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데일리는 자유주의연대가 발간한 <권력 저널리즘의 꽃, '코드방송 괴물 포털'>을 연재합니다. 2부 권력 저널리즘입니다.

    국민의 알권리나 자유언론에 대한 언론인들의 사명감에 의해 방송과 언론이 운영되는 것이라기보다는 권력자 권력유지(대통령과 권력집단)를 위한 홍보 수단적 의미가 더 중요하게 기능하는 것을 권력 저널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에 대한 직접 통제의 수단으로는 인사권, 직접 검열, 보도지침 등이 있다. 정부는 최고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사람을 방송사의 사장으로 선정하였으며, 이들은 <사례 4>와 <사례 5>에서 보듯 최고 권력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방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표 1>에서도 알 수 있듯이 KBS 사장은 모두 예외 없이 권력자의 측근이 임명되었다. 

    재임기간

    성명

    임명 전 언론 경력

    임명 전 권력 관련 경력

    73.2. - 79.2.

    홍경모

    중앙방송국장

    문공부 차관

    79.2. - 80.7.

    최세경

    부산일보 사장

    공화당 국회의원

    80.7. - 85.2.

    이원홍

    한국일보 논설위원

    청와대 민원수석

    85.3. - 86.8.

    박현태

    서울경제 편집국장

    문공부 차관

    86.8. - 88.11.

    정구호

    경향신문 사장

    청와대 공보수석

    88.11. - 90.3.

    서영훈

    사상 편집기자

    민주화합추진위원(노태우 당선자가 추천)

    90.4. - 93.3.

    서기원

    서울신문 사장

    청와대 공보수석

    93.3. - 98.4.

    홍두표

    중앙일보 사장

    전매청장

    98.4. - 03.3.

    박권상

    동아일보 편집인

    정부조직개편위원장(김대중 당선자가 추천)

    03.3. - 03.4.

    서동구

    경향신문 편집국장

    노무현 후보 언론고문

    03.4. - 현재

    정연주

    한겨레 논설주간

    노무현 당선자가 신문사 직접 방문 면담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직접개입 사례도 빈번하였는데, 중앙정보부 등은 <사례 1>에서 알 수 있듯이 프로그램 제작을 기획하고 그 실행을 위해 배우들을 조직, 포상금을 지급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하였다. 특히 중앙정보부나 보안사, 치안본부 등 해당 감시 부서에서 언론사에 상주하며 직접 검열하는 방식의 언론통제까지도 진행되었다.(<사례 2> <사례 7>) 한편, 5공화국 시절 문화공보부에는 방송을 관리하는 부서가 방송관리국, 매체관리국, 매체국 등으로 이름을 바꾸며 독자적으로 존재했는데, <사례 3>과 <사례 6>에서 보듯 보도(선거)지침을 통해 세세하게 방송을 통제하였다. 이 같은 방송과 언론에 대한 통제는 일선 언론인들의 자유를 억압해야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일선 다수의 언론인들은 심한 모멸감을 느끼며 자유로운 언론을 갈망했고, 권력에 야합했던 일부의 언론인들은 스스로 떳떳함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1. 유신시대의 언론통제 사례

    <사례 1> “<실화극장>을 만들 당시 드라마 제작을 위해 중앙정보부에서 요원이 나와 녹화를 도와주었다. 윤정희, 최무룡, 신성일 등 당시 유명했던 배우들도 중앙정보부에서 출연하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출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당시 <실화극장>의 연출자와 조연출은 회사로부터의 급여 이외에 매달 중앙정보부에서 나오는 비공식적인 급여를 받기도 했다.”
    - 강동순 『KBS와 권력』 중에서

    <사례 2> “신문사와 방송국에는 중앙정보부에서 파견한 출입기자가 공공연히 상주하다시피 했고, 청와대나 정부 관계부처 그리고 집권여당 간부들이 수시로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와 언론보도를 통제했다.…… 경영의 주요 부분인 광고 분야에까지 간섭의 손길이 뻗쳐 동아 백지광고 시대 같은 엄청난 언론탄압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기자는 설 자리가 없었다.” - 강인섭 당시 동아일보 기자 

    2. 5공화국의 언론 통제 사례

    <사례 3> “12대 2․12 총선은 TV 선거 방송의 원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해괴한 선거방송지침이 결정되었다. 즉 ‘여당(민정당) 후보를 부각시키고 야당(신민당) 후보를 축소 보도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여당 후보 기사는 처음 순서에 놓고 리포트를 길게 하고, 화면도 여당 후보의 얼굴은 클로즈업 하며, 군중은 많아 보이게 롱 샷으로 처리한다. 반면 야당 후보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처리로, 군중도 적게 보이도록 타이트하게 앵글을 잡고, 음향에서도 여당은 맑고 선명하게 하고 야당은 음질이 떨어져 탁하게 한다.’ 구체적인 편파보도 형식이 하달되었고, KBS는 그 이상으로 충실하게 방송하였다.” - 강동순 『KBS와 권력』 중에서

    <사례 4> “1987년 6월 이전의 방송? 그 또한 지옥이었다.…… ‘KBS가 본처고 MBC가 애첩’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오갔다. 부끄러운 고백 하나, 1986년 전두환의 한강개발을 찬양하는 특집 다큐멘터리 <신한강지리지>를 다시 제작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나에게는 ‘반포 낚시터에서 물고기가 잡힌다’는 내용을 취재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난감해진 나는 광진교 부근의 어부에게 달려가 고기를 사서 낚시 바늘에 건 뒤 다시 촬영을 시도해서 ‘성공’했다. 그날 밤 재편집 후 시사회 때 간부들은 손뼉을 치며 ‘바로 이것’이라고 나를 칭찬했다.” - 이채훈 MBC 현 PD 

    <사례 5> “1980년 어느 날 제작국 아침회의에서 A 국장이 B 차장에게 말했다. ‘B 차장, 당신 프로그램 너무 재미있어, 제발 좀 재미없게 만들 수 없나?’……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되는 ‘땡전뉴스’를 외면하고 2TV의 <오늘>을 대체해서 보고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나오는 KBS 뉴스보다 <오늘>의 시청률이 높다는 것이 5공 군사정권에 알려지자 권부에서 화가 난 것이었다. 그래서 이원홍 사장은 ‘땡전뉴스’를 많이 볼 수 있도록 같은 시간에 방송되는 <오늘>을 재미없게 만들어 시청률을 낮추라는 해괴한 명령을 한 것이었다.” - 강동순 『KBS와 권력』 중에서 

    <사례 6> “당시의 보도지침은 ‘부천서 성 폭행사건, 검찰발표 때까지 모든 기사를 일체 보도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었습니다.” - 최문순 MBC 사장, 80년대 당시 기자 

    <사례 7> “김영삼 총재가 목숨을 건 23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일 때였다. 이를 단 한 줄도 보도하지 못하도록 모든 언론을 엄중 단속했으나 동아일보만 [정치현안]이라는 아리송한 표현을 써서 모종의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을 은근히 암시했다. 그러자 정부당국은 [정치현안]이라는 표현 가운데 꺽쇠를 떼도록 압박해 왔다. 꺽쇠가 붙으면 독자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듯했다.” - 강인섭 당시 동아일보 기자 

    저자소개
    최홍재
    1968년 전남 나주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으며,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전대협 조통위원장 대행, 한총련 조통위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과 뉴라이트은평연대 대표로 활동 중이다.

    김배균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민중연대사업부장을 지냈으며 현재 정치웹진 뉴라이트폴리젠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