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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1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됐다. 이 후보는 20일 서울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에게 432표 뒤졌으나,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8.8%포인트(2884표에 해당) 앞서 승리했다. 전체 득표율에서 불과 1.5%포인트 차이의 신승이다.
이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국민이 나에게 보내 준 지지는 경제를 살리라는 요구와 분열된 사회를 통합해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이 후보가 경선을 통과하게 된 것은 이 두 가지 요구가 지금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집권 이후 내내 시대정신을 무시하고 역행해왔다.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선진국의 문턱을 넘고 분열된 사회를 더 높은 차원으로 통합해 대한민국이 다시 도약하기를 염원해온 많은 국민은 이제 이 후보를 현실의 대안으로 바라보게 됐다. 이 국민적 염원에 부응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앞으로 이 후보와 한나라당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이 후보는 승리했으나 선거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새로운 인물로 대한민국의 전기를 마련해야겠다는 국민적 염원이 받쳐주고, 그 도움으로 전 경선 기간을 통해 부동의 1위를 유지해왔던 배경으로 보면 더더욱 그렇다. 경선 막판에 터진 검찰의 서울 도곡동 땅 발표가 이 후보에겐 큰 악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승리가 힘겨웠던 근본 원인은 악재 한두 개가 아니다.
이 후보가 청계천 복원과 서울시 교통 개혁을 성공시킨 이후 많은 국민들이 이 후보의 이런 행동력에서 새로운 국운 개척의 추진력을 발견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지금 이 후보의 개인적인 문제들로 흔들리고 있다. 문제는 이 후보의 앞을 가로막았던 의혹만이 아니라 그 의혹을 대하는 이 후보의 자세다. 이 후보는 의혹 제기에 대해 때로는 감정적으로, 때로는 미심쩍게 대응해 왔다. 그런 대응이 다수의 국민으로 하여금 불안한 눈길로 이 후보를 지켜보도록 만들었다. 그 심증은 최근 여론 조사에선 60%를 넘었고, 한나라당 선거인단은 그런 불안감을 표로써 나타낸 것이다.
이 후보는 후보 수락연설에서 “저에 대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한다”고 했다. 이 후보는 이 문제에 대해 단안을 내려야 한다. 결단은 빠를수록 좋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날 한나라당 당원들이 드러낸 불안감은 12월 19일까지 이 후보와 한나라당을 따라다니는 어두운 그림자가 될 것이다.
이 후보의 다음 과제는 당을 통합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 대한민국을 걸머지고 갈 통합의 리더십을 증명해야 한다. 경선이 휩쓸고 간 자리는 승자가 어루만지지 않으면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이 후보는 연설에서 박 전 대표에게 “정권을 되찾아 오는 중심적 역할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박 전 대표와 함께 가겠다는 뜻을 수차례 반복해 다짐도 했다. 이 요청과 다짐에 어떤 진심이 담기느냐에 따라 당이 형식적·물리적으로 봉합되느냐, 아니면 실질적·화학적으로 융합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대선 결과도 여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역사는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지금 다시 일어설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영원히 주저앉을 것이냐의 선택을 묻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 역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대전환의 흐름에 수동적으로 그냥 떠내려갈 것이냐, 아니면 역사의 분기점에서 능동적으로 국가의 운명을 개척해 갈 것이냐의 선택을 묻고 있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은 이 역사와 국제 정세의 물음에 시급히 답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후보의 어깨에 이 무거운 짐이 얹혀 있는 것이다.
지금 이 후보에겐 작은 승리에 자족할 여유가 없다. 이 후보는 당장 국가적, 역사적으로 더 큰 소명 앞에 일신을 바친다는 위기 의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나라당 경선만 통과하면 무조건 대통령 된다”는 과거의 얘기에 솔깃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후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넘어야 할 겹겹의 산과 건너야 할 무수한 강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