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18일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 참석을 위해 덴마크 코펜하겐을 찾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시내 숙소 호텔 16층에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대통령님을 알게 되고 여러 차례 통화도 하고, 또 직접 만나 뵐 수 있게 된 점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6개월간 피말리는 국가대항전을 치렀던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발전 입찰. 그 결정권을 쥔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자였다. 이미 모하메드 왕세자는 이 대통령을 '협상의 상대'가 아닌 '형제국'으로 부르고 있었다고 한 청와대 참모는 28일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튿날인 19일 귀국하는 특별기내에서 68번째 생일 케이크를 잘랐다. 2년전 역대 최다표차로 대선에서 승리한 날이자 부인 김윤옥 여사와의 38회 결혼기념일. 이 대통령은 항공사에서 준비한 쌀막걸리를 "이러다 취하겠다"고 할 정도로 평소보다 많이 마셨다고 한다. 여러 수행원과 건배를 했고, 기분도 좋았다. 그 이유는 바로 UAE에서 날아온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은 곧바로 아부다비로 날아가 계약서에 서명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었을 터였다.

    원전건설과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는 흔히 민간 차원을 넘어선 영역으로 불린다. UAE원전은 직접 계약금만 200억달러, 60년 장기계약에 운영수익을 포함해 총 400억달러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수주건이었다. 각국 정상이 직접 지원에 나서야 해결될 수밖에 없는 사업이다. 건설비 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에 파급효과, 향후 인근 지역이나 원전시장에서의 입지를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다.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한전연료, 현대건설, 삼성물산, 두산중공업, 미국 웨스팅하우스 등 한국 컨소시엄은 UAE에 2020년까지 1400MW급 원전 4기를 건설한다. 1400MW급 원전은 40분 가동으로 서울 지하철 2호선이 하루동안 소모하는 전기량를 발전할 수 있는 시설이다. UAE 원전건설 수주로 우리나라는 그간 국내 원전건설에서 벗어나 중동 산유국(産油國)에 한국형 원자력발전소를 오히려 수출하는 명실상부한 '산전국(産電國)의 꿈'을 이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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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칼리파 빈 자에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 뉴데일리

    ◇ 꺼지던 불씨 되살린 MB의 전화 한 통 = 6개월전 모하메드 왕세자는 이 대통령의 UAE 방문 타진에 "입찰과정이라 쉽지 않다"고 정중히 거절했었다. 세계 원전시장 24%를 점유하고 있는 프랑스 아레바가 절대적 우위에 있는 듯 보였다. 이즈음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UAE를 방문, 굳히기에 돌입하면서 "이미 끝난 게임"이라는 분위기마저 팽배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모하메드 왕세자와의 첫 전화통화를 시작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CEO 이명박'으로 모습을 바꿔 과거 기업경험을 살려 입찰 내용을 직접 검토했다. 경쟁사와의 차별화를 위해 공기단축이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실무진에 지시했다. 결국 당초 계획보다 6개월 단축한 52개월이라는 공기는 UAE가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갔고, 공기단축은 설계표준화와 최신 시공기술을 갖춘 한국의 '전매특허'로 강점을 발휘했다. 60개월 이상의 공기를 제안한 경쟁사들을 따돌리며 조기건설을 희망하던 UAE의 요구에 충족한 것이었다.

    7월들어 UAE 원전 수주전은 새 전환점을 맞이한다. 당초 7월내 후보업체를 2배수로 확정짓겠다던 UAE가 발표를 한달 정도 연기한다는 내용을 밝힌 것. 프랑스와 다시 승부를 겨뤄볼 희망이 생긴 시점이었다.

    이 대통령은 참모들로부터 수시로 상황을 보고받고 협상방법을 조언했다. 이 대통령이 제시한 '3단논법'은 △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체제로는 미래성장을 견인할 수 없으며 반도체, 조선, IT와 같은 산업을 기반으로 해야한다 △ 한국은 이 세 분야에 세계적인 경쟁력이 있다 △ 그러므로 한국이 UAE 최적 협력 파트너라고 강조하는 방식이었다.

    이 대통령은 8월 하순 한·UAE 정부차원의 협력사업을 제안하는 친서를 모하메드 왕세자에게 전달했다. '한·UAE 협력파트너십 구축' 제안서도 함께 보냈다. 실무진에서는 UAE에 연구인력 양성 지원을 약속하고 KAIST 분교 설립으로 원자력공학 분야 발전을 촉진하겠다고 제안하는 등 세일즈에 박차를 가했다. 9월 UAE는 우리 한국전력컨소시엄과 프랑스, 미국(GE)·일본(히타치) 등 3개 컨소시엄을 모두 '계속협상대상자'로 남겨뒀고 우리의 성공은 조금씩 길을 열어갔다.

    ◇ UAE의 변화…MB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다" = "여러차례 업, 다운이 있었다." 청와대 한 참모는 원전 수주 과정을 이같이 표현했다. 10월 한국은 최대 위기에 직면한다. 프랑스의 막판 파격적인 제안을 UAE에 하면서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됐다. 이 대통령은 11월초 유명환 외교부 장관을 급파했지만, UAE는 어떤 긍정적인 답변도 내놓지 않았다. 사업자 선정이 임박하던 당시 거절 통보나 다름없었다.

    이 대통령은 다시 모하메드 왕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달갑지 않은 반응. 그러나 이 대통령은 "우리는 미래지향적 협력을 원한다"는 모하메드 왕세자의 한마디를 놓지치 않고 차분히 대화를 이어갔다. 이 대통령은 원전 이외에도 한국이 잠재력을 가진 분야에서 전폭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제서야 모하메드 왕세자는 "다시 생각해 보겠다"며 한국 대표단 방문을 수용했다.

    며칠 뒤 이 대통령은 모하메드 왕세자와 다시 통화하면서 "교육, 기술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이 때 마호메드 왕세자는 놀라운 말을 전한다. "UAE 정부는 프로젝트 수주 결정을 조금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최근 대통령님과 통화한 뒤 그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아마 지금부터 약 5주 뒤 발표할 것 같습니다." 큰 변화를 감지한 이 대통령은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고 기술에도 자신감이 있다. 우리가 가진 열성은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며 모하메드 왕세자에게 다짐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즉시 한승수 전 국무총리와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을 중심으로 교육, 기술분야 전문가단을 UAE에 보냈다. 한국 정부의 신속한 움직임에 UAE는 적잖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당시 한 전 총리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고 한다. "UAE에서 실질적으로 원하는게 있을 겁니다.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100년에 걸친 양국간 협력, 또는 뭔가 미래지향적인 제안을 하는게 좋겠습니다."

    ◇ 6개월간의 사투, 역전드라마를 쓰다 = 입찰경쟁이 막바지에 접어든 12월, 이 대통령은 모하메드 왕세자를 상대로 본격적인 '전화외교'를 펼쳤다. 이 대통령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신뢰'. 한국형 원전의 강점을 안전성, 공기단축, 비용절감으로 요약해 적극적인 세일즈를 펼쳤다. 결국 코펜하겐 방문을 이틀 앞둔 지난 15일 모하메드 왕세자는 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오랜 숙고 끝에 한국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사실상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수주 마라톤의 최종 승자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이 대통령은 "주말에 다시 통화하고 싶다"는 모하메드 왕세자의 요청에 따라 아랍어 통역관을 코펜하겐 일정에 동행하도록 지시했다. "토요일 귀국 후 전화올 가능성이 높으니 통역이 필요없을 것 같다"는 참모진의 조언이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중동인들은 금요일도 주말이라고 하니 금요일에 연락이 온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굽히지 않았다. 경험을 살려 상대방을 분석한 이 대통령의 예상대로 모하메드 왕세자의 전화는 18일 금요일에 걸려왔다.

    청와대 참모는 "UAE 원전 수주에서 아무도 한국의 낙승을 예견하지 못했다. '신생팀' 한국에 총 400억달러짜리 프로젝트를 쉽게 내주겠느냐는 회의론이 대세였다"면서 "그러나 한국은 집요하고 끈질겼다. 만나고, 전화하고, 제안하고, 설득하면서 조금씩 점수를 쌓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직접 지휘봉을 잡으면서 힘이 쏠렸고 전략이 정교해졌다"며 "결국 막판 뒤집기의 묘미를 전 세계에 선사한 것"이라고 돌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