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권의 따가운 비판에도 불구하고 연일 계속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 탓인지 범여권에 미묘한 기류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당장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특정 인사 배제’를 내세웠던 박상천 민주당 대표와 독자세력화에 매진했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행보에 일정 부분 수정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는 분위기다. 

    당장 정치권 안팎에선 이를 놓고 김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가 ‘약발’을 받고 있다는 관측을 내보이면서도 DJ의 최종 의중이 무엇인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정치권은 일단 김 전 대통령이 30일 이해찬 전 총리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나온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통합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 “대통합정당을 만들어내고 거기서 후보를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갈 수 밖에 없겠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범여권의 통합논의와 관련해 대통합에 방점을 찍는 듯한 ‘훈수’로 범여권의 기류변화 분위기를 조성한 만큼, 다음 수순으로 ‘후보 부각시키기’에 어떤 식으로든 나서지 않겠느냐는게 정치권 안팎의 조심스런 관측이다.

    이럴 경우 남북관계 개선에 초점을 맞추며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와, DJ 계승의지가 엿보이면서 ‘DJ와의 연대설’까지 나돌았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등이 DJ와의 관계설정에 있어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실제 김 전 대통령은 이 전 총리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 “대통합의 방향으로 가야 하다. 이 전 총리가 책임지고 대통합문제를 잘 해 나가길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에 이 전 총리는 “6월 10일을 전후해서 정치권 밖의 시민사회세력들과 새로운 국면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6월까지는 통합협상이 마무리되고 7월 중순까지는 창당 협상을 매듭지어야 8월부터 경선에 들어갈 수 있다. 서둘러서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아울러 손 전 지사도, 잇따른 김 전 대통령의 대통합 ‘주문’(?)에 화답하려는 듯한 기류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모양새다. 당초 독자신당의 모태가 될 ‘선진평화연대’ 결성을 통한 독자세력화에 매진했던 손 전 지사는 최근 범여권의 통합 작업에 나설 듯한 움직임을 내보이고 있는 분위기다. 자칫 범여권의 통합이라는 중차대한 논의에서 제외될 경우, 추후 범여권의 후보로서의 명분 우려를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손 전 지사는 지난 29일 인천대에서 ‘21세기 글로벌 시대와 제3의 개방’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면서 “지금이야말로 단순한 정계개편이 아니라 정치구도가 크게 개편되는 호기가 왔다고 본다”면서 범여권의 대통합 논의에 나설 의지를 내비쳤다. 당초 이날 강연에선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검토했었지만 당일 아침 강연 내용을 수정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선 손 전 지사가 조만간 범여권의 대통합 논의와 관련된 입장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함께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특정 인사 배제’를 내걸었던 박상천 민주당 대표의 기류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29일 김 전 대통령을 예방한 직후인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박 대표는 30일 당 대표단․통합추진위원회 연석회의에서 “국정실패의 책임자를 비롯한 극소수만 배제되고 사실상 열린당 의원들 대부분이 통합대상”이라면서 “열린당 의원 대부분은 중도개혁주의자”라고 말했다. 이는 그간 국정실패책임세력, 좌파진보세력, 친노세력 등 ‘특정 인사 배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했던 박 대표가 배제대상의 폭을 줄임으로써, 유연한 태도로 돌아서면서 김 전 대통령의 ‘대통합’ 의중에 화답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이다.

    김 전 대통령의 잇따른 훈수정치가 소위 ‘약발’을 발휘하면서 범여권의 대통합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정치권 안팎의 판단인데, 이와 맞물려 김 전 대통령의 의중의 최종 종착지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도 한층 고조되고 있는 모습이다. 김 전 대통령의 호남상징성을 감안할때, 김 전 대통령과의 관계설정은 범여권의 대선주자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