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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암함 침몰 사건 발생 3주째다. 이제 선체는 인양되었다. 전사 장병들의 시신이 수습되었다. 하지만 8명의 장병들은 시신으로도 귀환하지 못했다. 유가족은 수색의 중단을 요청하는 결단을 내렸다. 경의를 표한다. 우리 국민들은 8명의 ‘산화 장병들을 가슴에 묻을 것이다.
한편 선체 인양 후 원인 규명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민군 합동조사위원회의 첫 발표가 나왔다. 4월 16일 조사위원회는 외부타격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암초 충돌이나 내부적 요인이기를 바랐던 각양각색의 군상들에겐 안 된 얘기겠다. 그러나 진실은 당파와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
외부타격이 아니길 바랐던 사람들은 앞으로는 그 타격의 장본인이 북한이 아니길 학수고대할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은 이른바 ‘물증’에 매달릴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미 심증을 굳히고 있다.
그간 천안함 사건에 대해 일체 언급을 않던 북한은 선체가 인양되고 조사위원회의 첫 발표가 나자 침묵을 깼다. “날조”란다. 자신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단다.
아무 관련이 없는 자들이 사건 발생 후 왜 즉각 관련을 부인하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대개 ‘범죄자’들은 증거가 하나씩 제시될 때도 끝까지 부인으로 일관한다. 그 전형적인 행태에 가깝게 느껴진다. 자신들이 무관하다면 처음부터 그 입장을 명백히 할 수 있었다. 왜 이제사 아니라는 건가?
국가안보 차원의 중대사태다
조사는 계속 진행될 것이고 진실은 점차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그래도 최종적인 확증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는 결국 북한이다. 설사 북한의 도발로 명백히 확증할 물증을 못 찾는다 해도 그렇다. 이번 사건은 남북의 군사적 대치의 최일선에서 벌어진 군사적 사건이다. 이 본질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지방선거가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그런데 천안암 사건의 파장은 지방선거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정치적 이슈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게 하고 있다. 예년 같으면 출마자들에 대한 얘기가 분분하겠지만 국민들의 시선도 모두 이번 사건으로 쏠려 있다. 안보상의 사태에 지방 선거 자체가 왜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金泰榮 국방장관은 4월 16일 “정부와 軍은 이번 사건을 국가안보차원의 중대한 사태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 안보상의 중대사태다. 지금 지방선거 판에는 알량한 입신을 위해 돈이나 뿌려대는 정치 모리배 무리가 난무하고 있다. 이 따위 놀음이 안보상의 중대사태 앞에서 과연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갖는가?
그간 이 나라의 정치 행태를 보면 어떠한 안보상의 위기도 걱정할 게 없는 나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국익이 아니라 지역주의에 골몰하고 국정보다는 지역구 민원에 더 바빠도 정치인 행세를 할 수 있는 게 이 나라 정치판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그처럼 한가한 나라가 아니다. 안보상의 어떤 사태가 발생하면 언제라도 그 모든 것은 쓰나미에 휩쓸리듯 떠내려 갈 수 있는 나라, 이것이 이 나라의 실제상황이다.
6월! 지방선거 이전에 6.25를 생각하라
지방선거 관련 당사자들은 이번 6월을 생각하면 선거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6월에 가장 중요한 일은 지방선거가 아니다. 특히 이번 6월은 6·25 전쟁 발발 60년째 되는 때이다.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은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우리 역사에서 뿐 아니라 단일국가를 무대로 벌어진 전쟁으로는 세계 역사상으로도 드물게 참혹한 전쟁이었다. 인명피해는 민간인 포함 450만에 달하고, 국군이 전사 부상 행방불명을 포함 98만 7천의 희생자를 내고 유엔군 피해자도 15만이 넘는다. 미군도 전사자 3만 4천에 행방불명을 포함 4만이 넘는 피해자를 냈다. 한국은 이 전쟁으로 산업시설의 대부분과 주택의 대다수가 파괴되었다. 전쟁 직후 한국은 문자 그대로 폐허였다.
한국은 그 폐허에서 일어서야 했다. 그러나 착각하면 안 되는 게, 6.25는 결코 종식된 전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때 단지 휴전을 했을 뿐이다. 우리는 평화체제 속에서 나라를 재건한 것이 아니었다.
북한은 휴전 이후 남쪽에 대한 갖은 도발을 중단한 적이 없었다. 정치적 공작에서부터 무장도발에 이르기까지 온갖 방식으로 우리를 흔들고자 했다. 대한민국의 발전과 성공은 보장된 평화체제가 아니라 그들의 도발을 견제하고 제압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 그러한 상황이 달라졌는가? 아니다.
군사정권 시절의 트라우마, 정치가 군에서 멀어졌다!
우리 사회에는 군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 즉 외상후증후군이 있다. 이른바 군사독재 체제와 그에 대한 저항이라는 흐름이 한 시대를 관통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어느 정도는 군을 경원시하는 풍조가 조성된 게 사실이다. 특히 1980년대 민주화 투쟁을 통과해온 소위 386세대의 뇌리에는 그 같은 부정적 사고구조가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군과 관련해 이 세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는 다만 군은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일 뿐이다. 군이 국가 안보의 최후의 보루라든가 하는 식의 얘기는 마치 군사정권의 정치적 구호처럼 들리는 게 이 세대의 정서다.
민주화 투쟁의 결과 얻어진 1987년 헌법체제가 20년을 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순수 민간인 출신 대통령 시대를 지금까지 4번째 맞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문민정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했을 만큼 군은 정치에서 멀어져 있어야 하는 게 상식이었다. 민주화 이후 우리 군은 그렇게 했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과거 남미형의 후진적인 군부정치에 대한 우려는 전적으로 기우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정치가 군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문약에 치우치면 나라가 망한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자 좌파 언론과 야당들은 우선 여하튼 북의 도발 가능성이 없는 쪽으로 여론을 호도하려 했다. 그러면서 온갖 추측으로 의혹을 부풀리며 군의 신뢰와 위신을 실추시키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데 몰두했다. 언론은 언론대로 매일 갖가지 추측보도를 쏟아내 그런 분위기에 일조했다. 이 과정에서 군에 대한 모욕적 언사들이 난무했다.
국가의 존립과 관련해 많은 요건을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 자체다. 성장도 발전도 소위 선진국 진입 운운도 국가의 안전과 생존 없이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문제다. 국가의 생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방파제는 바로 군이다. 혓바닥과 손가락으로만 정치를 농단하는데 익숙한 자들은 때로 이 점을 잊는다.
군이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게 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다. 그러나 군사정권 시대의 종식이 정치가 군에서 멀어져도 좋다는 뜻이 아니다. 전쟁을 잊고 군을 홀대한 나라는 예외 없이 몰락의 길을 걸었다. 역사에는 문약에 빠진 나라가 어떻게 망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으로 가득 차 있다. 멀리 다른 나라를 볼 것도 없다. 문민 양반 집단의 당쟁으로 골병이 든 조선이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보라! 그런데 정치가 군에서 멀어지다 못해 군을 모욕까지 한다?
문책론은 군을 약화시키는 짓이다
여당 일부 의원들이 진상 규명 후 책임자 문책을 운운하고 나섰다. 책임자 문책이라니! 야당은 원래 그렇다 치자. 그러나 여당이 이러면 안 된다. 아직 사고 수습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천안함 사고와 같은 일로 군에 대한 인책을 거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건 발생 후 군의 대처에 아쉬움이 없는 바 아니다. 특히 언론을 잘 다루지 못했다. 그러나 군은 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언론 대처가 본연의 임무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대단한 문민정치인의 전문영역 아닌가?
더욱이 전장에선 온갖 일이 일어난다. 아무리 대단한 작전과 준비도 실제 상황에선 때로 무용지물이 되기도 하는 게 바로 전선의 현실이다. 적과의 대치 일선의 전장에서 벌어진 전시상황에 준하는 일이었다. 시행착오와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이유로 군 지휘부를 문책한다면 배겨날 군대는 없다. 만약 그런 따위로 굳이 문책을 하겠다면, 먼저 무책임한 언사로 혼란을 야기한 정치인과 자질 부족한 일부 언론의 경거망동부터 준엄히 질책하는 게 순서다.
우리 군은 일부 후진국가의 경우와 같은 특권집단이 결코 아니다. 우리 군은 지금 부족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적과 대치하고 있다. 오히려 후방에서 편안하게 입만 놀리고 있는 자들이 진짜 특권층이다.
지금은 군의 사기를 생각할 때다.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이 나라 국민 스스로를 위해서 그렇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자 즉 군 최고사령관이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지금 해야 할 첫 번째 임무는 다른 무엇보다도 군의 명예를 지키고 사기를 진작하는데 만전을 기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