. 김일성이 편지를 썼을 때는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이 도망가던 시점이다. 편지 원문은 이렇다.
     
     《우리의 자체의 힘으로서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당신은 모택동입니다)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즉 적군이 38도선 이북을 침공하게 될 때에는 약속한 바와 같이 중국인민군의 직접 출동이 절대로 필요하게 됩니다. 이상과 같은 우리의 의견을 당신에게 제의하게 되니 이에 대한 당신의 회답을 우리는 기다립니다.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김일성-박헌영. 1950년 10월1일 평양시.》
     
     편지는 유엔군이 쳐들어오니 중국 인민해방군을 보내달라는 뜻이다. 여기에 보면 “약속한 바와 같이”라고 돼 있다. 즉 모택동이 인민군을 보내서 김일성을 돕기로 약속을 미리 했다는 뜻이다.
     
     김일성은 6·25 직전 스탈린 지시를 따라서 모택동을 만났다. 여기서 모택동은 미군이 개입을 하면 중공군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 약속에 따라서 김일성-박헌영은 모택동에게 “약속한 바와 같이 중공군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이 부탁을 받은 모택동은 10월19일 인민해방군을 抗美援朝軍(항미원조군), 지원군으로 위장을 하여 압록강을 건너게 한다.
     
     김일성은 6.25당시 두 번의 민족반역 행위를 저질렀다. 전쟁을 일으킬 때 스탈린-모택동의 도움을 받았고 북진 시 중공군을 끌어들여 통일을 저지했다. 이때 중공군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대한민국은 1950년 10월 말 통일이 됐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400만 명의 인명이 살상됐다. 김일성은 400만 명을 전쟁으로 몰아 죽게 만든 한민족 역사상 최악의 反(반)민족 세력이다.
     
     김일성은 6·25 이전에도 10월 대구폭동, 조선정판사 위폐사건, 여순반란사건, 제주4·3사태 등의 背後(배후)였다. 이는 소련 스티코프 대장 문서 등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김일성은 미군 포로는 다 돌려주면서 수만 명에 달하는 국군포로는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민족보다 동족을 더 핍박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박정희,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목숨을 노린 테러를 여러 차례 했다.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 1974년 8.15 陸英修(육영수) 암살사건, 1983년 10.9 아웅산 테러, 그리고 1987년 11월29일 KAL기 폭파사건이 있다. 그 아들 김정일은 체제유지를 위해 300만 명에 달하는 주민들을 餓死(아사)시켰다. 동족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우리 민족사 최고의 학살자 김일성을 가리켜 “고전적 로빈 후드”, “가장 유명한 지도자”, “위대하고 유능한 지도자”로 격찬한 브루스커밍스 式(식) 주장은 황당한 일이다. 그러나 브루스커밍스가 만들어 놓은 김일성에 대한 왜곡과 과장은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날선 낫이 되어 지금도 거침없이 세상을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