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험대 오른 `중동.아랍 외교'..해법은>
    복합적 요인 겹쳐..외교인프라 강화 시급

    (서울=연합뉴스) 유현민 기자 = 한국의 아랍.중동 외교가 딜레마에 빠진 형국이다.
    요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현 정부 출범 이후 기치를 올린 `자원외교' 강화를 위해 아프리카.중동 지역을 상대로 한 외교 인프라 강화에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은 가시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반미(反美) 정서가 강한 이 지역을 상대로 미국이 특정국가들과 대치전선을 형성하면서 우리 입장이 더욱 미묘해졌다.
    최근들어 최대 화두는 미국의 대(對) 이란 압박이다.
    특히 유대인들의 입김이 강한 미국 정부가 이란 제재를 위한 법안까지 마련하고, 국제사회를 향해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 방한한 로버트 아인혼 미국 국무부 대북.대이란제재 조정관은 한국 정부에 EU(유럽연합)와 같이 독자적인 대이란 제재안을 마련할 것을 직.간접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인혼 조정관은 지난 2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주일 전 유럽 27개국이 수송, 에너지, 재무 분야에서 이란에 제재를 가하는 법안을 채택했다"면서 "한국도 이와 유사한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 정부에 (관련) 법안 검토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자 정부가 곤혹스러워졌다.
    국내 수요 원유의 주요 수입선이자 대규모 플랜트 건설사업등으로 국내 기업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한 이란과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와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대이란 교역 규모는 수출 40억달러, 수입 57억달러 등 1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이는 대중동 전체 국가들과 교역량(수출 240억달러, 수입 610억달러)의 10%를 상회하며 대이란 수출은 전체의 16%를 넘는 수준이다.
    지난달 미국이 제정한 우리 정부 및 진출기업 대부분이 거래하는 이란의 멜라트은행과 거래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포괄적 이란제재법은 이 같은 경제 교류에 바로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거래 중단을 우려한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스스로 이란과 거래를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실제 외환은행을 비롯한 국내 은행들은 미국 의회의 이란제재법 제정 직후 이란계 금융회사와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외국환 업무 일체를 중단했고 GS 건설은 14억달러 규모의 가스개발 프로젝트를 스스로 취소했다.
    만일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란에 대한 독자적인 제재 법안을 마련할 경우 한국과 이란 관계가 악화되고, 양국 간 경제 교류가 타격받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란은 2005년 한국이 이란 핵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찬성하자 일정 기간 한국에 대한 금수조치를 단행하기도 했다.
    최근 외교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리비아 사태도 깊은 맥락으로 들어가면 아랍권과 미국간 갈등요인과 관련이 있다.
    리비아 정부는 문제가 된 국정원 직원이 리비아의 군수산업 관련 정보를 캐내 미국에 넘길 수도 있는것 아니냐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보당국간 협의를 통해 리비아 측이 품고 있는 의혹을 상당부분 해소했다고 정부 당국자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 선교사가 리비아내에 '구금'돼있고 갑작스럽게 '철수'했던 서울의 리비아 대표부 직원들이 아직 복귀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대(對)아랍외교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뾰족한 해법은 보이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란 문제의 경우 정부는 그동안 한국이 미국의 노력에 적극 협조해 왔다는 점만 강조할 뿐 미측의 제재 동참 요구에 구체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미국이 이란 제재법 제정 이후 90일 이내에 제정.공표할 시행세칙의 내용을 주시하는 가운데 대체 송금루트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아 보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의 '대미 일변도' 외교에 대한 비판적 지적을 하기도 한다.
    북한 핵 문제와 천안함 사태 등으로 한.미동맹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동맹의 대가로 치러야 하는 비용이 커졌다는 얘기다.
    아랍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거나 현지 문화에 정통한 전문 외교관이 턱없이 부족한 외교 인프라의 한계는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실제 감사원이 지난 4일 발표한 '외교부 본부.재외공관 운영 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리비아와 이란, 쿠웨이트, 이라크 공관에 현지어가 가능한 외무 공무원 인력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아프리카.중남미 공관을 점진적으로 확충하고 재외공관별 인력을 분석해 적정 인원을 배치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을 외교부에 통보했다.
    외교 소식통은 5일 "이란 핵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란과도 잘 지내기는 힘든 게 사실"이라며 "미국이나 이란 중 양자택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가지 않는 것이 중요한 데 현실적으로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