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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운동 첫날인 27일부터 13일간 18대 총선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한나라당은 강재섭 대표, 통합민주당은 손학규 대표가 세몰이를 시작했다. 한나라당은 ‘경제부터 일자리부터, 실천의 힘 한나라당’을, 통합민주당은 ‘국민 생각, 민생 우선’을 대표 구호로 내걸었다.
여야는 당운(黨運)을 걸고 싸워야 한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안정론’으로 안정의석(151석)을 호소하고 있다. 통합민주당은 ‘견제론’으로 개헌 저지선(100석)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재섭 대표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성공적으로 치렀고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당연히 총선승리로 ‘3관왕’에 오르고 싶을 것이다. 손학규 대표는 대선후보경선 실패 이후 와신상담, 재기에는 성공했으나 지리멸렬한 당을 회생시켜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다.
두 당의 총선 목표치는 50석이나 차이가 난다. 하지만 당이 처한 상황은 여야 다를 것이 없다. 두 당 모두 공천과정을 겪으면서 극심한 내홍에 휩싸여 있다. 공천에 탈락한 전 현직 의원 상당수가 탈당을 결행했다. 그들은 보란 듯이 전국 각지에서 무소속 또는 친박연대로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총선 상황이 이렇게 꼬인 것은 한나라당은 계파간의 갈등과 권력 실세들 간의 권력투쟁의 결과이다. 통합민주당은 대선 패배에 따른 당의 무기력과 합당에 따른 자중지란의 후유증 때문이다.
명란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병법에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했다.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사람이라도 두렵게 한다.”고 했다. 위기의 당을 구하기 위한 여야 정당 대표의 선택도 같았다. 그들은 모두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을 선택을 했다. 자신을 희생하여 당을 살리려고 한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가깝게는 4월 9일, 멀게는 2012년 12월에 가야 판명날 것이다.
우리 헌정사에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배수진(背水陣)을 치는 선례는 종종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종필 전 총리의 경우이다. 그러나 ‘3김 정치’로 대표되는 그들은 강력한 지역적 기반위에 의원직을 던져도 당을 장악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강재섭, 손학규 대표의 경우는 다르다. 그들은 지역주의 정치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당내에 절대적인 지지세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앞으로 당내에서 각각 강력한 라이벌들과 차기 대권을 향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해는 지는데 갈 길이 먼 그들은 ‘개인 보다는 당’을 선택했다. 한 사람은 6선의 명예로운 의원직을 버리고 험난한 야인의 길을 선택했다. 또 한 사람은 적진 속에서 자칫 낙선의 고배를 마실 수도 있는 모험을 하고 있다.
한나라 고조 유방(劉邦)이 제위에 오르기 2년 전(B.C.204)의 일이다. 명장 한신(韓信)은 유방의 명에 따라 위(魏)나라를 쳐부순 다음 조(趙)나라로 쳐들어갔다. 한신은 강을 등지고 진을 치게 한 다음 자신은 본대를 이끌고 성채를 향해 나아갔다. 강을 등진 한나라 군사는 필사적으로 싸웠다. 이에 견디지 못한 조나라 군사가 성채로 돌아와 보니 한나라 깃발이 나부끼고 있지 않은가. 전쟁은 한신의 대승리로 끝났다. 전승 축하연 때 부하 장수들이 배수진을 친 이유를 묻자 한신을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군사는 이번에 급히 편성한 오합지졸(烏合之卒)이 아닌가? 이런 군사는 사지(死地)에 두어야만 필사적으로 싸우는 법이야. 그래서 ‘강을 등지고 진을 친 것[背水之陣]’이네.”
대선 이후 계파분열로 ‘당밖의 당’이 탄생한 한나당이나 합당 휴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통합민주당의 사정이 바로 한신의 군대 처지가 아닐까. 강재섭, 손학규의 배수진은 과연 누구의 승리로 돌아갈까. 국민적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확보와 손학규의 종로 선거구의 당선, 그리고 무소속 후보들의 약진은 18대 총선 ‘3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선거 결과에 따라 강재섭, 손학규의 정치적 명암이 갈릴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패장에게는 권토중래(捲土重來)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