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민주당의 태도가 정세균 대표의 정치 스타일인가. 이런 물음에 한 민주당 관계자는 'NO'라고 답했다. 그러나 "정치상황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사람이 코너로 몰리면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미스터 스마일'이란 별명을 갖고있을 만큼 정 대표의 성품은 온화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지금 정 대표는 기존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해 예산안과 산적한 민생법안 통과가 시급한데도 정 대표는 국회 문을 닫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법안 처리 최종 관문인 본회의장 입구는 천정배 장세환 최문순 의원이 23일째 막고 있고, 맞은편 예결위회의장은 8일째 점거농성 중이다. 이곳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새해 예산안 처리가 힘들다. 결국 국정책임자인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고 새해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는 상황에 대비해 "준예산 집행 등 관련대책을 철저히 준비해라"고까지 지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4대강 사업에 비판여론이 높다고 해도 민주당이 장기간 국회 문을 닫는다면 그에 따른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강경투쟁 보다는 대화와 협상을 선호한다는 평을 받아온 정 대표가 이런 부담에도 강공을 선택한 것을 두고 당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기존 정치 스타일을 바꾸면서 정 대표의 전략적 판단 미스가 잦아졌다는 평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제안한 이 대통령과의 회담이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지금의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선 회담을 성사시켰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 관계자는 회담 실패를 여당 탓으로 돌리면서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한명숙 전 국무총리 금품 수수 의혹 사건에 엮이며 정치적 입지가 크게 좁아진 정 대표로선 이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한 의원은 이날 영수회담 실패와 관련, "정 대표의 행동이 이해가 안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대학 후배이고 기업에도 있었던 정 대표에게 큰 호감을 갖고 있고, 정 대표가 제1 야당 대표라는 점을 좋게 평가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이 영수회담을 통해 정 대표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었는데 정 대표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미스"라고 했다. 정 대표가 이 대통령과의 회담으로 좁혀진 당내 입지를 돌파할 해법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대표는 코너로 몰리면서 더 강경해지고 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도 새해 예산안 관련, "민주당은 싸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고,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해선 "도저히 묵과할 수 없고 우리는 단호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나 당내 온건파는 정 대표의 이런 행보에 불만을 쏟고 있다. 조경태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자당의 예결위 회의장 점거농성에 대해 "이제 농성을 풀고 예산심의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대강 예산 때문에 다른 모든 예산을 처리하지 않으면 국민에게 발목잡기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조 의원은 "언제까지 의원들을 볼모로 해 협상을 할 것이냐. 이는 지도력 부재다. 자신이 없다면 물러나는 게 낫다"고 까지 했다. 당 관계자도 "정 대표가 목소리 큰 일부 강경파에 너무 끌려 다니는 느낌"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