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에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쓴 시론 <신당 '국민'경선 감상법>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국민경선이 글자 그대로 ‘국민없는 경선’으로 치닫고 있다. 투표율이 하도 낮아 한국 정치사상 최악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제주·울산·강원·충북의 투표율은 19.81%였다. 노무현 후보를 뽑은 2002년 민주당 경선 때는 제주가 85.2%였고 네 곳 중 가장 낮은 충북도 59.2%였다.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나 과거 민주당과 현재의 신당은 일란성 쌍둥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시절 욱일승천하는 기세를 보였던 사람들이 5년 만에 날개도 없이 추락한 것이다. 너무 오만해서였을까. 아니면 시대정신이 변했던 것일까. 어쨌든 크게 당황한 신당은 흥행몰이에 나선다며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는 등 난리다. 하지만 의문이 있다. 낮은 투표율에 당황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 아니면 ‘불감청(不敢請)일지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는 옛말처럼, 내심으로는 바라던 것이 아니었을까.

    노 정부의 주도세력으로 나서면서 민주당→열린우리당→대통합민주신당으로 차례로 자리를 옮긴 사람들이 ‘시대정신’으로 못박으며 국민들을 끊임없이 압박했던 개혁정치가 그 의미를 상실한 지 오래다. 국민들은 아마추어적으로 정부를 운영하고 민생을 소홀히 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스트레스를 준 국정세력의 행태에 신물을 내고 있는 것이다. 민주·개혁·평화를 유달리 강조하면서 독재·수구와 대비시키려 안간힘을 쓰나 따라오는 사람이 적다. 이른바 ‘메시지 불신현상’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흥행에 성공하고 있으나, 민주세력과 반민주세력을 구분하자는 그들의 메시지에는 메아리가 없다.

    그런가 하면 ‘메신저 불신’도 있다. 그들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열린우리당과 결별하겠다고 용감하게 뛰쳐나갔는데 넉 달 만에 제자리로 돌아와 ‘도로열린우리당’을 만들고도 신당이라고 하지 않는가. 경선과정에서 표를 달라고 하며 웃고는 있지만 평소의 독선적이고 오만한 모습은 잊혀지지 않고 있다. 웃는 모습이 또 언제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믿음이 안 가는 것이다. 이것이 경선현장에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이유다.

    그러나 정작 신당사람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매우 다행스럽지 않을까. 국민들이 지난 4년 동안 왜 재산세가 3.8배, 양도세가 3.2배로 늘었으며 서민들의 내집마련 꿈은 왜 멀어졌느냐고 물으면 골치가 아프다. 왜 매년 7%씩 경제성장을 하겠다고 큰소리쳤는데, 5%도 못 미치느냐고 묻는다면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또 ‘미래세력’이라고 자처하던 사람들이 과거의 대통령을 왜 ‘오복조르듯이’ 쫓아다니냐고 추궁한다면 곤혹스럽다. 입이 열 개라도 이런 질문들에 대하여 대답할 수 없으니 차라리 국민들로 하여금 경선을 외면하면서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 상책이다.

    이제까지의 상황을 보면 신당사람들의 이런 음모는 상당히 성공한 듯하다. 이제 신당의 국민경선 승리자는 국민의 지지로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낮은 투표율 덕분에 당선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런데도 경선장에 달려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지금의 달콤한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정권재창출에 목을 매는 사람들과 그 추종자들일 게다. 그들의 결집력과 조직력은 놀랍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것은 낮은 투표율뿐이니, 이것이 ‘정치의 타락’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금 신당 내에서는 동원 경선에 대한 입씨름이 한창이고 일사천리로 진행된 친노 후보들의 단일화도 의혹의 대상이다. 그러나 낮은 참여율에서 그 모든 것은 허망하다. 이미 ‘국민없는 경선’ 자체가 정치환멸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동원선거나 단일화에 대한 논란이 있다 한들 정치희화화의 한 단면일 뿐이다. 거기서 승자가 나온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