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닷새 동안의 긴 설 연휴 동안 민심잡기 경쟁에 올인 했던 정치권은 두 달 앞으로 다가온 4·9 총선에 대비한 ‘공천 전쟁’과 ‘새 판짜기’로 술렁이고 있다. ‘예비여당’인 한나라당은 공천 문제를 둘러싼 친이-친박계의 수면 아래 잠복한 갈등으로, 대통합민주신당 등 ‘예비야권’은 공천 준비작업과 통합 협상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이다.

    한나라당은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4·9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일찌감치 공천신청을 마감한 결과 전국 평균 4.82:1, 서울 은평갑은 16: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여 10년만의 정권교체에 따른 특수를 제대로 누리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게 ‘공천=당선’ 이라는 들뜬 분위기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설민심에서 ‘안정론’ 보다는 ‘견제론’이 슬슬 살아나는 조짐을 보이고 있으며, 우리 국민들은 ‘승자(가진 자)의 오만’에 대해서는 지극히 냉담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민정서를 예단해서 강재섭 대표는 설민심을 잡기위한 ‘경제살리기’에 올인하는 예비 여당의 모습을 보이는 데 주력했으며, 조기 총선 선거대책위원회를 구성, 11일에는 공천심사 기준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일정을 서두르고 있다.

    강 대표가 설 직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이 더욱 겸손한 자세로 단합된 마음으로 새 출발해야 한다”면서 “당과 국민을 위해서 단합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한 것도 들뜬 한나라당 총선 예비후보자들에 보내는 경고와 우려의 메시지였을 것이다.

    1년 전 이맘때 설민심은 ‘너무 살기 힘드니 한나라당이 분열하지 말고 반드시 집권해 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때 한나라당은 ‘국민의 당부와 기대에 부응해서 민생안정과 정권교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작년 연말 대선에서 그 약속을 지켰다.

    한나라당이 총선목표인 과반수 이상의 안정의석을 확보하는 비결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작년 설민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최근 불거졌던 공천공방과 인수원회의 시행착오와 관련된 일들에 대한 국민의 우려 목소리를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MB 인기는 상종가이고 MB 간판을 달면 호남과 수도권의 열세지역을 제외하고는 ‘따 논 당선’인 것 같은 분위기다. 이런 찬스를 놓칠세라 MB맨들이 레임덕이 걸리는 다음 총선보다는 이번 총선에 나서자는 분위기다.

    MB맨들의 대의명분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의회에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가신들이 대거 의회로 진출해야 한다는 아전인수식 논리에 함몰되어 있다. 그러나 ‘좋은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서 한나라당 공심위원들이 이들의 논리에 설득당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권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몰락사(史)’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역사는 비슷하게 반복하기 때문이다. YS·DJ·노무현 정권은 모두 “우리끼리 코드정치”로 일관했다. “정권을 잡았으니 거치적거리는 동업자들을 몰아내고 명실상부한 ‘우리끼리당’을 만들어 우리끼리 해보자”는 가신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났다.

    그 결과 문민출신 3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동업자들을 토사구팽시켰고 지지기반 축소에 따른 국정혼란과 통치력 일탈에 기인해서 모두 ‘실패한 대통령’으로 추락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여의도식 정치’를 혐오한다고 했다. 승자의 싹쓸이, 그런 ‘승자독식구도’의 유혹을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에 이명박 정권의 성패가 달려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어 청와대로 입성하는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자신이 단군 이래 가장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과욕을 부린다. 그러나 그러한 대통령들의 오만은 문민 3기를 거치면서 모두 ‘실패로 점철’했다.

    이명박 당선인이 가야 할 길은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라야 한다. 대한민국과 한나라당 그리고 이명박 당선인 모두를 위해서 당선인은 "저는 매우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길 것이다. 그것이 불교의 '하심(下心)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자신의 말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번 한나라당의 총선 공천도 당선인은 특정 계파의 수장(首長)이 아니라 계파를 초월하여 천하의 인재들을 다 포용하는 ‘탕평공천’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당선인은 말로만 계파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당권대권 분리’의 당헌정신을 살려 공천결과에 대한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강재섭 대표에게 공천권을 일임했다고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국민이 믿게 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