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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식사를 마치고 두 부부는 따로 빠졌다. 그리고는 지난번처럼 윤상기가 윤대현에게 너희들도 놀고 오라면서 10만원권 넉장을 주었다.
밤 9시 반, 윤대현과 고수연은 일식당 앞에 나란히 서서 두 늙은 재혼부부가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때 윤대현이 불쑥 말했다.
「뭐? 우리 둘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고? 귀신이 달밤에 수박 먹는 소리 하고 있네.」고수연은 가만있었고 윤대현이 말을 잇는다.
「좋아 죽는구만. 아니, 저렇게 정신없이 빠져들 수가 있는거야? 저게 진짜 내 아빠야?」그때 옆에서 무슨 소리가 났으므로 윤대현이 머리를 돌렸다. 고수연은 앞쪽을 노려본 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보니까 이쪽 콧구멍하나가 희미하게 벌름거리고 있다.
다시 윤대현이 말을 이었다.
「시바, 내 선물이 뭐야? 새벽시장에서 바꾼 스웨터 하나에다 짝퉁시계. 이거 너무 차이가 나잖아?」
「......」
「지 아들이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는데도 히히 거리면서 뭐? 너희들뿐이다? 조까라고 해.」그때 윤대현의 눈앞에 흰 것이 불쑥 나타났으므로 말이 그쳐졌다. 보니까 손바닥이다. 고수연의 손바닥이 눈앞에 떠있다.
손바닥을 노려보는 윤대현에게 고수연이 말했다.
「반 내.」
「못내겠다면?」대뜸 물었더니 손바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사기, 횡령이야. 고소 할테니까.」
「해라.」어깨를 부풀린 윤대현이 으르렁거렸다.
「변호사 사야될거다.」
「도둑놈.」손을 내린 고수연이 허리에다 두 팔을 얹고 노려보았다. 지나던 남녀가 둘을 힐끗거렸다. 어떤 넋빠진 놈은 둘을 보다가 가로수 받침대에 몸이 걸렸다.
「드러죽겠네. 빨랑 반 안내?」
「이건 술 마시라고 준 돈야.」눈을 치켜뜬 윤대현이 발을 떼면서 말을 잇는다.
「술 마실테니까 니 몫을 받겠다면 따라와 처마셔. 절반만 말이다.」
「내가 못따라갈 것 같니?」
「안오는게 나을텐데.」
「뭐가 무섭다고?」따라 걸으면서 고수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눈을 치켜뜨고 있어서 지나던 사람들이 자꾸 보았다.
택시 정류장에서 빈 택시를 잡은 윤대현이 뒷좌석에 탔더니 1초쯤 망설이던 고수연이 앞쪽 자리에 앉았다.
「아씨, 청담동 국제빌딩 앞으로 가주세요.」
뒷좌석의 윤대현이 말하자 운전사는 차를 발진시켰다. 이곳은 논현동이라 10분도 안걸리는 거리다. 길도 잘 뚫려서 택시는 금방 국제빌딩 앞에서 멈춰섰다.
택시비를 낸 윤대현이 따라 내린 고수연을 보았다. 그리고는 혀를 세 번이나 두드리고 나서 물었다.
「꼭 그렇게 뜯어 먹어야겠냐?」
「내 몫 찾아먹는거다.」이제는 고수연이 반말로 나갔다. 입맛을 다신 윤대현이 앞장을 섰고 한걸음쯤 뒤쪽의 오른쪽에서 고수연이 따른다. 이십미터쯤 걸은 윤대현이 발을 멈춘 곳은 네온간판 밑이었다.
머리를 든 고수연은 숨을 들이켰다. 네온간판 이름이 「돈주앙」이다. 호빠, 이 망할놈이 나간다는 호빠인 것이다.
그때 윤대현이 말했다.
「들어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