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1일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대외적으로는 남측에 10.4선언의 "철저 이행"과 남북경협의 확대를 주문하면서 대내적으론 체제고수와 주민생활 향상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북한은 남측의 대선 결과에 대해 2-3일 후면 논평까지 곁들여 보도했던 예년과 달리 새해를 넘겨서도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신년 공동사설은 남북관계에 대해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언급에 그쳤던 과거 사설과 달리 10.4공동선언의 주요 내용을 상기시키며 이의 철저한 이행에 대한 주문과 기대를 구체적으로 밝
    힘으로써 새 이명박 정부의 출현에 대한 반응임을 짐작케 했다.

    공동사설은 10.4선언과 관련, 특히 "북남경제협력을 공리공영,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다방면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을 장려하여야 한다", "북남 사이의 협력과 교류를 통일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게 확대발전시켜야 한다"는 등으로 남북경협 확대를 기대했다. 

    사설은 또 이명박 당선인의 '한미동맹 강화' 발언을 의식한 듯 "어떤 경우에도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방해하는 친미사대와 매국배족행위를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며 "북과 남의 정당.단체들과 각계각층은 주의주장과 당리당략을 떠나 민족의 대의를 앞에 놓고 굳게 단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작년 공동사설을 비롯해 그동안 대남 비난의 단골용어였던 '반한나라당', '반보수 대연합 구축' 주장도 사라졌다. 

    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위 자문위원인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남한의 새 정부 출범에 맞춘 듯한 이례적인 신년사"라며 "남북관계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구체적이고 단도직입적으로 언급해 새 정부에 보내는 매시지를 강하게 나타냈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북한은 10.4선언을 남북관계의 주춧돌로 보고 이를 쌓아 올려야 한다는 점을 이명박 정부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며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인정하면서도 새 정부가 지켜야 할 길은 이것(10.4선언)이다라고 점잖지만 뚜렷하게 제시했다"고 분석했다. 

    공동사설은 그러나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핵문제와 대미관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없이 북한에 우호적인 모든 나라와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키겠다는 일반적인 대외정책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사설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끝장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며 합동군사연습과 무력증강책동을 저지시키고 미군기지를 철폐하여야 한다"는 대목도 남북관계 분야에서 주장했다.
    북핵 문제가 핵프로그램 신고 지연으로 다소 불안한 상태에 있지만 북미관계가 아직은 긍정적 움직임의 연장선에 있는 것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연구센터장은 "현재 북.미 핵협상 과정에 있기 때문에 핵무기를 강조하지 않고 있는 것이고 이명박 당선인에 대한 언급이나 비난이 없는 것은 일종의 배려"라며 "차분한 논조의 공동사설은 북한이 미국과 관계개선, 남한과 관계정립을 해나가는 과도기라는 점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신년 공동사설은 대내적으로 정권수립 60주년(9.9)을 맞는 올해 경제발전과 주민생활 향상을 위해 "전당.전국.전민이 나서 총공격전을 벌일 것"을 촉구했다.

    사설은 또 올해 구호를 "공화국 창건 60돌을 맞는 올해를 조국청사에 아로새겨질 역사적 전환의 해로 빛내이자"로 제시하고 "우리 경제와 인민생활을 높은 수준에 올려세움으로써 2012년에는 기어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려는 것이 우리 당의 결심이고 의지"라고 밝혔다.

    특히 "강성대국건설의 주공전선은 경제전선", "인민생활 제일주의"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하고 "올해를 인민생활 향상에서 실질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보람찬 해, 기쁨의 해로 되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 5년 뒤 강성대국'의 꿈을 이루려면 경제발전과 주민생활 향상이 최우선 과제임을 거듭 지적했다.
    "현시기 인민들의 식량문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중요한 과업은 없다"고 강조한 대목에서는 경제발전과 주민생활의 향상없이는 '강성대국' 구호가 공허한 외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 당국도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사설은 경제발전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경제구조의 특성을 살리면서" 경제를 기술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원칙 ▲최대한의 실리를 보장하면서 인민들이 실질적인 덕을 보게 하는 원칙 ▲내부의 원천과 가능성을 남김없이 동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대외 경제관계를 발전시키는 원칙을 적용할 것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들은 경제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개혁조치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게 아니라 "경제관리에서 사회주의 원칙, 집단주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대외 경제교류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또 작년 공동사설은 이례적으로 경제문제를 맨 앞에서 강조했지만 올해는 다시 국방력 강화를 앞자리에 놓고 "국방력은 선군조선의 자주적 존엄의 상징"이고 "군사중시를 강성대국 건설의 기본전략으로 내세우는 우리 당의 혁명적 입장은 확고부동하다"고 강조했다.

    국방공업의 우선발전 전략과 전국의 '난공불락 요새화'를 주장하면서 한동안 신년 공동사설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노농적위대 및 붉은청년근위대 같은 "민간무력의 강화"라는 과제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사설은 아울러 '우리식'과 '선군정치 방식'을 내세우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수령 결사옹위', '계급적 원칙'과 "반동적 사상문화적 침투와 심리모략전 분쇄" 등을 강조함으로써 내부단속의 고삐를 조이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전체적으로 올해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켰지만 내용 자체는 새로운 비전없이 선군주의 강화, 김정일 중심의 체제결속을 강조했다"며 "북한은 올해 정세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사회 전반에 대한 기강을 잡자는 의도"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강국 건설을 강조하고 있지만 특별히 새로운 경제관리 방식을 제시하지 않았고 전반적으로 '북한식 보수주의'가 강화되는 양상"이라며 "올해 공동사설은 철저히 대내용으로 내부통제를 위한 분야별 지침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답답한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