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정부가 교육개혁방안들을 대거 쏟아내고 있다. 대충 추려봐도 제7차 교육과정 개편과 입학사정관제 도입, 대학 학자금 대출제도 개선, 밤 10시 이후 과외학습 금지 등인데, 원래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MB의 대국민 공약에 최근 '친(親)서민' 기조까지 더해져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 모두가 좋은 의도에서 출발한 것이기에 그 선의를 평가하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선의도 때로는 재앙을 초래하는 만큼 우려가 없을 수 없다.

    부조리한 현실을 고치는 데 필요하다면 제도도 바꿔야 한다. 또 비상한 의지를 갖고 제도를 과감히 바꿀 때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교육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바꿔진 것들을 보면 교실을 실험장 정도로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고 설파했는데, 이 말이 우리 교육현장에서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

    중·고등학교에서 같은 교과서로 두 번 배울 수 없고 같은 입시제도로 두 번 대학을 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다. 김대중 정부 때는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갈 수 있다고 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논술만 잘하면 대학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입학사정관의 눈에만 잘 들면 대학 갈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MB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입학사정관제도는 과연 만병통치약인가. 혹시 나중에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은 없는가. 미국대학만 해도 10% 정도만 제대로 된 입학사정관제가 실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데 준비도 안 된 나라에서 어떻게 입학사정관제를 임기 내에 100%로 실시할 수 있을 것인가. 또 당장 입학사정관제가 실시된다고 해서 사교육 시장을 잠재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 서울 강남에서는 논술학원이 지고 학생들에게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하게 만드는 컨설팅 학원이 뜬다는 소리가 들린다.

    현재 교과부가 추진 중인 미래형 교육과정도 문제다. 국민공통 기본과목인 10과목을 7과목으로 줄이면 사교육이 경감된다는 논리가 핵심인데, 사교육의 주범인 국·영·수를 내버려두고 그 이외의 변두리 과목을 줄인다고 해서 과연 사교육이 줄어들 것인가. 또 교육과정이 개편된 지 1년밖에 안 되는 시점에서 또다시 교육과정 개편을 하겠다고 서두른다면 어떻게 제대로 된 개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각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나름대로 개혁을 내세우면서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논리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둘러 왔지만, 그 효과는 전무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조자룡의 헌 칼'처럼 쓸모없는 개혁이 되고 말았다. 최근 1년 전에 바뀐 교육과정에 맞춰 중1 교과서가 개발되었는데, 그것이 채 사용되기도 전에 새로운 교육과정에 의한 교과서가 또 나와야 할 판이다. 끊임없는 신상품 출시로 승부를 거는 시장이라면 모를까, 백 년을 내다보면서 인성을 다루어야 할 교육현장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교사 모두 황당해하고 있다.

    우리 교육현장은 언제나 '공사 중'이다. 학부모들이 교육에 관한 한 극심한 개혁피로감에 시달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대입제도도, 교육과정도, 교과서도 바뀌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형제가 있는 집안에서 교복은 물려줄 수 있는데, 교과서는 물려줄 수 없다면 부조리한 사회가 아니겠는가.

    선진화된 사회라면 예측성과 안정감이 필요하다. 아침 6시 문밖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날 때마다 "아, 신문이 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가 안정된 사회다. 그렇지 않고 작은 소리가 날 때마다 신문이 왔는지, 좀도둑이 왔는지, 취객이 어슬렁거리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면 어떻게 안정된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대입제도를 갖고도 내년 대입제도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사회, 힘들여 교육과정을 짜놓고서도 당장 내년 교육과정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사회, 새로 된 교과서를 발행하고도 내년에 어떤 교과서를 쓸 것인지 가늠할 수 없는 사회는 선진사회와 거리가 멀다.

    공교육 정상화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서는 결연한 의지로 교원평가제를 확립하고 우수교사에 대한 과감한 우대책을 내놓으면 될 것을 공연히 큰 줄기, 작은 줄기 건드리며 '경쟁이 필요없는 세상'을 만들 것처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것이야말로 '교육 포퓰리즘'이 아니겠는가. 청와대와 교과부는 불편하겠지만 진실을 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