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는 아버지하고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지만 가만 보면 둘 중 하나가 바람을 피운 것 같다.
    하지만 누가 원인을 제공했는지 이동규는 관심 없다.

    10년 전에 부모가 이혼하면서 네 식구는 당장 이산가족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동규의 형 이동민은 아버지가 데려갔기 때문이다.
    지금 아버지는 형과 미국으로 옮겨가 잘 산다.
    새 엄마도 얻었다는데 따라온 기집애가 있다던가?

    어쨌거나 이동규는 갈라진 반쪽하고 인연을 끊었다. 만나지 않은 것은 물론 전화통화를 안한지도 오륙년 되었으니까. 어머니는 위자료를 엄청 받은데다가 외할아버지는 강원도 바닷가에서 리조트를 경영하는 부자다. 아쉬울 것 하나도 없다.

    왠지 가슴이 답답해진 이동규는 베란다에서부터 이층 창문을 모두 열었다.
    이층은 이동규의 공간이다. 응접실 소파에 앉은 이동규가 우두커니 검은 TV를 응시하다가 문득 길게 숨을 뱉는다. 박재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짝사랑을 해왔던 터여서 처음 모텔에 갔을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
    하지만 솔직히 세 번째 후부터는 다른 여자하고 비슷해졌다.
    섹스 하고나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박재희로부터 헤어지자는 선언을 듣고 보니까 소중한 것을 잃은 느낌이 온다.
    뭔가 잘못한 것 같기도 했다.
    그날 할아버지가 오셨다는 거짓말을 안 하고 자고 올 걸 그랬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탁자 위에 놓인 핸드폰을 집어 든 이동규가 발신자를 보았다.
    최영도. 환경은 비슷하지만 성격은 정 반대인 새끼. 그래서 어울리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핸드폰을 귀에 붙인 이동규가 대뜸 묻는다.
    「왜?」
    「모나코로 와. 내가 둘 데리고 갈테니까. 9시까지.」
    그래놓고 통화가 끊겼으므로 이동규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놈은 어깨를 탈골시켜 군 면제를 받았다. 경비로 5천이 들었다는데 제 아버지한테서 8천을 받아 3천을 삥땅 쳐먹은 놈이다. 천안의 지방대를 스포츠 카로 통학하는 놈. 아버지는 중국에 공장을 차려놓아서 어머니와 여동생하고 셋이 산다.

    벗어 던진 옷을 하나씩 주워 입으면서 이동규는 지겹다는 생각이 든다.
    맨날 이렇다. 저녁에는 홍대나 신촌 근처, 또는 압구정동으로 원정을 나가 여자하고 술 마시고 노는 것, 한 번도 여자가 없어서 쩔쩔 맨 적이 없다.

    단 한명, 박재희만 빼고.
    별볼일 없는 식당집 딸 박재희는 항상 시큰둥 했다. 그러다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번만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어쨌든 박재희는 다섯 번 먹고 끝났다.

    엮어졌다 갈라서는 경우를 많이 겪어서 이런 때 매달리면 여자가 더 진저리 친다는 것을 아는 이동규다. 이런 때는 가만 놔두는게 낫다.

    이동규가 홍대 근처의 모나코에 도착했을 때는 9시 10분이다. 모나코는 재즈바였지만 방을 만들어서 양주를 팔고 아가씨까지 조달해 준다.

    「야, 너 오늘 땡 잡았다.」
    방으로 들어 선 이동규에게 최영동가 소리쳐 말했다.
    최영도는 여자 둘과 동석하고 있다. 하나는 이미 제 옆에 붙여 놓았는데 괜찮다.
    앞쪽에 혼자 앉아있던 여자가 머리를 들고 이동규를 보았다.

    숏컷한 머리, 소매 없는 맨팔이 미끈했다. 쌍커풀 한 눈, 곧은 콧날도 성형한 흔적이 역력했다. 입술도 부풀린 것 같다. 그러나 A급. 이동규는 여자의 화사한 얼굴을 향해 웃어 보인다.

    여자가 옆에 앉은 이동규에게 말했다.
    「난 채지수. 니 얘기 들었어.」
    대뜸 반말이지만 어색하지가 않다.

    이동규가 채지수 옆으로 바짝 몸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