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오랜 고심끝에 유엔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키로 막상 결정했으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기후변화회의의 결과물에 기대치는 높지만 현실적으로는 선진국과 개도국간 견해차로 구속력있는 협정이 마련되기 쉽지 않은데다, 미국내 정치적 상황이 오바마의 운신 폭을 좁게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노르웨이 오슬로에 가기 전 다음달 9일 코펜하겐에 들러 기후변화회의에 참석키로 했다. 기후변화회의는 12월 7일부터 18일까지 열리기 때문에 오바마의 일정은 회의 초반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기후변화회의 참석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한 주된 이유는, 회의에 참석하고도 빈손으로 돌아오게 될 경우 쏟아질 비판과 정치적 부담이다.
    오바마의 코펜하겐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의 2016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지난달초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했다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국내에 산적한 현안을 제쳐놓고 승산이 희박한 올림픽 유치전에 에너지를 쏟아부었다는 따가운 비판을 받으면서 오바마로서는 적잖은 정치적 내상을 입었다.
    이번 기후변화회의도 오바마의 입장에서는 본전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임이다.
    이번 회의는 2012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기후협약 마련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량을 둘러싼 개발도상국과 선진국의 견해차가 커 법적 구속력 있는 합의가 채택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회의 주최국인 덴마크 정부는 구속력 있는 최종 합의를 2010년까지 미루는 대신 이번 회의에서는 포괄적인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두번의 코펜하겐 방문이 이렇다할 실익을 거두지 못하는 행차로 끝날 경우 오바마로서는 또 다시 보수언론의 집중포화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오바마는 회의 초반에만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편법을 동원했다는 후문이다.
    회의 막판에 60개국 이상의 각국 정상이 모두 참석해 합의를 도출하는 현장에 자리를 지켰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정치.외교적 부담을 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교토의정서가 발효된 1997년 이후 지금까지의 세월은 미국에는 `잃어버린 10년'이다.
    의정서 발효 후 미국은 의회의 반대로 차일피일 비준을 미루다가 결국 선진국 가운데 지구온난화 방지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낙인찍혔다.
    이런 학습효과를 체득한 오바마가 코펜하겐 회의의 합의서 채택과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을 다해 동참하기는 부담스러운 것이다.
    한편으로 미국내 정치적 상황은 오바마에게 이번 회의에 통 큰 목표안을 내놓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현재 하원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배출량을 2005년 기준에서 17% 감축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상원은 향후 10년간 20% 감축하는 내용의 법안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의원들의 반발이 워낙 커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17%선 위로 높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때문에 오바마는 코펜하겐 회의에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17%로 제안키로 했다.
    이 정도는 유럽연합(EU)이 제시하는 감축목표와 비교해 형편없는 수준이다.
    EU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20% 감축하는 목표안을 준비중인데 기준시점이 미국의 2005년이 아닌 1990년이다. 또 EU 일각에서는 목표치를 30%로 끌어올리는 움직임도 제기되고 있다.
    오바마로서는 의회의 동의가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높은 목표를 제시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책임있는 리더십을 주장하기에는 손에 쥔 카드가 초라하기 이를데 없다는 것이 고민이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