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 키스만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오연희가 매달려서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정기철은 떼어 놓아야만 했다. 헐덕이며 떨어진 오연희가 빨개진채 시선도 마주치지 못한다. 그리고서 둘은 여관을 나와 버스를 타고 계룡산으로 갔다.

    초가을의 한낮, 관리가 잘 된 산은 너그럽게 둘을 끌어안는 것 같다. 바다가 온 몸을 자유롭게 해체시켜 주는 것 같다면 산과 숲은 감싸 안는 것 같다. 그래서 정기철은 산이 좋다.

    「누나, 화났어?」
    좁은 산길을 오르면서 정기철이 뒤를 따르던 오연희에게 손을 내밀며 묻는다. 산사(山寺)로 오르는 길에는 그들 둘 뿐이다.

    「내가 뭘?」
    외면한채 그렇게 물었지만 오연희가 정기철의 손을 잡는다.

    여관에서 나와 한시간이 넘었지만 오연희는 말을 드문드문 했다. 정기철이 묻는 말에나 대답했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은 것이다.

    정기철이 오연희를 끌고 걸으면서 말했다.
    「누난 참 좋은 여자같아. 그래서 그런가봐.」
    「뭐가?」
    「그냥.」
    「글세, 뭐가 그런가봐야? 말해.」
    「소중하게 내 가슴속에다 담고 돌아가고 싶어.」
    오연희가 가만있었으므로 정기철이 입을 다문다.

    길 양쪽으로 짙은 숲이 우거져 있다. 인기척은 물론 산새도 울지 않는다. 몇 걸음 더 걷던 정기철이 몸을 돌리면서 오연희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아 안았다. 오연희가 끌리듯이 몸을 붙였으므로 둘은 빈틈없이 붙어서서 마주 보았다.

    오연희가 두 팔로 정기철의 목을 감아 안으면서 말했다.
    「나도 이렇게 끌리게 될 줄 몰랐어.」
    「난 이제 두밤만 자면 떠나.」

    정기철이 오연희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을 잇는다.
    「누나한텐 내 맘대로 못하겠어.」
    「해. 해.」
    하고 말하더니 오연희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하반신이 더 딱 붙여졌고 눈 주위가 붉어졌다.
    「바보야. 괜히 고상한 척 말고.」
    「좋아. 그럼 오늘 밤에 하자.」
    「지금 해도 돼.」
    「누나 미쳤어?」
    그러자 오연희가 눈을 치켜떴다.
    「그래, 미쳤다.」

    그 순간 정기철이 머리를 숙여 입을 맞췄고 오연희는 눈을 감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울렸으므로 둘은 몸을 떼었다.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정기철은 다시 앞장을 섰고 오연희가 뒤를 따른다.

    절집에서 차려 준 점심밥을 먹은 둘이 산길을 다시 내려왔을 때는 오후 4시쯤 되었다. 산기운을 받은 것처럼 둘은 생기에 차 있었는데 오연희는 자주 웃었다.

    「나, 이렇게 많이 웃는 건 처음야.」
    이름 모를 야생화 하나를 떼어낸 오연희가 귀 위에 꽂으면서 말했다.
    「너하고 같이 있는게 행복해.」
    「난 누나가 고마워.」
    꽃을 다시 잘 꽂아주면서 정기철이 말을 받는다.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인지 버스정류장에는 그들 둘 뿐이다.
    「누나 주변의 모든 사람들한테도 다 고맙고.」

    그때 주머니에 든 핸드폰이 진동으로 떨었으므로 정기철이 꺼내보았다. 발신자는 어머니다. 핸드폰을 귀에 붙인 정기철이 물었다.
    「엄마, 왠일야?」

    그러나 어머니 김선옥은 금방 대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