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리먼브라더스로 시작된 세계적 금융위기로 국내 경제도 침체기를 맞았다. 이미 체감경기는 ‘바닥’이었지만 금융위기로 심화된 기업들의 유동성 위기는 국내 경제의 근간 중 하나인 건설 관련 업종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건설업체들은 신규 건설사업, 특히 주택사업을 중단하기 시작했고, 여기에 부속된 각종 업체들도 연달아 피해를 입었다. 금융기관들 또한 주택사업이라면 무조건 자금을 지원하던 관례를 벗어나 다시 개인 대출을 늘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2010년, 우리는 금융위기의 터널을 벗어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건설 경기만은 예외다. 2008년 이후 지방을 시작으로 미분양 아파트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2009년 말부터는 서울 지역에서도 미분양 아파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건설업체들은 1억 원 이상을 할인해 특별분양을 시행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이 같은 건설경기의 영향이었을까. 한동안 끝을 모르고 치솟던 일명 ‘버블 세븐’ 지역의 부동산 가격마저도 주춤하는 낌새를 보였다. 버블세븐 지역에서 가장 인기 높았던 재건축 아파트들의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고, 거래 또한 거의 사라졌다.

    인기 재건축 아파트의 시가총액 또한 엄청난 규모가 줄어들었다. 부동산뱅크의 조사에 따르면 2010년 1월 85조4천97억 원이었던 강남구, 송파고, 강동구 지역의 재건축 아파트 단지 시가총액이 5월 말에는 83조8천543억 원으로 1조5천억 원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상황이 알려지자 세간에서는 ‘보금자리 주택의 인기 덕분’ ‘주택 가격이 정상을 찾아가는 것’ 등의 다양한 평가를 내놓으며, 지금보다 주택 가격이 더욱 하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주택가격은 과연 하락하는 게 우리 경제에 무조건 좋은 것일까.

    건설 경제의 구조적 문제, 자금조달 방식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택관련 산업에서 소비자의 입장에 있다. 따라서 주택 가격이 하락하는 게 자신들에게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주택 경제로 일컬어지는 건설 관련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18%에 달한다. 종사자 수 또한 180만에서 20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여기에 부양가족까지 합치면 최소한 600만 명 이상이 이 건설 관련 산업을 통해 생활하고 있다. 이들 입장에선 주택가격이 높을수록 유리하다.

    이런 역설적인 특징을 가진 건설 산업에는 주택 가격 이외에도 다른 부분이 연결돼 있다. 바로 자금 문제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주택 가격 하락과 여기에 따른 건설 경기 침제도 수 년 전 무분별한 자금조달에 의해 생긴 거품이 금융위기로 빠지면서 생긴 것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의 주택 건설은 보통 ‘땅’만 있으면 가능했다. 주택을 지을 수 있는 땅만 있으면 이를 담보로 은행이나 저축은행, REIT‘s 펀드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PF(Project Financing, 담보나 신용이 없어도 사업성 평가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경우 자금을 빌려주는 것, 1920년대 미국 유전개발에서 시작됨)를 받아 공사를 진행, 건설 과정에서 주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양해 공사대금 중 필요한 부분을 조달하면서 건설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지난 2000년 이후 금융기관 대출승인에 대한 당국의 관리감독이 느슨해지고 주택 경기가 과열되면서 이런 자금조달 과정도 함께 과열됐다는 게 문제였다. 2003년 전까지는 보통 담보 가액의 50% 내외이던 PF 대출이 덩달아 아파트 매매가격의 90%까지 대출해주는 경우도 생겨났다. 심지어는 주택을 지을 땅을 사는, 일명 ‘브릿지론’ 대출까지 급증했다. 이런 대출 과열, 특히 ‘브릿지론’을 담당한 게 바로 저축은행들이다.
     
    저축은행의 위험한 변신

    저축은행은 원래 서울과는 달리 주택이나 토지, 건물 등의 담보 평가가액이 낮아 대출이 어려운 지방의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을 주 고객으로 하던 금융기관이다.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같은 시중은행도 이런 저축은행에서 시작한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저축은행은 그렇게 성장하진 못했다.

    이 저축은행들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많은 수가 사라졌다. 여기서 살아남은 곳들도 생존을 위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아야 했다. 이에 저축은행들은 2000년 초반부터 자금 여유가 있는 곳이 소형 저축은행을 인수합병, 업계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이때 일부 저축은행은 5~6개의 저축은행을 거느린 중형 규모의 ‘그룹’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저축은행들은 업계 재편과 더불어 사업 영역도 확대했다. 기존의 주 사업이던 서민들에 대한 신용대출이나 담보대출을 넘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기업어음 매입, 주택건설 담보대출 등에 뛰어든 것이다. 그런데 2003년 이후 불어닥친 부동산 과열은 건설 대출에 뛰어든 저축은행들에게 큰 수익을 안겨줬다.

    여기에 맛을 들인 저축은행들은 개인 또는 기업 대출보다 부동산 관련 대출을 확대했다. 토지 매입비용을 대출해 주는 ‘브릿지론’도 이때부터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저축은행의 수익모델 찾기, 특히 부동산 사업 대출 확대는 부동산 경기가 과열상태일 때는 별 다른 문제가 없었다. 저축은행 또한 ‘사람은 많고, 집은 적은’ 우리나라의 일반적 상황을 생각하며 부동산 열기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 강남 3구는 물론, 인근의 강동구, 용산구까지도 부동산 가격 급등 현상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 같은 현상은 최소한 10년 이상 지속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예상은 곧 빗나갔다. DTI 규제가 시작되고, 기존 아파트보다 분양가가 30% 이상 저렴한 주택들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PF 위기 vs.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이 같은 부동산 가격 하락과 저축은행의 위기설 등으로 일각에서는 ‘한국판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기의 본질은 물론 영향권도 다르다.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본질은 멕시코계 이민자, 중국계 이민자 등 미국 사회에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고, 사회적 지위도 낮은 탓에 신용이 낮아 주택구입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든 대출상품, ‘Sub-Prime Mortgage Loan’ 자체의 부실에서 시작됐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자, 이 상품의 장래성을 과신한 투자은행들이 채권선물을 포함한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유통하다, 해당 상품을 대출한 사람들이 제대로 돈을 갚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면서 파생된 것이다.

    여기서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의 파생상품은 월스트리트를 시작으로 런던의 더 시티, 프랑크푸르트, 상하이, 도쿄 등에서도 거래되면서 전 세계적인 위기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을 사용한 멕시코계 이민자, 중국계 이민자 등 저소득층의 파산 또한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반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우려하고 있는 저축은행발 PF 위기는 부동산 경기의 이상 과열에 편승해 자기 돈 하나 없이 건설업을 하던 이들과 이들을 믿고 무리하게 대출을 해준 저축은행의 과욕이 본질이다.

    때문에 지금 회자되는 저축은행 PF 위기가 현실로 닥칠 경우 피해를 입을 사람들은 저축은행과 여기에 거액을 예치한 이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저축은행 PF를 사용해 지은 주택에 사는 이들은 저축은행 PF 위기와는 별 관계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은 부실화된 PF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축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지난 6월 25일 정부는 저축은행에 2조8천억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08년 10월 투입된 1조 원 등 지금까지 약 4조 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것이다. 대체 왜 정부는 일반 국민들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저축은행의 부실 PF를 막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이는 것일까. 그 해답은 부동산 가격에 있다.

    주택 가격 하락, PF를 잡아먹다

    부동산 가격의 하락은 자신이 소유한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세들어 사는 사람, 자산을 현금 위주로 관리하는 사람에게는 별 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금융의 골격은 신용이 아니라 담보다. 그 중에서도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이상이다. PF 위기는 이런 우리나라 금융의 문제점을 그대로 반영한다. 건설업계와 이들에게 대출해준 금융기관들은 2009년 말 기준으로 80조 원이 넘는 PF 관련 대출에 시달리고 있다. 이 중 은행 등 메이저 금융기관과 관계있는 금액이 50조 원, 저축은행과 관련된 금액이 12조 원이다.

    메이저 금융기관이 관련된 대출은 그나마 현물 담보라도 있다. 게다가 은행의 경우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PF의 비율이 4.3%에 불과하다. 반면 저축은행은 전체 대출 중 18.2% 이상이 PF 대출이다. 게다가 이 PF의 67% 이상은 제대로 된 담보조차 없는 ‘브릿지론’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14만 채의 미분양 아파트가 있고, PF를 통해 매입한 땅 중 40조 원 어치가 빈 땅으로 남아 있다는 점으로 미루어 저축은행의 PF는 악성 부실채권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부동산 문제의 해결책, 활성화냐 방치냐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간단하게만 살펴봐도 답이 쉽게 나오지 않을 부동산 대출 문제.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부동산 대출이 80조 원에 달하는 데다 건설업체-금융기관이 모두 물려 있어 단순명료한 해결책은 없다. 단계적으로 푸는 게 그나마 방법이다.

    우선 건설업계 구조조정의 최우선 과제를 ‘건설비 현실화’에 맞추고, 건설업계에 대한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현재 건설업계에서는 아파트 분양 공사 시 30%만 분양되어도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라고 말한다. 즉 소비자에게 분양되는 아파트 가격의 최소한 절반 이상이 거품이라는 말이다. 이를 현실화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아야 한다.

    두 번째는 지금 문제가 되는 부실채권을 유동화시켜 채권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유동화에 한계를 두어야 한다. 채권 유동화에 대한 한계를 지정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위험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미분양 아파트나 건설을 중도 포기한 대지를 헐값에 처분토록 관련 업체에 명령하는 한편,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책임질 것을 정부 당국이 나서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올해 8월까지 상환을 연기한, ‘대주단 협약(외환위기 당시 부도유예협약과 유사한 것으로 건설업체에 돈을 빌려준 貸主인 채권금융기관들이 채권단을 구성, 자금을 지원하거나 채권회수를 연기하는 협약)’에 가입한 건설업체들도 예외 없이 포함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모럴 헤저드’와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또 다른 논란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분양 아파트나 나대지를 채권 또는 자산으로 가진 금융기관이나 건설업체는 당연히 이 요구를 거절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자력구제를 내세워 원칙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하면, ‘대마불사’ 신화를 믿는 업체들은 정부 당국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상의 조치를 이행할 때 먼저 금융기관과 건설업체들의 PF 탈출 순서를 정해줘야 한다. 지금과 같이 너도나도 PF 위기로부터 탈출하려 하는 것을 방치할 경우 결국 부실대출 규모는 더 커지는 반면 회생 가능한 업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DTI 규제 등 정부의 규제도 풀어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한 미분양 아파트 13만 채 중 11만 채가 비수도권 지역에 있는 것이라 DTI 규제는 단지 건설업 거품을 유지코자 하는 업체들의 핑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전방위적 구제조치를 시행해야만 점점 다가오고 있는 저축은행 발 PF 위기의 ‘경착륙’을 막을 수 있다.

    지금까지 현 정부에 대한 불만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지속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선거 때면 나오는, 용두사미식 부동산 정책이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정부가 이번 PF 위기를 건설 산업의 거품을 제거할 기회로 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