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에 바친 대한민국 해군 천안함 용사들을 위해 검은 리본을 달자.” “조국을 지킨 48명의 용사들을 해군장이 아닌 국민장으로 송별하자.” “북한의 도발에 맞서 전 국민이 하나가 되자. 태극기를 꺼내 달고 태극기 아래 하나가 되자.”

  • ▲ 지난 15일 천안함 함미 내부에서 발견된 승조원들의 시신이 임시 안치소가 마련된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로 운구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15일 천안함 함미 내부에서 발견된 승조원들의 시신이 임시 안치소가 마련된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로 운구되고 있다. ⓒ연합뉴스

    천안함의 비극 속에서 새로운 다짐과 희망의 메아리가 국민들의 가슴에 용솟음치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 형제를 가슴에 묻은 국민들은 거리 곳곳에 마련된 추모의 장소에 기나긴 행렬을 잇고 있다.
    이들은 아들, 형제들의 영전에 흰 국화를 바치며 “이런 아픔은 이런 희생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지난 2002년 6월 제2차 연평해전에서 남편 한상국 중사를 잃은 김종선씨는 “내 아픔이 마지막이길 바랐는데 또 다시 가슴에 차디찬 대못이 박혔다”며 울먹였다. 그는 남편의 참수리 357정 전우였던 박경수 중사가 시신조차 돌아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 며칠을 잠을 못 이뤘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02년 6명의 소중한 인명을 앗아간 북한의 도발은, 8년 만에 48명이란 고귀한 젊은이들의 희생으로 재연됐다. 그리고 이같은 희생은, 북이 변하지 않는 한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는 소중한 교훈도 남겨주었다.
    “대한민국이 또 다시 공격을 받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아들들을 서해의 찬 바다에 파란 얼굴로 잠기게 하지 말자”는 다짐들이 국민들 모두의 가슴에 피어오르고 있다.
    이동복 전 의원은 “미국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을 기억하자는 캠페인을 전개했던 것처럼 우리도 천안함을 기억하는 국민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시민운동 단체들이며 기독교 교회와 천주교 성당 및 불교 단체들을 포함한 종교단체들이 중심이 돼서 전 국민이 ‘천안함을 기억하자!’는 글의 검은 색 리본을 가슴에 달자고 호소했다. 민생경제연구소는 또 전국에 조기를 달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희생된 장병들의 장례를 ‘해군장(海軍葬)’이 아닌 ‘국민장(國民葬)’으로 격상하자는 국민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재욱 그린투데이 대표는 “국토 방위의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다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희생에 대해 전 국민들이 애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값진 희생에 대한 국민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한다면 국민장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상길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본부장은 “지난 2차 연평해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성남국군수도병원에서 치러진 당시 희생자들 장례에 국방부 장관도 참석시키지 않고 자신은 성남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월드컵 결승전을 보러 갔다”고 회상했다. 김 본부장은 “당시 희생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군 장병들이 ‘우리는 왜 싸우는가’하는 자괴심에 빠져들었다”라며 “이번만큼은 이들을 국민의 이름으로 배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에 단호한 대처를 요구하지만 말고 국민들 스스로 북에 힘과 의지를 보여주자는 목소리도 높다. 단지 정부에만 ‘행동’을 주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단결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모든 소소한 다툼과 갈등, 정쟁을 뒤로 하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용철씨는 “북에 反정부는 있어도 反대한민국은 없음을 보여주자”라며 상징적 행동의 하나로 ‘눈물은 삼키고 모두 태극기를 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우리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돌파하며 흘린 피와 땀이 배여 있는, 우리의 태극기를 통해 ‘의지를 보여주는 행동’을 조직하자”고 강조했다. 이어 ‘이전에 어떤 이유로든 정부에 반대하여 촛불을 들고 나섰던 사람들도 이번만큼은 촛불 대신 태극기를 들고 같이 나서서 이 나라에 反정부는 있어도 反대한민국은 없음을 모두 함께 보여주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동복 전 국회의원과 김용철씨의 글 전문이다.

    "天安艦을 잊지 말자”는 검은 리본을 달자

     1939년9월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의 나치 독일이 구 소련의 독재자 조세프 스탈린(Joseph V. Stalin)과의 밀약(密約)에 따라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도발했지만 고립주의를 고수하는 미국은 참전(參戰)을 거부하고 국외자(局外者)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뒤인 1941년12월7일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 제독이 지휘하는 일본제국(日本帝國) 연합함대의 6척의 항공모함을 발진한 전폭기들이 하와이 주 오아후 섬의 진주만(眞珠灣•Pearl Harbor)을 선전포고 없이 강습(强襲)하는 일이 벌어지자 미국의 태도는 하루 밤 사이에 바뀌었다. 
     미국의 프랑클린 루스벨트(Franklin D. Roosevelt) 대통령은 다음 날인 12월8일 의회 연설을 통해 일본에 대한 선전(宣傳)을 포고했고 이에 맞서 일본과 동맹관계에 있던 히틀러의 나치 독일과 무쏠리니(Benito Mussolini)의 이태리도 미국에 대해 선전을 포고했다.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드디어 본 무대의 막을 열었고 이로써 그로부터 4년 뒤에 있게 될 연합국의 승리에 의한 전쟁의 종결은 예정된 수순이 되었다. 
      일본의 하라 타다이치 제독은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 직후 “우리는 진주만에서 위대한 전술적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로써 전쟁에서는 지게 되었다”고 술회했고 진주만 기습을 지휘한 야마모토 제독은 “우리는 이제 잠자는 사자(獅子)를 깨워 일으켰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두 사람 모두 일본의 패전(敗戰)을 예감(豫感)한 것이다.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을 남달리 반긴 사람은 유럽에서 독일과 이태리에 대한 힘겨운 전쟁을 주도하고 있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영국 수상이었다. 처칠은 다음과 같은 어록(語錄)을 남겼다. “미국의 참전은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 미국이 참전으로 우리는 승전(勝戰)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히틀러와 무쏠리니의 운명은 끝장이 나게 되었다. 일본은 이제 분쇄될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개전(開戰) 초기 일본군에 밀려서 파푸아 뉴기니아(Papua New Guinea)까지 밀려났던 미군으로 하여금 엄청난 인명피해를 감수하면서 태평양 상의 많은 섬들을 하나씩 하나씩 탈환하는 유혈전쟁(流血戰爭)을 수행할 수 있게 만든 비결(秘訣)이 있었다. 그것은 1941년12월7일의 진주만 기습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일치단결된 복수심이 그것이었다. 태평양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 국민들은 하나의 슬로건 아래 굳은 단결을 유지했다.
    “진주만을 기억하자!”(Remember Pearl Harbour!)였다. 
     지난 3월26일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북한의 소행(所行)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천안함’ 격침 사건은 북한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저지른 또 하나의 한반도판(版) ‘진주만 기습’이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미래가 있는 현명한 국민들이라면 그들도 1941년12월7일 진주만 기습 사건 이후 미국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행동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서 벤치마킹 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국민들이 “진주만을 기억하자!”는 구호 아래 단결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국민들도 “천안함을 기억하자!”는 구호 아래 일치단결하여 이번에 이 사건을 일으킨 사악(邪惡)한 세력을 철저하게 응징함으로써 이들이 다시는 이 같은 불장난을 저지를 생각을 품지 못 하도록 해야 한다.
    "천안함을 잊지말자" 국민운동을 제창함
      필자는 이를 위한 국민운동을 제창(提唱)한다. 미국인들이 “진주만을 기억”하는 캠페인을 전개했던 것처럼 우리도 “천안함을 기억”하는 국민운동을 전개하자는 것이다. 필자는 보수•애국 운동 전개를 목적으로 하는 시민운동 단체들과 재향군인회, 그리고 기독교 교회와 천주교 성당 및 불교 단체들을 포함한 종교단체들이 중심이 되어서 전 국민이 “천안함을 기억하자!”는 글이 씌워진 검은 색 리본을 가슴에 다는 캠페인을 즉각 전개하기 시작할 것을 제창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명박(李明博) 정부가 이번에 ‘천안함’ 침몰로 전사(戰死)한 44명의 해군 장병들의 장례를 ‘해군장(海軍葬)’으로 거행하기로 한 결정을 바꾸어 ‘국민장(國民葬)’으로 격상하고 ‘국민장’ 장례식을 계기로 전 국민이 “천안함을 기억하자!”는 글이 씌워진 리봉을 가슴에 달도록 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건의한다. 이 리본을 가슴에 다는 운동은 북한이 ① 이 사건의 범행(犯行)을 시인하고, ② 사건의 책임자를 색출하여 처벌하며, ③ 사건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정당한 배상(賠償)을 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④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천안함’ 피격•침몰 사건에 대하여 북한이 시인하고 책임을 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남측에 의한 ‘자작설(自作說)’로 대응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북한의 과거의 행적(行蹟)이 증거해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북한은 그들이 일으킨 6.25 전쟁에 대하여 지금도 여전히 ‘북침(北侵)’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68년의 1.21 청와대 습격 기도와 대규모 무장공비의 동해안 상륙 사건은 물론 1983년의 미얀마의 아웅산 국립묘소 폭파 및 1987년의 대한항공 여객기 공중폭파 등 북한이 자행한 일체의 대남 무력 및 폭력 도발에 대해 “남측에 의한 자작극”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한 동안 침묵을 고수하던 북한은 인양된 함미(艦尾) 부분의 절단 부분 검증을 통하여 “어뢰(魚雷)에 의한 피격(被擊)” 가능성에 대한 신빙성이 나날이 높아지자 최근에는 상투적인 “남측에 의한 자작극” 주장을 공공연하게 내세우기 시작하고 있다. 
     북한의 이 같은 적반하장의 작태는 북한이 반복하여 자행하는 대남 무력 및 폭력 도발에 대하여 남측이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의 독재정권으로 하여금 “도발을 해도 응징은 없다”고 믿도록 만든 데서 초래된 결과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북한이 자행한 도발 행위에 대하여 상대측의 대응에 따라서 스스로의 범행을 시인하고, 비록 만족할 만 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책임을 수용하는 조치를 취한 전례(前例)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976년에 발생했던 8.18 판문점 도끼 만행(蠻行) 사건 때와 1997년에 동해안에서 발생했던 상어급 잠수함 침투 사건 때가 그 같은 경우였다.  
     그밖에도 김일성(金日成)은 1972년5월4일 평양을 방문한 이후락(李厚洛) 당시 남측 중앙정보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느닷없이 북한군 124군 부대원 31명이 휴전선을 침투하여 서울의 청와대 습격을 기도했던 1968년의 1.21 사태를 스스로 거론하여 정중하게(?) 사과했던 일도 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께 말씀드리시오. 그 무슨 사건이더라. 청와대 사건이라고 하던가. 그것은 박 대통령에게 대단히 미안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전적으로 우리 내부의 좌경맹동분자들이 저지른 짓이지 결코 내 의사나 당(黨)의 의사가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우리도 몰랐습니다. 보위부 참모장, 정찰국장 모두 철직(撤職)하고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것이 그날 있었던 김일성의 말이었다.
    이동복 (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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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태극기를 들자!
    대한민국에 대한 공격,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4월 16일, 민군 합동조사반은 천안함 침몰은 외부타격에 의한 것이 확실시 된다고 밝혔다. 물론 정부는 아직 그 외부타격의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공식적으로’ 지목하진 않았다. 정부의 입장에선 이른바 ‘물증’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결과 발표 전부터 우리 국민들은 이미 심증을 굳히고 있었다.

    사건 초 야당과 좌파 언론, 단체들은 하나같이 외부타격이 아닌 내부적 요인으로 몰아가는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런가 하면 덜 떨어진 작자들은 덩달아 암초니 피로파괴니 하며 온갖 추측으로 소설을 써댔다. 이유가 어떻든 그들이 바란 것은 오직 하나 북한의 도발이 아니었으면 하는 것뿐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매도인가?

    하지만 천안함 사건 후 그간 이 나라에서 벌어진 갖가지 일들은 그 지적이 결코 지나친 것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친북적 성향의 각양의 군상들, 그들의 포로가 된 채 파당적 이해에만 급급한 야당, 비상한 사태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듯한 정부 일각의 모습, 이 모든 것들을 뭐라 평할 것인가? 묻고 싶다. 아직도 북한이 무관했으면 하는가?

    진실의 순간, 대한민국은 공격받았다

    그러나 하늘뿐 아니라 진실도 손바닥으로 가리기에는 언제나 너무 크고 명백하다. 이해관계가 다르고 정견과 이념이 어떻든 사실은 언제나 하나이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에는 밝혀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고 있다. 진실의 순간은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와 있다.

    용어부터 바로잡자. 첫째 천안함 침몰은 더 이상 ‘사고’가 아니다. 적의 공격에 의한 ‘피격 침몰 사건’이다. 둘째 생환하지 못한 장병들은 결코 ‘순직’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적의 공격으로 ‘전사’한 것이다. 누가 공격했는가? 정부의 공식적 입장이 어떻든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은 비공식적이지만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진실의 순간은 곧 결단과 행동의 순간이다. 대한민국의 군함이 적의 공격을 받았고 그 공격으로 꽃다운 젊은 장병들이 산화했으며 평생을 조국에 봉사했던 노병이 목숨을 바쳤다. 우리는 마땅히 그에 상응한 ‘행동’을 결단해야 한다. 더욱이 이번에 공격받은 것은 결코 배 한 척이 아니다. 바로 “대한민국이 공격을 받았다!”

    시험대, 우리는 자신의 존엄을 지킬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가?

    개인이든 국가이든 아무리 외면하고 피하려 해도 결코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의 순간이 있다. 적의 도발과 공격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국가는 결코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없다. 세계는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지 못하는 국가를 배려한 적이 없다. 지금 우리는 그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것은 단지 북한이라는 반민족적 군사깡패집단에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결코 함부로 범할 수 없는 국가임을 전 세계에 명백히 보여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도발에 대응행동이 없는 국가는 독립된 주권을 의심 받는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2010년 올해는 한일합병 100주년이자 6.25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정치적으로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그러나 100년 전 우리는 나라를 잃었었고, 60년 쯤 전 우리는 전쟁의 폐허 위에 서 있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꽃다발의 축복과 양탄자 길을 걸어 도달한 것이 아니다. 이 나라의 오늘은 감내하기 힘든 그 모든 악조건을 견뎌내며 이룩한 고통의 열매다.

    식민지의 치욕과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 피와 땀과 눈물로 일으킨 나라다.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허리를 졸라맨 채 정치적 자유의 유보를 감수하고 사막과 정글에 피와 땀을 뿌리며 일으킨 나라다. 그렇게 경제를 일으키고 드디어는 민주화까지 이룩한 나라다.

    나라가 있고서야 나라를 욕할 자유도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경제적으로 역사상 과거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울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자유가 만개해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자유는 대한민국 안에서의 자유다. 이념과 당파를 달리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그 점에 대해 뭐라고 어떻게 주장하든 명백히 그렇다. 무분별한 언사에서 무책임한 행동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지금 한껏 만끽하고 있는 그 모든 자유도 대한민국 없이는 없다. 그런데 그 대한민국이 공격 받았다.

    정견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념의 차이도 참을 수 있다. 그러나 진정 그 정견과 사상 이념의 자유를 소중히 한다면 자신의 자유를 지켜주는 대한민국이 공격 받은데 대해 다른 소리를 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이상국가라고 주장하지 않겠다. 불평도 좋고 비판도 좋다. 그러나 이 나라가 어떻게 일으킨 나라이며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잊어선 안 된다. 반찬투정이 지나쳐 밥상을 걷어차면 종래에는 투정할 자유는 물론이고 끼니 자체마저 거절당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역사를 이미 겪었다.

    나라가 있고서야 나라에 대한 비판도 있을 수 있다. 도발자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수습에 사력을 다하는 정부와 우리 군만 두들기고 모욕해야 하는가? 反대한민국을 자처하는 게 아니라면 그래선 안 된다.

    눈물이 아니라 단결을 보여주는 국민적 움직임이 진정한 추도다

    물론 정부와 군 당국은 더 노력해야 한다. 비판과 비난이 부당하든 아니든 그 모든 것에 무한책임을 져야 함은 책임을 맡은 쪽의 숙명이다. 우선 정부는 신중하되 주저함은 떨쳐버려야 할 것이다. 군 당국도 사태 수습뿐 아니라 이후를 위한 만반의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힘과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선 단지 정부에만 ‘행동’을 주문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 정부의 결단과 행동 이상으로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국민적 움직임이다.

    단결이 필요한 때다. 차이를 넘어선 국민적 단결이!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적대세력이 아니라면 작은 차이를 접어두고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만큼은 모든 소소한 다툼과 갈등, 정쟁을 뒤로 하고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단결해야 한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의 단결과 의지를 보여주는 국민적 행동의 조직이 지금 필요하다.

    이제 곧 전사 장병들의 장례 절차가 준비될 것이다. 이에 맞추어 국민적 추모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추모는 단순한 슬픔의 애도 이상이어야 한다.

    군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경의의 대상이어야 한다. 戰死 군인은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나라를 지키는 戰士(전사)였지 그냥 죽은 사람이 아니다. 고개를 숙이고 흘리는 슬픔의 눈물은 戰士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고개를 들고 그 희생을 기리고 용기와 의지를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戰士에 대한 예의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에 대한민국의 국민적 단결과 국가 수호의 의지를 보여주는 행동으로 답해야 한다.

    反정부는 있어도 反대한민국은 없음을 보여주자

    상징적 행동 하나를 조직하자. 눈물은 삼키고 모두 태극기를 들자! 우리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돌파하며 흘린 피와 땀이 배여 있는, 우리의 태극기를 통해 ‘의지를 보여주는 행동’을 조직하자. 촛불이 아닌 태극기다! 이전에 어떤 이유로든 정부에 반대하여 촛불을 들고 나섰던 사람들도 이번만큼은 촛불 대신 태극기를 들고 같이 나서달라! 그리하여 이 나라에는 反정부는 있어도 反대한민국은 없음을 모두 함께 만천하에 보여주자!

    먼저 정치인들부터 모범을 보이자. 잠시라도 금배지를 떼고 대신 태극기 배지를 달라. 이와 함께 모든 관공서에, 모든 기업의 사옥에 그리고 집집마다 거리마다 태극기를 게양하여 대한민국 모든 곳에 그 물결이 넘치게 하자.

    그리고 애국시민들이 나서자. 과시성 복장은 일체 삼가고 다만 단정한 옷차림으로, 그러나 가슴에는 추도의 검은 리본과 함께 결연한 마음을 품고, 손에는 모두 태극기를 들고 모이자. 한 손에는 태극기, 또 한 손에는 꽃 한 송이를 들고 추도의 광장으로 모이자. 모여서 꽃송이의 바다 위에 태극기의 물결이 거센 파도처럼 넘치게 하자.

    그리하여 보여주자! 대한민국이 위기 앞에서 어떻게 단결하는지, 적의 도발에 맞서는 의지가 얼마나 강력하고 단호한지를 보여주자.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에 우리 대한민국의 국가 수호 의지를 보여주자!

    전사 장병들은 국립묘지에 안장될 것이다. 그러나 시신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8명의 장병들은 어디에 어떻게 안장해야 할 것인가? 여덟 장병들의 유가족들은 군에 수색 중단을 요청하는 결단을 내렸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가슴 속에 묻어야 한다. 아니 돌아오지 못한 장병들뿐 아니라 전사 장병 모두를 마음의 태극기로 감싸 우리의 가슴 속에 묻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예전부터 그랬듯이 앞으로도 적과 마주할 것이다. 바로 그 모든 순간마다 그들의 영혼은 우리의 가슴 속에서 용기와 결의로 부활할 것이다.
    김용철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