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빠가 먼저 들어가.」
    여관 앞에서 정수민이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가로등을 등지고 선 얼굴은 그늘에 덮여져 있다.
    「들어가서 방 번호만 말해줘. 내가 쫌 있다 갈게.」

    그러자 김동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웃었다.
    「니가 안 오면? 난 여기서 방 값만 버리고 나온단 말이지?」
    「아냐. 꼭 들어갈게.」

    김동수가 주위를 둘러보는 시늉을 했다. 도로에서 30미터쯤 안쪽의 골목에 둘이 서있다. 오가는 행인도 드문드문했고 여관에 들어가기 좋도록 가로등도 뒤쪽에 한 개 뿐이어서 어둡다.

    「여관 들어가기 싫다면 그냥 말해. 나도 안들어갈 테니까.」
    김동수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여기까지 왔다가 같이 들어가기 싫다면서 나중에 들어오겠다니. 그게 말이나 되냐?」
    「아냐, 정말야.」
    「아, 시발.」

    마침내 입맛을 다신 김동수가 어깨를 치켜세웠다가 내리더니 발을 떼었다. 다시 골목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시발, 장난하고 있어.」
    걸으면서 정수민 들으라고 한마디 했다.

    그런 성격의 친구가 가끔 있다. 분위기에 휩쓸려 어울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와락 겁이나 주춤거리는 유형. 그때는 말도 되지 않는 핑계를 대면서 일단 그 자리를 모면하려고 허둥댄다. 정수민이 바로 그 꼴이었다.
    그리고 그런 유형은 절대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어깨를 흔들며 걷던 김동수가 다시 혼잣말처럼 말을 뱉는다.
    「하마터면 클날 뻔 했네. 마침 잘 됐어.」

    골목 밖으로 나온 김동수가 마침 지나는 택시를 세우고 탔다. 운전사에게 행선지를 말한 김동수가 시트에 등을 붙이고는 길게 숨을 뱉았다.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개운했다.

    김동수가 계약금식으로 같이 여관에 가자고 했을 때 정수민은 선선히 응했던 것이다. 분위기에 휩쓸린 것이 분명하다. 뭐? 내놓을게 두개라구? 김동수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하마터면 똥 밟으려다 만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무슨 각서네 합의서 따위도 만들지 않았지만 그렇게 엉키고 나면 귀찮게 만드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그때 핸드폰이 진동을 했으므로 김동수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핸드폰의 발신자 화면에 정수민의 번호가 찍혀져 있다. 김동수는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다시 넣었다. 그러자 핸드폰이 죽어가는 벌레처럼 몇 번 더 떨다가 멈췄다. 이것으로 끝이다.

    그때 다시 핸드폰이 진동을 한번 하더니 멈췄다. 메시지다. 핸드폰을 꺼내 든 김동수가 발신자를 보았다. 정수민이 메시지를 보냈다. 김동수가 메시지 버튼을 누르자 글자가 떴다.

    「오빠, 나 309호실.」
    정수민이 먼저 방에 들어가 있다는 말이었다. 순간 숨을 멈춘 김동수가 머리를 들었다. 머릿속에서 다시 맹렬한 계산이 일어났다.

    「아저씨, 돌아가 주세요.」
    계산이 끝나기도 전에 김동수의 입에서 말이 뱉아졌다.

    오후 10시 40분이다. 길이 잘 뚫려서 한참 기분 좋게 가속기를 밟던 운전사가 먼저 백미러부터 보았다. 김동수의 목소리가 더 굵고 다급해졌다.

    「빨리요. 아까 내가 탔던 곳으로.」
    「왜요? 뭘 잊었습니까?」

    우회전 신호등을 켜면서 운전사가 묻자 김동수는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예, 맞아요. 놔두고 온 것이 있어요.」

    이제 계산은 할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