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한나라당의 위기, 이제 시작이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태평성대를 누리는 듯했던 한나라당에 드디어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8월은 ‘설상가상(雪上加霜·눈 위에 또 서리가 덮인 격)’이요, ‘화불단행(禍不單行·나쁜 일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뜻)’에다 ‘내우외환(內憂外患·안팎으로 근심거리가 있음)’의 운세다. 하기야 한나라당은 2004년 4월 17대 총선에서 패배했을 뿐, 그 뒤로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여러 차례의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계속 압승을 거뒀고, 이명박·박근혜라는 이른바 ‘빅2’ 대선 후보를 품 안에 두어 범여권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대선이 그렇게 호락호락 한나라당 뜻대로 될 리 있는가. 예고됐던 시련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다.

    한나라당에 닥친 위기는 다층적·복합적이다. 풀어내기 쉽지 않게 돼 있다. 당장 내부의 문제부터 꼬여 있다.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두 후보 측은 ‘땅 투기꾼’이니 ‘최태민의 유훈(遺訓)정치’니 하면서 상대방을 향해 악담을 퍼부었다. 20일 당 대선 후보가 발표되면 승자가 패자를 끌어안아야 하겠지만, 상대방을 “대통령이 돼선 안 될 사람”으로 매도해 놓고 무슨 염치로 국민 앞에서 “우리 후보에게 표를 달라”고 하겠는가.
     
    외부 위기의 신호탄은 제2차 남북 정상회담 성사다. 이를 계기로 대선 시장에 범여권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 화해 협력’이란 상품을 들이밀고 있다. 이것이 한나라당의 ‘경제’와 ‘국가 품격’이란 거대담론의 대척점(對蹠點)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정상회담을 지나치게 반대한다면 ‘냉전수구세력’이란 낙인이 찍히기 쉽고, 동조하면 노무현 정권과 범여권의 담론에 휘말리게 된다. 진퇴양난이다.

    범여권의 단합도 한나라당으로서는 결코 달가울 수 없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남북 정상회담 발표가 나오자 바로 다음날 열린우리당과의 합당을 선언했다. ‘친노세력 배제’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더니 정상회담 발표가 나오자 그런 말은 쑥 들어갔다. 누구 한 사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남북 정상회담의 효과에 빨리 편승해야 한다는 현실적 계산이 섰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의 주체인 노 대통령, 그런 노 대통령을 둘러싼 친노세력을 등지고서는 남북 정상회담의 단물을 받아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범여권 세(勢) 결집의 촉매 역할을 한 셈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한나라당엔 은근히 아픈 잽이다. 항의하고 반발하자니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꼴통’이란 비난을 받을 것 같고, 그냥 넘기자니 목에 걸린다. ‘공동경비구역 JSA’ ‘웰컴 투 동막골’ ‘그때 그 사람들’ ‘효자동 이발사’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화려한 휴가’로 이어지는 일련의 영화를 진보진영의 의도된 공세로 보는 이들도 없지 않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그렇지만 결코 한나라당에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한나라당에 위기가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남북 정상회담이 없었다면, 범여권이 대선 끝까지 통합되지 않았다면, 1980년 광주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영화가 없었다면 보다 편안히 대선을 치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희망에 불과하다. 노 대통령이 “내가 도장 찍고 합의해 놓으면 후임 대통령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 이미 남북 정상회담은 추진되고 있었다. 열린우리당 일부 세력이 ‘기획 탈당’을 할 때부터 ‘각개약진 후 재통합’은 예견돼 있었다. 문화계의 공세도 예상됐던 바다. 앞으로 지금보다 훨씬 가혹한 시련이 밀려올 것을 각오해야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 집권한 세력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정권을 넘겨줄 리 없다.

    한나라당이 갈 길은 정면 돌파 한 가지뿐이다. ‘화려한 휴가’와 같은 시절이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지금 한나라당은 과거의 한나라당과는 다르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사람도 바뀌었고 정치철학도 달라졌음을 실감나게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제시해야 한다. 경제는 어떻게 살릴 것이며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끌어갈지를. 그러지 못하면 집권에 실패할 것이고, 국민의 가슴에 와 닿으면 성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