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릉에는 왜?」
    눈이 둥그레진 어머니가 이동규를 보았다.

    강릉에는 외할아버지가 있다. 경포대에 대형 콘도 세동을 소유한데다 동해시에는 호텔을 짓고 있는 부자. 어머니의 남동생인 외삼촌이 사장이지만 지금도 외할아버지가 벽돌 한 장 값까지 다 계산한다. 외삼촌이 마카오, 라스베이거스를 돌아다니며 도박으로 수십억을 날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머니한테 가업을 넘긴다는 소문도 있다.

    이동규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외할아버지 보러가면 안돼?」
    「아니. 너, 그러면.」
    정색한 어머니가 침부터 삼키고나서 다시 묻는다.
    「너, 외할아버지한테 떠나기 전에 인사드리려구?」
    「그런것도 있네.」
    「어마나, 어마나, 어마나.」
    고장난 테이프처럼 되풀이 말한 어머니가 와락 상반신을 굽혔다.

    오후 7시 반. 오늘은 두 식구가 오랜만에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고 나서 소파에 앉아있다.
    어머니가 상기된 얼굴로 이동규를 보았다.
    「그럼 엄마도 같이 가야겠다. 어때?」
    「아, 싫어.」
    「왜? 친구 데려가려고 그래? 그럼 따로 가든지. 어쨌든 외할아버지만 같이 만나면 되는거 아냐?」
    「왜 그렇게 날 쫓아 다니려는거야?」
    「내 아들이니까.」
    그러더니 어머니의 눈에 금방 눈물이 글썽해졌다.

    「너, 떠나기 전에 같이 있으면 안돼?」
    하고 어머니가 물었으므로 이동규는 입맛을 다셨다. 그것을 어머니는 합의로 인정한 것 같다. 금방 표정이 밝아진 어머니가 묻는다.
    「언제 갈거야?」
    「내일 오전에.」
    「네 차로 갈거지?」
    「그래.」
    「그럼 난 오후에 출발 할테니까 저녁때 할아버지 집에서 만나자. 경포대쪽 별장 알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궁전 같은 별장이다. TV 드라마도 그곳에서 찍었기 때문에 이동규도 작년에 최영도를 데리고 놀러 갔었다. 물론 할아버지가 안계신 틈을 타서 각각 여자 파트너를 동반했다. 남자끼리라면 그런 곳까지 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 내가 할아버지한테 연락 해놓을게.」
    핸드폰을 집어들면서 어머니가 들뜬 표정으로 말한다.
    「네가 미국 가기 전에 인사드리려고 간다면 할아버지가 얼마나 대견하다고 하시겠니?」
    버튼을 누르고 난 어머니가 말을 잇는다.
    「니 덕분에 나도 아버지를 뵙게 되는구나.」

    외할머니는 5년쯤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그 넒은 집에서 혼자 산다. 물론 집에는 가정부에 정원사, 경비원에다 운전사까지 10여명의 고용원이 있어서 왕처럼 지낸다. 고독한 왕이다.

    자리에서 일어 선 이동규는 이층 방으로 올라왔다.
    할아버지한테 가려는 것은 인사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올해로 75세인 외할아버지는 지난 10년동안 이동규에게 가장 믿을 만 한 집안의 어른이었다. 엄격해서 항상 실실 피해 다녔지만 외할아버지의 존재는 이동규의 가슴에 깊게 박혀진 기둥 역할을 했다.

    지금 영장을 받아놓은 상태에서 갑자기 미국으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고 있다.
    박재희의 절교 통보를 받고 즉흥적으로 입대신청을 했던 터라 마음의 준비도 없었던 때문이다. 이제 강릉 외할아버지 옆에 며칠간 있으면 안정이 될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