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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줄리아니 前 뉴욕 시장은 공화당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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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철 ⓒ 뉴데일리
줄리아니는 공화당 간판으로 뉴욕시장에 당선되고 재선에도 성공했다.
줄리아니가 뉴욕시장을 물러난 뒤 자리를 이은 사람은 마이클 블룸버그였다.
그 또한 공화당으로 출마하여 당선됐다. 블룸버그는 3선에 성공하여 현재도 뉴욕시장으로 재직 중이다. 줄리아니로부터 블룸버그에 이르기까지 미국 공화당은 뉴욕시장 자리를 연거푸 다섯 차례에 걸쳐 계속 장악하고 있는 셈이다.블룸버그의 이력도 살펴볼만하다. 그는 공화당으로 뉴욕시장에 당선되었지만 원래는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는 경제전문 언론사 블룸버그 통신을 설립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상당한 명성을 얻었다. 그 저명한 민주당 인사가 뉴욕시장에 나서기 위해 소속 정당을 바꾸었다. 그러나 그는 당적변경에 따른 비난으로 곤경에 처하기는커녕 재선까지 성공했다. 그는 대선을 앞둔 2007년 경 잠시 공화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있기도 했다. 대선후보를 겨냥한 것이라는 설이 떠돌기도 했다. 그러다 2009년 공화당에 다시 복당했다. 뉴욕시장 3선에 도전하기 위함이었다. 2009년 11월 공화당 후보로 나선 블룸버그는 3선에 성공했다.
민주당 표밭 뉴욕시, 공화당 시장 5선째
이쯤 되면 뉴욕시는 공화당 강세지역이며 지난 미국 대선에서 뉴욕시의 표심도 공화당 쪽이었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뉴욕시는 오바마를 밀었다. 뉴욕시민들은 시장은 공화당을 선택했지만 대통령은 민주당을 선택했다.
사실 뉴욕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이다. 줄리아니 직전 뉴욕시장은 민주당 소속 쿠오모었으며 뉴욕시장은 대체로 민주당이 차지해왔다. 줄리아니 이후 공화당이 계속 뉴욕시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예외적 상황이었다. 뉴욕시가 대선에서 민주당을 지지한 것은 그 정치적 전통으로 볼 때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미국 뉴욕시의 이런 상황은 우리 한국의 눈으로 보면 다소 낯설다. 뉴욕시의 경우를 한국에 대입시켜 비유하자면 서울시민이 시장자리는 대대로 한나라당을 밀어주면서 대통령선거에선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한국에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없다.
뉴욕시민들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지지그렇다면 뉴욕시의 일견 이해하기 힘든 그런 모순된 정치적 선택의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범죄 문제였다.
줄리아니는 연방검사 출신이었다. 검사시절 그는 마피아 조직 소탕으로 명성을 떨치고 이를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9년 공화당 소속으로 뉴욕시장 선거에 나서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으나 1993년 마침내 뉴욕시장에 당선되었다. 그가 뉴욕시장에 나서면서 내건 가장 중요한 공약은 ‘범죄와의 전쟁’이었다. 그는 이 공약으로 뉴욕시장에 당선되었고, 자신의 첫 번째 임기 동안 뉴욕시의 범죄율을 획기적으로 낮추었고 결국 재선까지 성공했다.
뉴욕시의 범죄율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았다. 지하철이 안심하고 이용할 정상적 교통수단의 기능을 상실할 만큼 뉴욕시의 범죄는 심각했다. 줄리아니는 이 범죄도시 뉴욕을 완전히 換骨奪胎(환골탈태)시켰다. 그가 재선에 나섰을 때 사실상 경쟁자가 없었다.
‘범죄와의 전쟁’을 내건 줄리아니는 이른바 “깨진 유리창”의 비유로 자신의 철학을 설명했다. 깨진 유리창 한 장을 방치하면 거기에 익숙해져 마침내 주변의 다른 유리창마저도 모두 깨지게 만드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얘기였다. 즉 뉴욕의 범죄를 제압하기 위해선 사소한 범법행위에 대해서도 결코 관용을 베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철저한 불관용 정책’ 사소한 범법도 용서않은 줄리아니줄리아니는 시장에 당선된 뒤 바로 그렇게 철저한 불관용 정책을 견지했다. 그는 지하철에 낙서를 하는 행위 하나까지도 엄격히 단속했으며, 어떤 종류의 범죄이든 단 한 점의 관용도 베풀지 않는 가차 없는 단죄의 원칙을 지켰다. 그 결과 뉴욕의 범죄율은 사상 유례가 없는 수준으로 낮아지기 시작했다.
공화당 뉴욕시장의 시대는 바로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줄리아니의 범죄에 대한 불관용 정책은 후임 블룸버그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블룸버그가 재선을 거쳐 마침내 3선에까지 성공한 것은 뉴욕시의 범죄율이 사상 최저를 기록한 게 가장 큰 동력이었다. 그러나 뉴욕시는 일반적인 공화당 지배지역과는 정치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줄리아니와 블룸버그는 공화당의 기본원칙과는 달리 총기규제를 지지했다. 그래서 줄리아니는 공화당의 강력한 지지기반의 하나인 전미총기협회와 내내 불편한 관계에 있었으며, 블룸버그는 정통 공화당원들로부터 “무늬만 공화당”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줄리아니의 재선, 블룸버그의 3선은 사실 공화당에 대한 지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지지였다. 뉴욕시는 여전히 민주당 텃밭이며 이러한 상황은 미국의 다음 대선에서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뉴욕시민은 앞으로도 범죄에 대한 ‘관용 없는 전쟁’은 지지할 것이 거의 틀림없다.
연이은 소녀 유린 사건들, 한가한 정치권
몇 개월 전 ‘조두순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아직 아기나 다름없는 어린 소녀가 참혹하게 유린된 사건이었다. 그런데 선고형량이 턱없이 낮았음에도 검찰은 항고를 포기했다. 전국이 분노로 들끓어 오르자 국회에선 온갖 법안이 경쟁하듯 제출됐다. 그러나 그 모든 대단한 案들은 어느 틈엔가 그냥 국회의 서류더미 사이에서 잠을 자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아마도 의원님들이 ‘여러 이유로’ 많이 ‘바빴던 탓’이겠다.
그런데 귀한 분들의 바쁜 일정으로 법안에 먼지가 쌓이는 사이 또 한 마리의 짐승보다 못한 것이 우리의 어린 딸을 유린했다. 아이가, 아직 피지도 못한 아이가 할퀴어지고 목 졸려 죽은 채 알몸 상태로 묶여 차가운 물통 속에 처박혀 버려졌다.
범인은 검거되었다. 그러나 또 다시 폭발한 여론에도 불구하고 정치판은 여전히 소리만 무성할 뿐 행동은 한가하기 짝이 없다. 전자발찌가 어떻고 강력한 처벌을 하느니 등등 말은 난무하지만 먼지가 쌓여가고 있는 법안이 바로 처리될 가능성은 없는 상태다. 법사위원장인 민주당 유선호 의원과 양당 간사인 장윤석 한나라당 의원, 우윤근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법조인력 제도 개선 시찰을 위해 유럽으로 출장을 떠났다. 그들은 오는 16일에나 귀국할 예정이라 한다. 위헌 운운, 소급입법 운운에 범사위원들은 출장이라!
짐승도 어린 새끼를 성폭행하지는 않는다
인권은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 가능한 얘기다. 성범죄 특히 아동 대상 성범죄는 인간의 ‘인간적 실수’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다. 모든 성범죄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지만 특히 아동 대상 성범죄는 일탈을 넘어선 인간 자체에 대한 포기며 부인이다. 짐승 어쩌고 하지만 짐승도 어린 새끼를 성폭행하지는 않는다. 아동 대상 성범죄자를 두고 짐승이니 뭐니 하는 것은 까닭 없이 애꿎은 동물을 모욕하는 얘기다.
문명화된 사회는 범법자의 인권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으로 간주할 수 없는 존재’를 놓고 인권 운운에만 몰두하는 것에는 답답함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고매하게 법철학을 따지는 분들, 여차 저차 바쁘신 국회의원 분들, 그리고 이 나라의 모든 위정자 분들에게 묻고 싶다. 자신의 딸, 자신의 손녀가 그렇게 유린당했다면 지금처럼 한가할 수 있을 것인가?
범죄와의 전쟁이 필요하다. 서릿발 같은 결연한 전쟁이 필요하다. 모든 범죄에 엄격해야 하겠지만 특히 아동 대상 성범죄에는 어떠한 관용도 없어야 한다. 우리 자녀들의 최소한의 안전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출산율 저하 대책을 떠드는 것은 난센스조차도 못된다. 아동 대상 성범죄자들은 인간 범주의 바깥에 있는 쓰레기, 그것도 재활용의 여지가 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재활용 가능성이 없는 쓰레기는 폐기처분이 정답이다.
어설픈 동정론에 위선적인 포퓰리즘분노에 사로잡혀 인간미와 동정심을 구겨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위선적인 논리가 세상을 더 어지럽힌다. 공자는 야합으로 태어난 서자였고, 석가모니의 생모는 그를 낳자마자 죽었다. 예수의 모친은 마리아였으나 그 남편 요셉은 어떻든 생부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자가 아니라 성자가 되었다. 불우한 환경이 어쩌고 하는 어설픈 동정론은 이제 그만 떠들었으면 한다. 그런 식의 논법은 어려움과 고통을 극복하고 일어선 모든 이들을 모독하는 얘기다. 불우한 환경을 가진 모든 이들이 범죄자가 되는 게 아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훌륭히 성장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기에 그래도 세상이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 환경이 불우해도 잘 자라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을 만드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환경 운운을 범죄, 그것도 인간으로 간주할 수 없는 짓의 변호거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인간사 많은 일들이 그렇듯, 어설픈 동정심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인간은 견고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추상같은 율법 없는 설익은 휴머니즘만으론 일탈의 유혹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다. 불우한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는 오히려 범죄를 엄격히 다스리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 율법은 즐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은 때로 불편해도 결국은 우리를 안전하게 한다.
성추행자를 복당시키는 꼬라지...그래서 기회다
지금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정치지망생들이 자천타천 나서고 있다. 공천심사위 구성이 어떻고, 경선이 어떻고 온갖 얘기가 들린다. 그런데 어떤가? 줄리아니처럼 ‘범죄와의 전쟁’을 기치로 내걸고 나설 인물은 없는가?
성추행 전력자를 다시 복당을 시키는 자들이 정치를 하는 게 이 나라 정치판의 꼬라지니 期待難望(기대닌망)이겠다. 그러나 만약 이번에 다른 모든 것 이전에 오직 하나, ‘안전한 사회’ 단 하나만을 공약하고 범죄와 가차 없는 전쟁을 치르겠다고 나서는 인물이 있다면? 양식 있는 많은 유권자들은 당을 떠나 그를 찍을 것이다.
여야 모든 정당들도, 지방선거 지망자들도 이 점 빨리 깨닫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