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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후보 단일화의 덫'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10%대에서 30%대로 올라가는 상황을 불안하게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한나라당의 이명박.박근혜씨 아니겠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에게는 노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이 화가 될지 복이 될지 두고 봐야 알 수 있는 문제다. 현 정권의 실정을 딛고 표를 얻어야 하는 야당 후보의 입장에서는 분명 달가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를 막으려면 노 대통령이 어느 정도 힘이 있어야 한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너무 높지만 않다면 30~40% 지지율은 이.박 두 사람에겐 오히려 득이 될 수 있다.
정작 이 상황을 걱정하는 곳은 여권 내부다. 그것도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그렇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친노 세력을 제외한 대다수가 그럴 것이다. 노 대통령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당을 뛰쳐나간 통합신당파 사람들에겐 자신들의 탈당 명분을 무색하게 하고 존립 근거를 위협하는 일대 사건이다. 민주당 사람들에겐 노 대통령은 '성공하니까 어려울 때 뒷바라지한 조강지처를 버린 남편'이다. 4년을 앙앙불락했던 그들에게 이런 상황이 달가울 리 없다. 진보 내지 좌파 세력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권일 때 그를 '변절자'니 '신자유주의자'니 하면서 거리를 뒀으니 말이다. 가장 당혹스러운 이들은 대통합론자들이다.
그들은 '지역주의 극복'보다 '한나라당 집권 저지'가 더 절실한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권에서 후보가 여러 명 나와서는 안 된다. 독자 생존력을 가진 후보가 없으니 현실적으로 대선 후보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은 노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에게 있다. 그래서 이들이 내린 결론은 "노 대통령과 DJ의 분열을 막는 게 최우선 과제"라는 것이었다. DJ는 진작부터 후보 단일화 쪽이었으니, 남은 것은 노 대통령에 대한 압박과 설득이었다.
요즘 DJ는 줄줄이 찾아오는 범여권 후보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만 되풀이하고 있다. "양당정치가 우리 국민의 본성에 맞다"거나 "국민은 이번 대선에서 여야의 일대일 대결을 바라고 있다"며 후보 단일화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동교동을 찾은 이해찬 전 총리에게 "노 대통령과 내가 힘을 합치면 안 될 게 없다"고 했다. 노 대통령에게 "'친노 후보' 낼 욕심을 버리고 내 생각을 따르라"는 뜻을 전한 것이다. 표현은 '힘을 합치자'고 했지만 실제로는 노 대통령에게'백기 항복'을 요구한 셈이다.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현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을 지낸 문희상 유인태 의원이 대통합론의 편에 설 것임을 노 대통령에게 통보했다. 친노 세력이 소수파로 전락할 위기에 몰린 것이다. 결국 노 대통령이 한발 물러섰다. 그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의이지만, 대세를 잃는 정치를 하면 안 된다"면서 '대세 수용'으로 입장을 바꿨다.
그럼 범여권의 후보 단일화는 될 것인가.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한다. 노 대통령이 지금은 세 불리를 느끼고 마지못해 허리를 굽혔지만, 그는 강요에 의한 굴복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더구나 그는 '지역구도를 타파한 대통령'이길 바란다. 그러니 통합 작업이 각 세력 간의 이해 충돌로 지지부진하거나 '도로 민주당'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순간 노 대통령의 반격은 시작될 것이다. 그래서 대통합론자들은 "노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은 후보 단일화에는 재앙"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반격도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 지지율이 다시 10%대로 떨어지면 기회가 와도 침묵해야 한다. 이 경우 대선판은 DJ의 의중대로 짜이게 된다.
대선 후보가 전·현직 대통령 간의 파워게임에 의해 결정되는 상황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이런 정치공학은 국민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그러나 이를 용인하는 것도, 심판하는 것도 국민의 몫이다. 정치는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