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배인준 논설주간이 쓴 <좌파 궐기, 우파 분열 속의 '광우병 괴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오늘로 72일째다. 5년 임기의 3.9%가 경과했다. 마라톤으로 치면 42.195km 중 1.7km쯤 뛴 상태다. 중간평가 운운할 단계는 아니지만 새 정권 내부에서 냉철한 자기점검은 해야 할 상황 같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다수 국민은 ‘노무현 386식 좌파의 길을 버리고 새 길을 열라’고 지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4·9총선 민심의 총체적 분포는 ‘좌파노선 거부’가 압도적이었다.

    이 대통령은 작은 정부, 친(親)기업, 규제완화, 투자촉진, 법치 회복의 방향으로 기수를 분명하게 돌렸다. 경제뿐 아니라 교육에서도 자유와 자율의 원칙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창의성, 효율, 경쟁력을 높여 성장잠재력을 제고하고 국가 전체의 파이를 키움으로써 민생의 전반적 향상을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MB노선은 무엇보다도 국정을 위임한 민의를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은 “뭐가 달라졌느냐”고 묻고 있다. 워낙 ‘경제 하나 믿고’ 맡겨달라고 한 터라 국민은 단기적 실적 부진에도 불만을 감추지 못한다. 국내외 악재가 구조적으로 겹쳐 정책 운용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헤아림보다는 ‘7% 성장 장담하더니 왜 꼬리를 빼느냐’는 비아냥이 앞선다.

    이 정부, 방향 옳지만 방어력 취약

    사정이 이럴수록 정부여당이 힘을 모으고 작은 실수도 줄여야 신뢰를 얻을텐데, 부처 간 엇박자에다 당정 힘겨루기 양상까지 빚고 있다. ‘경제 이미지’로 일어선 정권에 경제 리더십이 혼미하고 불협화음이 먼저 들리니 적잖은 국민은 ‘딴건 보나마나다’ 하는 기분이 된다. 정부여당 안에 독불장군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닌지 저마다 돌아봐야 한다. 에너지, 물가 등의 대책을 다루는 자세와 상상력도 실망스럽다. ‘새벽정부’라며 바쁘기만 하지, 시장에 대한 이해부터가 부족해 보인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이 정부 출범 이후 많이 가셨다. 이 대통령은 단기간에 군의 위상과 사기를 높이는 데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군인의 역할과 희생은 지난 정부에서 평가절하됐다. 군인들은 군복을 부끄러워하고, 영토 영해 영공을 왜 지켜야 하는지 의문을 느껴야 했다. 그렇던 군의 자존심과 ‘강군(强軍)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부는 이런 긍정적인 변화만 흡족해했지, 그 반작용에 대한 원려(遠慮)와 대응에는 방심한 것이 아닐까. 이 대통령은 경제 교육 안보 등 모든 국정을 ‘실용’이라는 개념 안에서 설명하려 했지만 좌파(순수 이념적 좌파건, 북한 연계적 좌파건)세력은 위기감 속에서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광우병 괴담’이 괴물처럼 커졌다. 일부 방송국을 비롯해 변화에 두려움을 느낀 세력, 그리고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타격을 줘야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는 세력이 합세했다. 거기엔 좌우가 혼재해 있다. 이 정권이 민심에 둔감한 인사(人事), 파벌갈등을 고조시킨 공천 등으로 신뢰 하락과 리더십 약화를 자초한 것도 ‘광우병 괴담’ 동참 또는 방조세력을 키웠다.

    ‘광우병 괴담’에 대처하는 태도와 실력을 보면 이 정부 안에도 지난 정부 못지않게 무책임하고 무능한 고위직이 섞여있음을 알 수 있다. 4월 18일 한미 쇠고기협상 타결 이후 부처 홈페이지에 공격성 글이 나날이 늘어났음에도 괴담이 진실처럼 굳어버린 5월 2일에야 등 떠밀려 담화문을 발표하는 수준으로는 고난도(高難度)의 국정 이슈를 감당할 수 없다.

    장차관쯤 되면 미국산 쇠고기의 진실뿐 아니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불발에 그치면 우리 국민이 두고두고 어떤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지, 개방 반대세력의 선동을 압도할 만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쓸데없이 바쁜 시늉만 내는 사람들이 아니라 진짜 자신을 던져야 할 때 뒤로 빠지지 않고 뛰어드는 용감한 관료가 필요하다.

    정권 핵심들의 정치력 시험대에

    박근혜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경쟁자는 아닐지 모르지만 지금은 협력자도 아니라는 점에서 상당한 ‘반대세력 효과’를 내고 있다. 이 대통령의 ‘안보관 불안’을 대선 3수(修)의 명분으로 삼을 만큼 더 우파적인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쇠고기 좌파’와 호흡을 맞추는 모양새다. 이 총재도 이제 이 대통령의 경쟁자는 아니지만 이 정부를 흔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좌파의 총궐기와 우파의 분열이 동시진행형이다. 이 정권 핵심들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