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선거 평가를 평가한다
    심오한, 그러나 쓸모없는 분석들은 그만두라

    6.2 선거 뒷얘기가 한창이다. 투표일 직전까지 여당이 그토록 멀찌감치 앞서갔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냐는 게 주된 화제다. 대개의 언론들도 일단 ‘여당 참패, 야당 대승’이라며 원인을 이렇게 저렇게 분석하고 있다. 방송들은 개표방송 당일부터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러저러한 분들을 내세워 각종 해설을 곁들였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심오한 듯하지만 대단히 쓸모없는 분석’들이다.

    예측과 달리? 열심히 안했으니까 그런 거다

    필자가 이번 선거의 결과를 예상했다고 하면 전적으로 거짓말이겠다. 하지만 필자는 선거결과가 반드시 예상대로 나오리라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필자는 투표일 하루전날 쓴 글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일 투표가 끝나면 결과가 나올 것이다. 예측대로일 수도 뜻밖일 수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예측은 그냥 예측일 뿐이고 결과는 예측과는 상대적으로 독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문제가 다 그렇지만 특히 선거의 결과는 더욱 그렇다. 선거결과는 언제나 실제 선거전 자체의 구체적 결산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냥 여론조사로 당선자를 뽑으면 되지 굳이 그 많은 비용을 들여 실제 선거전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필자는 예상과 다른 선거결과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했다. “열심히 안했으니까 그렇겠지.” 매우 싱거운가? 그러나 진실은 때로 그렇게 담담하고 싱겁다.

    전쟁이든 선거든 계획과 실전은 다르다

    선거전은 어떤 의미에선 전쟁이다. 다만 총을 들지 않고 ‘말’로 하는 전쟁이라는 차이 뿐이다. 그래서 전쟁에 비추어 보면 좀 이해가 쉽다. 전쟁사를 보면 모든 위대한 장군들이 공통적으로 토로하는 얘기가 있다. “전쟁이 시작되기 前 이러저러하게 온갖 작전계획을 세우고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러나 첫 총성이 울리는 순간 그 모든 완벽한 계획들이 휴지조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계획과 준비가 쓸모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전쟁은 구체적인 개개 전투의 연속이고 총합이다. 따라서 참모부에서 그린 도상계획만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은 없다. 위대한 장군들은, 실제 전쟁은 수많은 우연과 시행착오의 연속을 동반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공중전도 중요하다, 그러나 최종 승리는 지상전의 몫이다

    선거전 시기 각 정당이 서로 주고받는 정치적 공방을 흔히 공중전에 비유하니 그 점 생각해보자. 공중전을 통한 제공권 장악은 전략적 우위 구축에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제공권만으로 최종 승리가 확정되는 법은 없다. 공중전은 지상전을 지원하는 것일 뿐 승리의 최종 깃발을 꼽는 것은 언제나 보병이다.

    베트남戰의 경우를 보라. 미군은 제공권을 완벽히 장악했지만 그래도 승리는 월맹 측이었다. 우리 국민도 천안함 사건 덕분에 이제 알게 되었지만 어뢰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 또 다른 예로 게릴라戰이 있고 심지어 테러라는 것도 있다. 제공권이 그 모든 것을 제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선거전도 마찬가지다. 계획, 준비 다 중요하다. 전체 여론상의 우위를 위한 공중전 격의 홍보전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최종 승리는 결국 각 후보자가 뛰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현장에서 결정된다. 제공권에서의 전략적 우위의 가치는 그것을 각 후보자들이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지 그 자체 그대로 승리를 선사하지는 않는다.

    몸조심과 잔 계산, 다 헛된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천안함 사건이 여당에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는 평가를 따져 보자. 필자가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어떤 사건도 그 자체로 유불리를 만드는 법은 없다.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될 수도 있다. 야당은 처음부터 대응을 잘못했고 그 결과 천안함 정국은 분명 여당에 유리한 조건이 돼 있었다. 문제는 여당 측이 이른바 역풍을 우려해 지나치게 몸조심을 했다는 데 있었다.

    야당들은 초기대응을 잘못했고 덕분에 그 친북적 본색을 밑바닥까지 스스로 드러냈다. 그러나 야당들은 잘못된 내용이지만 내친걸음을 그대로 달려 급기야 전쟁반대 운운의 집요한 선동을 계속했다. 야당들이 오히려 북풍을 활용한 셈이다. 그러나 여당은 그것을 철저히 받아치지 않았다.

    도발을 하고 전쟁을 협박한 건 명백히 북한이었다. 더욱이 그에 한 편이 돼 날뛰는 건 사실상 반역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여당은 그 점을 매섭게 공격하기보다는 “전쟁은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미 보수층은 다 결집됐다고 보고 불필요한 확전을 피하고자 늘 하던 버릇대로 ‘계산’을 한 것일 게다. 그러나 결집은 언제나 충돌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지고 역공의 틈새는 물러서는 그 순간 만들어진다. 상대가 허무맹랑한 선동을 하면 그에 대한 공분을 거세게 불러일으키는 게 정답이다. 그러지 않고 느슨하게 임하면 오히려 그나마 결집된 지지 세력조차도 “이게 아닌가” 하면서 흩어진다. 이슈 자체보다 중요한 것이 그것을 다루는 태도인 것이다.

    전쟁 운운이 이슈가 되지 않도록 ‘관리’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턱도 없는 얘기다. 그것은 첫째 상대는 마냥 바보로 보면서 스스로는 전능하게 생각하는 자기과신 아니면, 둘째 싸움에서 상대의 양식과 선의를 기대하는 어리석은 발상이다. 결기가 부족한 헛똑똑이들은 언제나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그러나 모든 일이 항상 그렇듯 잔 계산은 다 헛된 것이다.

    치열함이 문제다

    정책홍보에 더욱 집중한다며 이미 주어진 유리한 정치적 쟁점조차 애써 피해 다니고, 더러는 누구의 사진을 걸고 다니고, 혹은 ‘그래도 이 지역은’ 하면서 텃밭심리에나 기대고, 이런 등등의 각종 선거행보들이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상대는 사생결단으로 자살폭탄 부대처럼 육박해오고 있는데 그런 식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겠는가? 안이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전략적 차원의 전체구도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개개의 전투현장에서의 승리는 당연히 어느 편이 얼마나 치열하게 임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니 병사의 훈련 정도가 중요하고 또 결정적으로 사기가 중요한 것 아닌가?

    실제 전쟁이든 선거전이든 전략적 우위가 아무리 대단해도 지상전에서의 치열함이 없으면 그 전략적 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이 패한 것이라면 바로 그 전략적 우위를 각 선거 현장에서 실현시키는 치열성의 부족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여권의 패배가 아니라 그냥 한나라당 웰빙의 참패다

    이른바 여당 참패 운운도 따져볼 대목이다. 사실 이는 냉정함이 결여된 평가다. 1995년 지방선거가 시작된 이래 집권 중반기에 있었던 중에는 여당 측이 가장 좋은 결과를 낸 선거다. 더욱이 전체 득표수에서 보면 여당 참패라는 건 산수에 어긋난다. 굳이 여당을 좀 위로하자면 선방이라는 말도 가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런 분석을 여당이 위안 삼는 건 자기기만이다. 크게 보아 여권 자체는 아니지만 한나라당은 참패한 것이 맞다. 그 안이함, 정면돌파는 피하면서 만사를 무사하게만 통과하려는 이른바 웰빙적 경향이 완벽히 참패했다. 더 좋은 결과가 가능한 조건임에도 치열하게 임하지 않았던 그 고질병이 철저히 응징 당했다.

    야당은 천안함 정국을 돌파했는데, 여당은 4대강, 세종시를 탓하나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은 그 점 아직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난데없이 4대강 사업과 세종시 문제를 들먹이는 게 단적인 경우다. 결국 MB 탓이라는 얘긴데, 정치 이전에 최소한의 인간적 의리도 없는 비겁함이다. 하지만 그 문제는 일단 놔두고 라도 도대체 4대강, 세종시가 이번 선거결과와 과연 얼마나 관계가 있나?

    인천, 강원, 경남에서 그 때문에 졌나? 그 지역 선거에서 그건 주요 쟁점도 아니었다. 충청은 어떤가? 충남에서 민주당 후보가 된 것이 세종시 때문인가? 한나라당 선진당 후보표가 합쳐졌다면 민주당 후보가 절대 이길 수 없었다. 충북은 어떤가? 세종시 수정안 여론이 더 높았던 때도 많지 않았나? 서울과 경기는 어떤가? 경기의 경우 4대강, 세종시 그리고 야권의 전쟁반대 선동 모두에 정면으로 임했다. 그래서 졌나? 전쟁 운운에 정면대응은 물론 수도분할 문제마저 거의 쟁점화하지 않았던 서울이 오히려 어땠는지 보라. 당초 예상과 달리 대단히 고전하지 않았나?

    냉정히 보라. 역설적으로 야당은 천안함 정국에도 불구하고 집요한 선동으로 상황을 돌파했다. 그런데 여당은 뭐시기 거시기 때문에 졌다니 말이 되나? 그야말로 패잔병 넋두리 같은 얘기 아닌가?

    심오한, 그러나 쓸모없는 분석들

    선거전은 언제나 매우 구체적으로 진행된다. 나름 전문가를 자처하는 학자, 여론조사 전문가, 평론가들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그 점의 도외시다. 실제 자신이 치열한 선거를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 당연한 한계다. 물론 경험과 통찰력은 별개다. 하지만 대개는 “임자 해봤어?”라는 고 정주영 회장의 말이 어울린다. 그런데 ‘해보지 않은’ 이들의 ‘심오하지만 쓸모없는’ 분석들은 그렇다 치자. 늘 선거를 치러 온 한나라당의 방향 빗나간 평가는 뭔가? 이건 이미 그 자체로 웰빙적 본성의 또 한 번의 고백일 뿐이다.

    한나라당은 선거 뒤 “반성” “민심을 겸허히 수용” 등의 애기를 하고 있다. 습관적이다. 진짜 반성해야 할 게 뭔지 모르면 의미가 없다. 민심 운운하지만 도대체 어떤 민심 얘긴가? 천안함 진상이 사기라는 주장도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것인가?

    한나라당, 감동이 없었다

    인간은 결코 마냥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성, 감성, 본능이 함께 한다. 그래서 선거전은 사람의 마음을 총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정책은 말하자면 이성을 겨냥한 일종의 논리다. 그러나 잠재적 지지자가 투표장에 반드시 향하게 하려면 감성까지 움직여야 한다. 치열함이 주는 감동, 반대편에 대한 분노, 이런 마음의 울림이 있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게 없었다. 그 점부터 반성하고, 잠재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더 적극 나서주지 않은 민심부터 살펴야 한다. 한나라당이 이 점 깨닫지 못하면 앞으로도 고생을 좀 더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