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4일 사설 '정치에 뛰어드는 대학 총장들의 처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중앙대 교수 평의원회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캠프에서 문화예술정책위원장 직을 맡고 있는 이 대학 박범훈 총장의 사임을 요구했다. 어제 교수 투표에서도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찬성했다. 학교 발전에 힘써야 할 총장이 특정 정당 활동에 깊숙이 개입한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괜찮다는 응답은 20%대에 그쳤다. 그의 행동은 도덕적·업무적으로 매우 문제가 많다. 사임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대학은 지성의 상징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대학의 자율성이 중요하다. 대학의 최고 책임자인 총장의 의무는 정치·행정 등 외부 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지키는 데 있다. 그래야 대학과 지성이 산다. 우리가 노무현 정부의 심각한 대학 규제를 비판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현직 대학 총장이 공식적으로 특정 정당 후보를 위해 활동한다면 대학의 자율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교수(폴리페서)들도 있지만, 총장은 대학을 대표하는 법인격임을 명심해야 한다.

    누구든지 외도하면 본업은 망하기 십상이다. 폴리페서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이들이 연구·교육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총장이 한눈 파는데 그 대학이 잘될 리 없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정근모 명지대 전 총장의 경우도 비슷하다. 중앙대 교수·학생들이 박 총장을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학 구성원들의 지지 후보가 분명히 다를 텐데, 총장이 특정 후보를 위해 활동하면 구성원 간 갈등이 생길 것도 뻔하다. 그래서 박 총장이 개인을 위해 대학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대학 총장들의 역할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한다. 우리 대학은 기로에 서 있다. 지식기반사회를 맞아 세계 유명대학과의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국내에선 인구 감소로 많은 대학이 학생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서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많은 대학 총장들이 개혁에 노심초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학은 하루아침에 발전하지 않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박 총장의 현명한 결단을 바란다. 중앙대뿐만 아니라 우리 대학 전체의 올바른 길을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