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산 사람들의 애착은 거의 맹목적인 수준이었고 서로 형, 동생하며 지내다가도 (노무현 때문에) 시각차가 생기면 적이 돼 버렸다. 대표적으로 유시민 같은 사람의 스타일이 그랬다"

    초창기 노사모를 이끌었고 최고위급 간부를 지낸 A씨가 한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을 지탱하는 가장 큰 축인 386 친노그룹을 보는 A씨의 생각은 초창기 노사모 활동 당시와 180도 달라졌다. "당시만 해도 백원우, 안희정, 유시민 같은 친구들이 우리 정치의 귀중한 자신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들에 대한 기억을 전부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것 같다"는 게 친노386을 보는 A씨의 현 시각이다.
     
    A씨는 노 대통령 당선 뒤 '노사모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다 반대파에 밀려 2006년 축출된 인물이다. A씨는 지난 13일 주간조선과 3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근 상황에 대한 심경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현재 40대 후반인 그는 2004년 총선 때 주변의 권유로 출마를 준비까지 했던 인물이다. 현 노사모의 모습에 대해 묻자 그는 "어느 순간부터 노사모는 자신을 비판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단체로 변했다"고 답했다. 그는 "그들은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았다"고도 했고 "내가 제명을 당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과 인터뷰를 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꼽았다. 그는 "노사모 주류가 생각하던 '노무현에 대한 애정'은 나와 달랐던 것 같다"며 "내 주변 사람들은 노무현을 '동서화합의 대리인'정도로 봤지만 부산 사람들의 애착은 거의 맹목적인 수준이었고 서로 형, 동생하며 지내다가도 (노무현 때문에) 시각차가 생기면 적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으로 유시민 같은 사람의 스타일이 그랬다"고 설명했다.

    노사모 주류와 친노 인사들의 문제점을 묻자 "경선 이후 노사모에 들어온 회원이나 노무현 정부의 참모들은 경험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다'며 "사회 각 영역에서 성공을 하기보다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의 극단적인 사고가 참여정부의 주류를 이룬 게 문제였다"고 답했다. 그는 "참여정부가 일반국민과 괴리되는 정책을 쏟아내면서 선명성만을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386참모들에 대해선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고 까지 말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백원우, 안희정, 이광재, 유시민 같은 친구들이 우리 정치의 귀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들에 대한 기억을 전부 쓰레기통에 넣어야 할 것 같다"며 "이들은 소아적으로 자기 안위를 챙기고 집단의 힘을 통해 영향력을 키우려고만 했다"고 비판했다.

    또 "당에 사람이 몰려들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차단막을 치고 배타적인 행태를 보였고 대화와 설득이 아니라 자기들만 우뚝 서려고 한 것"이라며 "그러면서도 자신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용적이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선명성만 강조할 수밖에…"라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에 아쉬운 부분을 묻자 그의 '언론관'을 꼽았다. 재임 내내 보수언론과 충돌한 노 전 대통령이었는데 A씨는 "노 전 대통령의 언론관계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사 사주들의 생각은 어땠는지 몰라도 기자들은 그에게 많은 호감을 갖고 있었다"며 "그런데 이런 부분조차도 살려내지 못했다"고 했다. 학력 콤플렉스는 물론 경제력에 대한 콤플렉스도 있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비리 의혹에 대해선 "지금이라도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게 끔 모든 것을 솔직하게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고 "과거 문제가 됐던 대통령들에 비해 액수가 적다고는 하지만 이 사안은 액수를 떠나 용서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의 당당함이 좋았는데 지금 권양숙 여사 얘기도 나오고 해서 씁쓸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