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 테이블과 의자 바꾸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겁니다"

    한나라당 한 주요 당직자가 24일 정몽준 대표를 두고 한 말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친이계면서도 주요 당직을 맡고 있어 정 대표와 자주 접촉하는 인사다.

    정 대표는 얼마 전 체면을 구겼다. 자신이 제안한 대통령-여야 대표 3자회담을 청와대가 거부하면서다. 지난 15일 대표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국회 정상화를 위해 정세균 민주당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했다. 그런데 정 대표는 하루 만인 16일 당 공식회의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만나자며 회담 성격을 키웠다.

  • ▲ 지난 15일 대표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연합뉴스
    지난 15일 대표 취임 100일을 맞아 기자회견을 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연합뉴스

    여야 대표 회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민주당은 이를 즉각 수용했다. 이 대통령과의 담판으로 예산정국을 돌파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여야 진흙탕 싸움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이겠다는 계산도 깔린 것으로 읽혔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를 거부했다. 국회 예산 전쟁에 대통령이 개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여당 대표의 회담 제안을 청와대가 거부한 모양새가 만들어진 것이다.

    정 대표는 곧바로 야당은 물론 자당 주요 당직자들에게조차 공격을 받았다. 결국 정 대표는 20일 다시 대통령을 포함한 여야 대표 회담 조건으로 민주당의 예결위 회의장 점거농성 해제와 4대강 예산 철회를 내세우며 한 발 물러섰다. 사실상 제안 철회이자 회담 결렬을 야당 탓으로 돌린 것이다. 정 대표에게 돌아온 야당의 답변은 "여당 대표가 정치를 너무 모르고 리더십이 없다"(민주당 관계자)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 대표의 당내 위상은 크게 위축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기 대선가도에도 적잖은 상처가 났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 반응이다.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한나라당 의원은 "정 대표가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껏해야 회의 테이블과 소파 정도 바꾸는 일 밖에 없을 것"이라며 "자신이 주도적으로 정국을 이끌 수 있는 여건은 만들기 힘들다"고 했다.

    지난 9월 대표 취임 기자회견을 통해 당내 친이-친박간 칸막이를 치우겠다고 선언했지만 100일 뒤 정 대표는 당내 갈등 해소여부를 묻는 질문에 "빠른 시일 내에 (친이-친박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것은 아쉽고 유감"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